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7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이보다 더 감동적인 평화 드라마가 있었던가? 두 손을 맞잡고 높이 5㎝의 작은 콘크리트 턱에 불과한 군사분계선을 오간 두 주인공, 물오른 봄숲을 배경 삼아 펼쳐진 도보다리 위 차담, 그리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추진을 담은 판문점 선언 발표 등 장면 하나하나가 준 벅찬 감동은 어떤 수식어로도 담을 수 없다. 이보다 더 잘 만든 통일교육 다큐멘터리가 있었던가? 남북의 지도자가 따뜻한 차 한잔 마시니 핵실험장 폐쇄도 가능했건만 70년의 남북관계가 왜 대화와 협력보다 적대와 대결로 치달아야만 했는지 등 판문점 드라마는 동시에 무수한 질문을 던지는 최고의 다큐멘터리이기도 했다.
북-미 정상회담 등 갈 길이 멀지만 남과 북이 만든 4월의 평화 열차는 분명 한반도 대전환이란 새 궤도 위에 올랐다. 남의 부산에서 출발해 북의 안변을 거쳐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을 지나 런던까지 가는 여정은 더는 헛된 몽상이 아니며, 중국이 아닌 북녘 땅을 통해 백두산에 올라 새해 일출을 맞는 것도 머잖아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상이 될 것이란 기대도 낳는다.
4월의 평화 열차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통일 열차가 되기까지는 유념해야 할 대목이 부지기수일 게다. 내게 딱 한가지만 말하라면 포용이다. 포용은 “분단 등 현실을 인정하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정책이자 지도원리이며 리더십이다.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며 대화를 나누는 데서 시작”한다. 남과 북을 마주하게 한 바탕도 포용(정책)이었으며, 남남갈등을 푸는 사회통합의 열쇠도 포용(복지)이다. 열차가 종착역에 이르려면 무엇보다 포용적 리더십의 혁신이 지속돼야 한다. 남북은 해방 이후 두 세대 이상 다른 체제로 살며 맞섰다. 서로를 받아들이기까지는 땅과 바다, 하늘로 오가는 무수한 작은 발걸음이 필요하다. 서로가 기꺼이 포용할 때 이런 발걸음은 진정 치유와 화합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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