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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권위주의 시대 공안사건 닮은 ‘청와대 선거개입’ 공소장

등록 2020-02-12 15:26수정 2020-03-20 15:42

강희철의 법조외전(84)
검찰, 공소장에 ‘대통령 선거중립 의무’ 강조
파장 키웠으나 선거관여 의심 ‘팩트’ 안 보여
법조계, “공소장에 검찰 의견·추론·평가 많아
재판부 선입견 막자는 ‘공소장일본주의’ 위반”
윤석열 총장 주도 ‘적폐수사’에서 관행 정착
법무부·여권 누구도 당시에는 문제 안 삼아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및 선거담당 부장검사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 총장은 “선거범죄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정치영역에 있어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것으로 우리 헌법체제의 핵심인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및 선거담당 부장검사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 총장은 “선거범죄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정치영역에 있어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것으로 우리 헌법체제의 핵심인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이른바 ‘울산사건’ 공소장의 파장이 크고 길다. 지난 7일 전문이 언론에 공개되고 꽤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화제다.

“하이고, 정말 놀랍던데요.” 고등법원 부장을 지낸 변호사의 ‘감상평’이다. 2018년 치러진 6·13 지방선거에서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라는 송철호 후보의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총동원’됐다는 검찰 공소장을 읽고 난 뒤 그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강심장이라고 듣긴 했지만, 공소장에 저렇게까지 쓸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다른 법관 출신 변호사도 “가까운 법조인들이 공소장 읽어보고는 다들 입이 떡 벌어지더라”고 전했다. ‘현직’ 대통령을 언급하고 있어서다. “읽어보면 다들 느끼는 거지만, 사실상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잖아요. ‘당장은 현직 대통령의 헌법상 특권 때문에 당신을 수사하지 못하지만, 임기 끝난 뒤에 봅시다’라는 뜻이 행간에서 읽히거든요. 여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나요? 누군 농담처럼 말합디다. 대통령 취임사에 나오는 대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라고 말이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왜 기를 쓰고 공개를 막았는지도 알겠더군요.”

송철호는 어떻게 임종석을 만났을까

여태 이런 공소장은 없었다. 집권 중인 청와대가, ‘살아 있는 권력’이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혐의는, 설령 그런 일이 있어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검찰이 알아서 뭉갰다. 그런데 이번엔 수사와 기소가 이뤄졌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70여 쪽 공소장에 빼곡히 적힌 공소사실을 요약하면, 청와대는 송 후보의 당선을 위해 차려진 ‘선거 캠프’인양 백방으로 뛰었다는 것이다. 우선 청와대의 ‘하명 수사’가 있다. 민정수석실이 경찰에 내려보낸 ‘김기현 울산시장 첩보 보고서’는 실제 압수수색과 수사로 이어지며 김 시장 우위의 선거 판도를 흔들었다. 청와대는 선거 이전에 모두 18차례에 걸쳐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받았다. (그런데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에 나와 “모두 9차례 보고를 받았고, 그것도 선거가 끝난 뒤에 받았다”고 답변했다) 송 후보는 직접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을 만나 자유한국당 소속인 김기현 시장에 대한 수사를 ‘청탁’한 것으로 나타난다.

두 번째 축은 공약 설계와 지원이다. 청와대가 먼저 송 후보 쪽에 ‘공공병원’ 설립 공약을 내세우라고 제안하는 한편, 김기현 시장의 주요 공약이던 ‘산재 모(母) 병원’의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결과 발표를 최대한 늦췄다. 선거를 불과 20일 앞두고 발표한 예타 결과는 텔레비전 토론 등에서 송 후보에겐 유리하게, 김기현 시장에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세 번째는 송 후보의 안정적인 입후보를 위해 민주당 내부의 잠재적 경쟁자를 ‘정리’했다. 한병도 당시 정무수석이 직접 나서서 임동호 전 최고위원에게 “공기업 사장 등 4자리 중 하나를 선택하면 어떠냐”고 제안했고, 임씨는 실제로 출마를 접었다.

