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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추리 주민들의 11년 외침 “마을 이름을 돌려주세요”

등록 2018-05-03 16:03수정 2018-05-03 16:52

2007년 평택 미군 기지 이전으로 고향 떠난 주민들
청와대 앞에서 “정부는 약속 지켜달라” 기자회견
“10년 넘게 지나 덜 아프고 잊어버릴 법도 한데…”
주민들은 자주 울고 종종 말을 잇지 못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으로 평생 살아온 터전을 떠난 경기 평택 대추리 주민들이 3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2007년 정부대표가 주민대표와 맺은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주민들은 당시 '공동체 유지'를 최우선으로 해 '대추리 지명 유지'와 '생계대책용 상업용지 공급'을 정부가 약속했다고 밝혔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으로 평생 살아온 터전을 떠난 경기 평택 대추리 주민들이 3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2007년 정부대표가 주민대표와 맺은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주민들은 당시 '공동체 유지'를 최우선으로 해 '대추리 지명 유지'와 '생계대책용 상업용지 공급'을 정부가 약속했다고 밝혔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작전명 ‘여명의 황새울’ 2006년 5월4일, 어린이 날을 하루 앞둔 이날 경찰 1만2000여명과 용역 700명이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에 모였다. 이들이 앞장세운 포클레인의 날은 평택 미군 기지 이전을 막기 위해 1천여명의 주민과 시민들이 모여 있던 대추 초등학교를 향했다. 이날 강제진압 이후 대추리 이장이었던 김지태씨를 비롯해 20명이 구속됐다. 그 뒤로 9개월 만인 2007년 2월13일, 주민들은 대추리 떠나 이주단지가 마련된 경기도 평택시 노와리에서 살겠다고 정부와 합의했다. 합의안에는 노와리 이주단지의 명칭을 ‘대추리’로 바꿀 수 있고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상업용지 8평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여명의 황새울’ 작전 이후 꼬박 12년이 흐른 5월3일, 대추리 주민 30여명은 청와대 분수대 앞에 섰다. 행정명칭 변경과 상업용지 제공을 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지켜달라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서다.

방승률(82) 할아버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먼저 이 자리를 마련해 준 기자들에게”라고 말문을 열다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방 할아버지는 “11년 전 고향 마을을 떠날 때 정부가 협상 내용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짐을 챙겨갈 시간도 없이 이주했다. 약속을 꼭 지켜달라.”라고 말했다.

김지태씨에 이어 대추리 이장을 맡았던 신종원(58)씨는 “행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주민들에게는 아직 대추리 이장이다. 평생 일군 농토와 평생 쓸고 닦을 집을 준비도 떠나게 된 갈림길이 된 사건이 만 12년 전에 일어났다. 누군가는 4월이 잔인하다고 하지만 대추리 주민들은 5월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김지태 이장이 구속되고 어쩔 수 없이 정부와 협상을 했다. 이주 지역의 이름을 대추리로 지어줄 수 있다면, 김지태 이장과 함께 구속된 사람들을 석방해준다면 평생 일군 농토와 고향 땅을 떠나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그 뒤로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정의가 바로 선 나라로 나가고 있다. 이제 대추리 주민과 한 정부의 약속들도 성실히 이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정오(81) 할아버지 역시 “정부가 직접 서명한 약속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주민들은 자주 울고 종종 말을 잇지 못했다.

정부와 대추리 주민들의 2007년 2월13일 합의문을 보면 이주단지 행정동 이름 변경과 관련해 ‘노와리에 이주단지를 조성할 경우 행정구역 명칭을 ‘대추리’로 변경하는 것은 해당 지역 기 거주 주민의 동의 등 행정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에 따른 절차와 요건 구비 시 승인한다‘라고 되어 있다. 평택시는 이 합의문을 근거로 2012년 6월부터 노와1~4리의 주민들에게 우편을 보내 행정명칭 변경에 대한 찬반 의사를 물었다. 그 결과 154세대(총 293세대) 중 찬성 10세대, 반대 137세대, 무효 7세대로 나왔다. 반면 노와리로 이주한 대추리 주민 41세대(총 44세대)는 모두 찬성 의사를 밝혔다. 평택시는 이 때문에 행정명칭을 바꿀 수 없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대추리 주민들은 합의 때 정부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기 때문에 기존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대목을 형식적인 문구로만 생각했다는 입장이다. 또 동네 전체의 이름을 바꿔달라는 것이 아니라 노와리 이주단지가 위치한 곳을 별도의 ’리‘로 해서 ’대추리‘라고 바꿔 달라는 것인데 이런 의사가 노와리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채 우편 투표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추리 주민들은 수원지법에 노와리 이주단지 행정명칭 변경과 관련해 평택시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내놓은 상태다. 이날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은 강미 대추리 평화마을 사무장은 “어르신들에게 공동체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의미다. 10년이 넘게 지났으면 덜 아프고 잊어버릴 법도 한데 아직도 생각만 하면 눈물을 쏟아내신다”라고 말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으로 평생 살아온 터전을 떠난 경기 평택 대추리 주민들이 3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2007년 정부대표가 주민대표와 맺은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으로 평생 살아온 터전을 떠난 경기 평택 대추리 주민들이 3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2007년 정부대표가 주민대표와 맺은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추리 주민들은 정부가 2007년 생계용 상업용지를 공급하겠다고 한 약속 역시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합의 당시 정부는 이주로 농사 등 생계유지 방법을 잃은 주민들에게 상업용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장사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였다. 합의서에는 ‘평택지원특별법상 상업용지는 8평을 공급한다’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이 약속 역시 10년이 넘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최근에야 조합을 만들어 오면 ‘고덕 국제화 계획지구’에 상업용지 등을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대추리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무상으로 상업용지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을 만들어 땅 사고 건물을 세울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추리 주민들은 이런 계획이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종원 이장은 “20~30명씩 조합을 만들어 상가 건물을 세우라는 것인데 해당 지역의 땅값이 너무 비싼 데다, 건물을 짓는 데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실제로 상업용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주민들이 거의 없다. 10년간 계속 약속을 미뤄오다가 비현실적인 계획을 들고 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 정환봉 기자, 사진 김정효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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