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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파일 추리는 데만 두 달…대법원의 ‘만만디 셀프조사’

등록 2018-04-18 16:20수정 2018-04-18 16:22

강희철의 법조외전(20) 굼뜨고 답답한 특별조사단 행보

큰 파문 일으킨 ‘대법원-청와대 커넥션’ 의심 문건
특조단이 조사 나섰으나 파일 복구·분류에 2개월
“진도 너무 느리다” 비판 불구 “5월 하순까지 조사”
임종헌 ‘윗선’ 박병대-양승태 조사 가능할지 의문
문건서 언급된 ‘원세훈 사건’은 19일 재상고심 선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1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과 관련해 대법원과 청와대의 ‘커넥션’을 의심할 만한 문건이 공개되자 “이번 일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라며 특별조사단을 꾸려 세번째 자체 조사에 나섰으나 두달이 넘도록 뚜렷한 진전이 없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 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마친 뒤 법관들과 악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1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과 관련해 대법원과 청와대의 ‘커넥션’을 의심할 만한 문건이 공개되자 “이번 일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라며 특별조사단을 꾸려 세번째 자체 조사에 나섰으나 두달이 넘도록 뚜렷한 진전이 없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 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마친 뒤 법관들과 악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자고 나면 새로운 사건이 터지는 대한민국에서 3개월은 짧으면서도 아주 긴 시간이다. 체감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예컨대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서 그를 구속기소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3개월이다.

약 3개월 전인 1월22일로 돌아가 보자. 이날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을 공표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파문을 부른 것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이라는 문건이다.

“어우~ 뉴스를 보는 데 골이 다 띵하더라고요. ‘야, 어떻게 저런 일이?’ 이런 생각이 들다가 금세 ‘저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다 공개를 해버렸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

이런 반응이 나올만했다. 1월23일 치 몇몇 신문의 헤드라인이다.

“양승태·청와대 ‘원세훈 재판’ 검은 결탁”(경향신문), “양승태 대법, 청와대 요구로 원세훈 재판부 동향 보고”(한겨레), “양승태 대법원, 청 요구에 원세훈 재판부 동향 살폈다”(한국일보)

법관 사찰을 넘어 정치권력과 결탁 의혹까지 사게 된 이 사안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는 1월24일에 나온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장문/대국민’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번 일로 인한 국민 여러분의 충격과 분노 그리고 실망감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나온 문건들의 내용은 대다수 사법부 구성원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어 김 대법원장은 “조사 결과에 따른 합당한 후속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필요한 범위에서 조사결과를 보완하고 공정한 관점에서 조치방향을 논의하여 제시할 수 있는 기구를 조속히 구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언급된 ‘합당한 후속 조치’의 하나로 2월12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단장 안철상 신임 법원행정처장)이 구성된다. 말하자면 대법원 스스로 유례가 없는 ‘추추가’(3차) 조사기구를 띄운 것이다.(이 기구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서는 그 무렵 법조외전(14) 우병우도 양승태도 거부하면 그만인 ‘대법원 셀프조사’에서 다룬 바 있다)

이 특조단이 지난 11일 전국 법관들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그간의 활동 결과를 내놨다. 특조단이 정식 출범하고 두 달 만이다. ‘전국의 법원 구성원 여러분께’라는 제목이 달린 A4 2장 분량의 ‘제2차 회의결과 보고’를 보면 앞서 활동했던 추가조사위원회의 공표 내용에서 별 진전된 것이 없다. 고려대 디지털포렌식연구센터에 의뢰해서 8개 컴퓨터 저장장치(HDD와 SSD)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고, 미사용 혹은 복구 불가 판정이 난 3개를 제외한 5개 저장장치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된 파일로 우선 선정”된 406개를 분류해 더 조사하기로 했다는 것이 발표 내용의 거의 전부다.

그나마 새로운 것이라면, 조사대상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SSD 파일이 포함된 점이다. 앞서 활동한 추가조사위원회는 행정처가 임 전 차장의 컴퓨터 제출을 거부하는 바람에 조사하지 못했었다. 또 대법원의 2013년 통상임금 소급 적용 불허 판결에 ‘(박근혜) 청와대가 흡족해하고 있다’는 취지가 담긴 법원행정처 문서도 조사대상에 포함됐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3월20일 국회 질의내용을 확인해준 것이다.

꼬박 두 달이 걸린 조사 내용이라고 하기엔 감질나는 수준이다. 여전히 밝혀낸 것은 아직 없고, 밝혀야 할 대상만 나열돼 있다. 그래서 실망감을 내비치는 법관도 있었다.

