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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세월호 7시간, 박근혜 침실→최순실→올림머리→중대본 방문

등록 2018-03-28 19:33수정 2018-03-29 13:42

검찰 수사로 재구성한 참사 당일 청와대·대통령 대응
김장수, 1보 전달받고 두 번 전화했지만 안 받아
관저선 급박한 상황보고, 침실 앞 탁자 위에

실시간이라던 상황보고 11회도
오후·저녁 두 차례 합쳐서 전달

오후 ‘A급 보안손님’ 최순실 관저 방문
박근혜-최순실-3인방 ‘5인 회의’ 개최
회의에서 중대본 방문 결정

급박한 상황 불구 ‘올림머리’ 미용사 호출
중대본 간 박근혜 “구명조끼 입었는데 발견 힘듭니까?”
2014년 4월16일 탑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시각, 국가위기 상황을 최종 책임져야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그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최초 신고가 이뤄진 오전 8시54분부터 배가 좌현으로 108도 기울어져 더는 구조가 불가능해진 오전 10시17분(골든타임)까지,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대통령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28일 검찰이 4년 동안 이어진 이 질문에 한층 진전된 답을 내놓았다. ‘7시간의 봉인’이 마침내 풀린 셈이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등 청와대 수뇌부는 오전 9시19분 텔레비전 자막을 통해 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다. 이후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가 선박의 명칭, 승선 인원, 출항시간 등을 담은 상황보고서 1보(초안)을 10시쯤 작성했다. 금쪽같은 ‘41분’이 ‘보고서 작성’으로 속절없이 흐른 것이다. 이 시각 세월호는 점점 더 기울어져 복원력을 상실(9시34분)했고, 이어 3층 갑판(47분), 4층 갑판(50분), 5층 출입문(57분)이 침수됐다.

초안을 보고받은 김 실장이 대통령 휴대전화로 두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대통령은 두 번 모두 받지 않았다. 다급해진 김 실장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보고서 1보가 관저로 올라갈 예정이니 보고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부탁했고, 10시12분~13분께 상황병을 통해 대통령이 그때까지 머물고 있던 관저로 ‘1보’를 전달하도록 했다.

상황병은 1보를 들고 7분 만에 관저 인수문까지 뛰어가 경호관에게 전달했다. 이 문서는 관저 내실 근무자 김아무개씨에게 전달됐고, 김씨는 평소처럼 아무 말 없이 대통령에게 침실 앞 탁자 위에 올려뒀다. 보고서가 탁자에 오른 시각은 10시19분~20분 사이로, 골든타임이 막 지나 더는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된 뒤였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진도 앞바다는 탑승객 일부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던 ‘전시’였으나, 대통령이 있는 관저는 언성을 높일 일 없는 평화로운 ‘평시’였다. 청와대가 침몰 사고 인지 이후 우여곡절 끝에 1시간이 걸려 도착한 보고서를 박 전 대통령이 읽었는지는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의 조사 거부로 확인할 수 없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김 실장의 전화를 받고 관저로 뛰어간 안 비서관이 대통령 침실 앞에서 “대통령님”하고 수 차례 부른 게 10시20분. 침실에 머물렀던 박 전 대통령이 드디어 문밖으로 나왔다. “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합니다”라는 말을 들은 박 전 대통령은 다시 침실로 들어가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10시 25분 국가안보실이 관계부처에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파하지만, 세월호는 5분 뒤 완전히 침몰했다. 이후 대통령 비서실도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이메일로 총 11차례 상황보고를 전했지만, 정 비서관은 이를 일괄 출력해 오후와 저녁 두 차례에 나눠 전달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날 비서실장도 국가안보실장도 대통령 대면보고를 못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관련자들을 조사해 보니 ‘대통령 보고가 통상 그래 왔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막상 대통령을 움직이게 한 건 청와대 참모들이 아닌 ‘40년 지기’ 최순실씨였다. 비서실장조차 쉽게 드나들 수 없을 만큼 문턱이 높았던 관저에 최씨는 검색 절차로 없이 발을 들였다. 오후 2시15분이었다. 박 전 대통령 재직 때 경호실에 출입기록이 남지 않는 이른바 ‘보안손님’은 에이(A)급과 비(B)급으로 구분됐는데, 에이(A)급은 최씨를 비롯해 김영재 원장과 그의 부인 박채윤씨 등 딱 3명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관저 앞마당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비(B)급은 검색절차 없이 관저 정문인 인수문까지만 차량을 타고 들어올 수 있는 이들로서, 기치료사와 왕십리원장 등 비선진료인들이었다고 한다.

관저에 도착한 최씨는 곧바로 박 전 대통령과 대기하고 있던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과 함께 세월호 참사 관련 ‘5인 회의’를 열었다. 대통령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이 결정된 것은 ‘수석비서관 회의’ 등 공식기구가 아닌 이 ‘5인 회의’였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참모들을 불러 상황 파악을 하지 않고 ‘올림머리’ 단장을 위해 미용사인 정송주·정매주씨를 불렀다.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이 오후 2시53분 정매주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출발하시면 전화부탁드립니다. 많이 급하십니다”라고 적혀 있어 당시 급박함이 묻어난다. 정작 급한 건 따로 있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올림머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머리 손질을 끝낸 박 전 대통령은 오후 4시33분 이날 처음으로 관저밖으로 나왔다.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그는 5시15분 중대본에 도착해 처음으로 이렇게 물었다. 당시엔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의아했지만, 이날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 이런 의문은 쉽게 해소된다.

저녁 6시 청와대 관저로 복귀한 박 전 대통령은 평소처럼 계속 그곳에 머물렀다. 이후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 시각을 ‘골든타임’ 이전을 꾸미려고 오전 10시17분으로 당기고, 청와대 책임을 일선 부처로 미루려고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바꾸는 등 또다시 페이퍼 워크에 매달렸다는 게 검찰 수사결과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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