검찰은 대통령 비서실의 8개 비서관실이 송 후보 한 사람의 당선을 위해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은 ‘지휘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의심한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피의자’ 자격으로 불러 조사한 것도 이 의문을 밝히기 위해서다. 임 전 실장은 송 후보와 각별한 인연이랄 것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공소장을 보면, 청와대를 찾은 송 후보가 임 전 실장을 직접 만나 ‘산재 모 병원’ 예타 발표를 늦춰 달라고 부탁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임 전 실장을 직접 면담해서 부탁까지 하는 ‘특권’을 누린 민주당 예비후보가 송 후보 말고 또 있을까. 그런 특권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통령은 더 특별한 정치적 중립 의무”

검찰의 의심이 대통령까지 겨냥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임박한 4·15 총선 일정 탓에 검찰 수사는 일단 멈춰 섰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공소장의 들머리에 대통령을 직접 언급했다.

“특히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다른 공무원보다도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 이처럼 공무원은 그 직위를 막론하고 법률에 따른 공직선거에서 특정 후보자를 당선하게 하거나 낙선하게 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되고,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 대목이 공개되면서 정치적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 혐의를 검찰이 상당 부분 확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향후 수사를 암시하는 ‘선전포고’처럼 읽을 수 있어서다. 야당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검찰의) 공소장 내용은 대통령의 명백한 탄핵 사유이고 형사 처벌 사안”(권경애 변호사), “공소장 내용이 사실이라면 헌정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김종민 변호사)라는 등 신랄한 평이 이어졌다.

그런데, 공소장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대통령의 직접 개입을 뒷받침할 ‘팩트’가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일종의 ‘선언’에 그쳐 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소장은 의견서가 아니다. 그런데 공소장에 의견서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혹평’도 있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한병도 전 정무수석의 변호인들도 11일 낸 입장문에서 “검찰의 공소장은 ‘공소장 일본주의’에 정면으로 반한다. 대통령이 선거 개입에 관여하였다는 인상을 주려는 표현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28일 울산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 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에서 송철호 울산 시장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28일 울산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 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에서 송철호 울산 시장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공소장이 의견서와 뒤죽박죽 섞여 있다”

공소장 일본(一本)주의란 검찰이 법원에 공소를 제기할 때는 공소장 하나만 단출하게 내도록 한 원칙을 말한다. 가령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사람의 공소장이라면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면 안 되는데, 술 마시고 운전했다’고 최대한 간단히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피고인은 평소 술을 좋아하고 매일 마신다’, ‘피고인은 안전운전에 대한 의식이 없다’, ‘사고가 나면 보험료가 오르고 보험 재정이 악화해 결국 타인에게도 피해를 주고 사회적 비용도 증가한다’는 등의 내용까지 쓰면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목적은 재판부가 재판을 열기 전에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공소장을 받아 본 재판부가 ‘아,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죄를 지은 게 틀림없구나’하는 식의 생각을 갖게 되면 그 재판은 하나 마나 한 요식 행위가 되고 만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제254조)에는 공소장에 △피고인의 성명 기타 피고인을 특정할 수 있는 사항 △죄명 △공소사실 △적용법조, 이렇게 네 가지만 적으라고 돼 있다.

이는 형사소송규칙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도 확정된 원칙이다. “검사가 (법원에) 공소를 제기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공소장 하나만을 제출하여야 하고, 그밖에 사건에 관하여 법원에 예단(豫斷)을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대법원 2009년 7월 전원합의체 판결)

그런데 이 사건 공소장을 보면 곳곳에 검찰의 의견과 추론, 평가가 배치돼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 소속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강조한 것을 시작으로, 검찰이 추정하는 6·13 지방선거의 정치적 의의(“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전직 대통령의 탄핵 등으로 촉발된 적폐 청산 기조를 지방까지 확산시키고자 하였다”), 대통령 비서실의 직무 범위(“대통령 비서실 등은…견제 기능이 현저히 약하여 권한이 남용될 우려가 높으므로…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통제 장치가 있어야 한다”) 등이 나타난다. 피고인들의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담은 것도 마찬가지다.