“그냥 몇 개, 몇 개, 파일 숫자만 이야기했더라. 우리가 다들 궁금해하는 것은 문제의 문건이 있다면 작성자와 보고라인, 누구한테까지 보고됐는가 이런 것일 텐데, 그런 건 앞으로 더 조사하겠다고만 했고. 기본적으로 너무 지체되고 있는 느낌이다. 조사대상자 동의받고, 지운 파일 복구하느라 고충이 있는 건 알지만, 국민이 그런 것까지 이해해줄 것 같지는 않다.” (서울지역 법관)

‘옆 동네’ 사람의 눈에도 답답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만약 우리(검찰) 내부에서 이 정도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렇게 시간을 오래 끌고 있었다면 박살이 나도 이미 여러 번 났을 것이다. 검찰한테 ‘셀프조사’를 하라고 가만 놔뒀을 리도 없지만. 요즘 포렌식 안 해본 검사가 있을까. 저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게 잘 납득이 안 된다. 대검 포렌식이 최고 수준이니까 여기 맡기면 될 텐데, 검찰은 못 미더우니까 일반 대학으로 가져간 거겠지. 엠비 수사, 미투, 이런 큰 사건들이 계속되다 보니 저 사건은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고, 법원도 빨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 느끼는 것 같다.” (검찰 간부)

게다가 특조단은 이번 조사의 마무리 시점을 ‘가능한 한 5월 하순경’까지로 늘려 잡았다. 앞으로도 한 달 남짓 더 조사한 뒤에야 결론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2월12일 특조단 출범부터 헤아리면 조사 기간이 3개월을 훨씬 넘게 된다. ‘가능한 한’이 붙어 있으니, 여의치 않으면 더 길어질 수도 있겠다.

이렇게 장기간 조사를 하더라도 여전히 한계는 분명하다. 특조단은 앞으로 할 일을 “(문건의) 작성자, 피보고자, 작성 경위”와 “인적 조사”라고 제시했는데, 대법원 차원의 강제조사는 불가능하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아니어서 조사대상자가 응하지 않으면 강제조사를 할 수 없다. 현직 법관이야 특조단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미 퇴직한 임종헌 전 차장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조사를 처음부터 거부하거나, 조사에 응하더라도 특정 사안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면 그만이다.

임 차장의 ‘윗선’으로 법원 안팎에서 지목되고 있는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양승태 대법원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법원 바깥의 관련자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그 밖에 조사과정에서 드러났거나 드러나게 될 인물들의 경우 특조단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수사권 없는 ‘셀프조사’의 원천적인 한계다.

특조단은 ‘보고’에서 “사법행정권 남용의 책임이 있는 관련자들에 대한 공정한 조치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짐하고 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가서 더 이상의 조사가 불가능하니 검찰이 수사해 달라고 ‘자청’할 가능성을 법조계에서는 절대 높게 보지 않는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1월24일 입장문에서 “법원 스스로의 힘으로 이번 사안이 여기까지 밝혀졌듯이 앞으로도 그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법원 외부에 이 사건 조사를 맡길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외부 조사, 특히 검찰 수사만은 절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법관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일단 문을 열어주면 검찰이 무슨 짓을 할지, 어디까지 볼지 알 수 없고 (결과를) 믿을 수도 없다는 극도의 경계심이 법관들 사이에 있다.” (서울지역 법관)

그럼 검찰은? 여전히 ‘관망’ 중이다. 참여연대와 투기자본감시센터가 각각 양 전 대법원장 등을 고발한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에 배당돼 있는데, 검찰은 아무 움직임이 없다. “저쪽(대법원)에서 하고 계시는데 감히 우리가 어떻게….”(검찰 고위 관계자) 검찰은 “저쪽에서 요청이 있기 전에는 절대 먼저 (수사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 사건의 실체 규명이 자칫 ‘부지하세월’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은 19일 오후 2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선고를 한다고 16일 예고했다. 앞서 추가조사위원회가 공표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이라는 문건에서 언급된 그 사건의 재상고심 선고다.

“특히 우병우 민정수석 → 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

문건에 이렇게 적시돼 있던 원세훈 사건은 그 뒤 실제로 전원합의체에 배당됐고, 2015년 7월 우 전 수석의 바람처럼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논 파일’, ‘시큐리티 파일’ 등 선거법 위반으로 본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파기환송심인 서울고법이 전원합의체의 판단과 달리 지난해 8월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유죄를 인정해 징역 4년·자격정지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뒤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애초 이 사건은 대법원 형사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에 배당돼 있었지만, 추가조사위원회의 파일 공개로 파문이 커지자 대법원은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같은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두 번째 판결인 셈이다.

이번 판결이 특히 눈길을 끄는 이유는 대법관 구성이 2015년 7월 파기 환송 때와는 많이 달라져서다. 대법원장(재판장)이 양승태에서 김명수로 바뀌었고, 당시 대법관 중 6명이 퇴임했다.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13명 가운데 과반인 7명이 바뀐 것이다.

이들은 문제의 문건이 공개된 다음날(1월23일) 긴급 간담회를 열어 엉뚱하게도 언론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대법원이 외부기관의 요구대로 특정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해 원심판결을 파기함으로써 외부기관이 대법원의 특정 사건에 대한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법원이 이에 영향을 받았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했던 대법관 모두가 참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9일 오후 2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상고심 사건 판결을 선고한다. 그래서 판결의 내용이 더욱 주목된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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