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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재판 품질’과 ‘사법 신뢰’…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을까

등록 2018-04-08 10:57수정 2018-04-08 11:01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지난 1월26일 아침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는 길에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월26일 아침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는 길에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짧게는 1~2년, 길게는 3~4년씩 내리 검찰과 법원 등을 취재하는 법조 출입 기자들끼리 주고받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모든 법조기자는 자신이 취재했던 때가 법조계에 가장 일이 많았던 시기로 기억한다.”

법조기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겪었던 대형 사건이나 재판 한두 개 정도는 꼽는다는 뜻이고, 그만큼 대한민국엔 형사·사법 이슈가 지나치게 많다는 일종의 푸념이기도 하다. 지난 1년 동안 전직 대통령 두 명과 그를 따랐던 많은 이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재판에 넘겨진 탓에, 서초동 법조타운은 앞으로도 쏟아질 뉴스에서 헤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6일 ‘세기의 재판’이라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가 났지만, 검찰은 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한다. 불과 사흘 만에 또 다른 ‘세기의 재판’에 시동이 걸리는 셈이다.

당장 벌어지는 기소와 재판도 숨 가쁘지만, 다음주 법원 한켠에서 이뤄질 또 다른 두 가지 일정도 주목할 만하다. 어쩌면 ‘이명박 재판’보다 더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한 건의 재판이 아닌 향후 대한민국에서 이뤄질 재판 전체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고,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좌우하게 될 일이기 때문이다.

첫 일정은, 각급 법원 대표자 119명이 참여해 9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대법원 규칙으로 회의체가 상설화된 뒤 열리는 첫 회의다. 사법행정에 반발해 자발적으로 열렸던 기존 법관대표회의가 아니라, 이젠 사법행정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공식적인 주체가 됐다는 의미다.

논의될 내용은 법관 인사제도 개선과 배석판사 보임 기준 및 지방법원 재판부 구성 방법에 관한 안건 등이다. 첫 회의인 만큼 의장도 선출하고 향후 회의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한 내부 룰도 정한다. 당장은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 ‘친절한 재판’, ‘공평한 재판’으로 나아가기 위한 밑돌을 놓는 일이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중심의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법원이 아닌, 일선 판사들의 총의가 반영되는 수평적 법원 운영을 위한 첫걸음을 떼는 일이기도 하다. 서초동에서 ‘국민들이 누구에게 어떤 재판을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주목해야 할 두번째 일정은 오는 11일 오후 열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2차 회의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을 일으켰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대한 ‘3차 조사’의 대략적 윤곽이 이날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특별조사단은 지난 한달여 동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와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었다는 파일 760개 등에 대한 물적 조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특별조사단의 조사가 ‘3차’가 된 이유는 알려졌듯이 대법원 외부에 위원회 형식으로 꾸려져 진행됐던 1차, 2차 조사가 국민들의 의구심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원 내부 구성원들에게조차 ‘부실 조사’라는 비판을 받은 대목도 있었다. 2차 조사로 대법원과 청와대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판과 관련해 교감한 정황이 드러나고, 판사 개인의 성향을 분석해 사실상 ‘사찰’한 문서들이 나왔지만, 이런 문서들을 누가 어떤 목적에서 작성했는지 등도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이번 조사가 중요한 이유는 그 결과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청와대 등 정권의 눈치를 봐가며 재판 결과를 염탐하고, 독립적인 재판을 해야 할 판사의 ‘머릿속’을 분석해 리스트를 작성하는 법원을 신뢰할 국민은 없다.

더구나 최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통상임금 판결에 대해 비에이치(BH·청와대)가 흡족해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서를 추가조사위가 확인했다”고 폭로했다. 또 법원행정처가 ‘박정희 정부 시절 긴급조치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의 판결과 다른 판단을 한 판사의 징계 방안을 검토한 문건의 존재가 알려지는 등 추가 의혹마저 제기된 상황이다.

그러니 특별조사단과 김명수 대법원장은 조사 결과를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과정에서 ‘사실’ 외에 어떤 조직적 고려나 정무적 판단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 김 대법원장이 직접 꾸린 특조단의 ‘3차 조사’마저 이런 의혹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한다면, 더는 법원에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9일 첫 회의 때 특별조사단의 활동 등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자리를 마련한다고 한다. 조사 결과가 공개된 뒤 대표회의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사법행정권 남용’이라는 낡은 유산을 어떻게 청산하자고 제안하고 대처할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대표회의가 ‘사법부의 미래’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석진환 사회1에디터석 법조팀장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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