“나 같으면 몇 쪽 분량으로 줄일 수 있겠더라. 불필요한 의견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공소장은 최대한 드라이하게 쓰고, 설명이 필요한 것은 나중에 의견서로 제출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왜 굳이 공소장에 썼겠나. 재판부와 여론을 겨냥해서다. 좋게 말하면 설득이고, 나쁘게 말하면 선입견과 프레임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중립 의무를 맨 처음 넣은 것은 이 사건에 대통령이 연루돼 있다는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정작 인상 이상의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윤석열 검찰’에서는 이런 식의 공소장이 하나의 스타일로 정착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공안사건 공소장을 보는 것 같다. 예전 공안사건들에선 ‘북한이 국가를 참칭한 반국가단체라는 정’을 주절주절 장황하게 나열한 뒤에 그런 걸 아는 피고인이 이러이러한 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공소사실과 무관한 내용까지 기재했다. 심지어 의식화 과정, 가정환경을 적기도 했다.” (수사통·검사장 출신 변호사)

이명박·양승태·임종헌 공소장도 같은 논란

공소장 비공개에 ‘목숨’을 걸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역시 이런 문제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11일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에서 ‘공소장 일본주의’를 언급하며 “(그런 원칙이) 실질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그동안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말로 자신의 공소장 비공개 결정을 합리화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선 “잘못 작성된 공소장이 본질적인 문제인데, 추 장관이 엉뚱하게 공소장 공개를 트집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소장 일본주의를 깨는 ‘잘못된 관행’은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 수사 과정에서 확대됐다. 검찰의 공소장은 차츰 양이 늘더니 이젠 웬만한 단행본을 넘보는 수준으로 두꺼워졌다. 울산사건은 70여 쪽에 그쳤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259쪽,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296쪽,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243쪽(별지 포함)에 달했다.

그 안엔 형사소송법과 대법원 판례가 제한한 범위를 넘어선 내용이 다량 들어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들의 재판에서 매번 ‘공소장 일본주의’가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각 피고인의 이름과 ‘공소장 일본주의’를 입력하면 관련 기사들이 수백 건 뜬다.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급기야 검찰은 지난해 4월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서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 30여 군데를 삭제하기까지 했다. 재판부가 부정적 선입견을 갖게 할 수 있는 불필요한 내용이라며 공소장에서 34곳을 수정·삭제하라고 권고하자 하는 수 없이 이행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조용했다. 청와대나 법무부, 여권의 어느 누구도 공소장 일본주의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검찰의 의견과 추론이 듬뿍 담긴 공소장 공개를 문제 삼은 사람도 없다. 오히려 여권은 공개된 공소장을 야권 공격에 적극 활용했다. 이름난 형법학자이면서 온갖 시사 문제에 입바른 코멘트를 ‘날리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이 문제에는 내내 침묵했다. ‘내 편’ 아닌 ‘네 편’이 수사 대상인 한 그건 ‘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추 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런 “잘못된 관행”을 왜 여태 방치하다가 하필이면 대통령이 의심받는 청와대 선거 개입 사건에 와서야 “첫걸음”을 떼겠다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그는 11일 기자 간담회에서 “국회의원일 때는 (이번에 자신이 문제 삼은) 공소장 공개 등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을 받더니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검찰 근처에도 안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법률가(판사) 출신이라서 법사위에 가는 것도 전관 특혜라고 생각했다. 저는 (법무부에) 공소장 제출을 요구한 적이 없다.” 그는 국회에서만 20년을 보내고, 여당·야당 대표까지 지낸 ‘5선’ 의원이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 83회를 끝으로 ‘강희철의 법조외전’ 연재를 마칩니다. 강 선임기자가 회사 인사에 따라 법조팀을 떠나게 됐습니다. 지난 3년간 관심을 보여주신 모든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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