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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제주 예멘 난민 “오늘이 숙소 마지막 날인데 일자리 못 구해 막막”

등록 2018-06-19 10:48수정 2018-06-21 11:49

18일 ‘제주출입국청 채용설명회’에 예멘 난민 200명 넘게 몰려
어촌으로 보냈지만 일부 돌아오고 고기잡이배는 엄두조차 못내
아파크(왼쪽)와 사미(오른쪽) 부부가 18일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상담하고 있다. 제주/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아파크(왼쪽)와 사미(오른쪽) 부부가 18일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상담하고 있다. 제주/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 “같이 있고 싶어요” 예멘 난민 부부의 간절한 소망

“저희는 부부에요. 같이 가게 해주세요.”

히잡을 쓴 아파크 압둘라가 <한겨레21> 기자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파크는 남편 사미 아흐메드와 꼭 붙어 있었다. 손은 잡지 않았다.

아파크는 기자와 말하기를 주저했다. 아파크는 “아직 결혼한 뒤 일정한 기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남자와 대화를 할 수 없다. 하지만 기자는 한국인이고, 상황이 특별하기 때문에 대화를 하기로 했다”고 했다.

예멘의 남서쪽에 있는 도시 타이즈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파크는 2012년부터 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공부했다. 그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2014년 알 후티군이 내전을 일으키면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됐다.

아파크는 2년 6개월 전 사미와 결혼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옷장사를 했다. 내전을 피해 사우디에 거주하는 예멘인이 증가하자 사우디 정부가 정책을 바꿨다. 사우디에 체류하기 위해선 점점 더 많은 돈을 내야 했는데 이들 부부가 감당할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난해 타이즈로 돌아갔고, 사미는 동생과 오토바이 운수업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지난해 11월 사미의 동생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누가 쏜지도 모른 총격에 숨을 거뒀다. 총알 여러발이 몸에 박힌 동생은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사미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거의 1주일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근육도 많고 건강한 사미였지만 동생의 죽음 이후 점점 야위어 갔다.

부부는 제주도로 가면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봤다.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희망이 없는 예멘을 떠나 한국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갖고 있던 모든 보석을 팔고, 비행기 표를 구했다. 그들은 그렇게 제주도로 왔다. 4월이었다.

■ 정부, 제주도를 나갈 수는 없지만, 일은 할 수 있게…

제주 출입국청이 게시한 공고물. 14일에 어업, 18일에 식당 서비스업에 예멘 난민신청자들을 연결해 줄 계획이었다.
제주 출입국청이 게시한 공고물. 14일에 어업, 18일에 식당 서비스업에 예멘 난민신청자들을 연결해 줄 계획이었다.

18일 오전, 제주시 출입국·외국인청(이하 출입국청)에 일자리를 구하려는 예멘 난민 200여명이 모였다. 한국에 오면서 가져온 돈이 떨어져 당장 숙식을 해결하기도 힘이 든 이들은 이른시간부터 줄을 섰다. 오전 4시부터 나온 사람도 있었다.

예멘 내전 상황이 악화되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대부분은 말레이시아를 거쳐 무사증 입국이 가능했던 제주도로 왔다. 제주도에서 난민 신청서를 내는 예멘인이 늘어나자 정부는 이들이 제주도를 벗어날 수 없게 ‘출도제한조치’를 내렸다. 대신 법무부는 11일 난민 지위 신청을 하고 제주도에 체류하는 예멘인이 일시적으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도록 허락했다.

제주도 출입국청은 법무부 조처에 따라 일할 사람이 필요한 지역주민들과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14일에는 어업에, 18일에는 식당·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주민들과 연결해 줄 계획이었다. 14일에는 470명이 모였고, 280명이 숙식을 제공하는 일자리를 구해 제주도 곳곳으로 흩어졌다. 현재 출도제한조치가 걸린 예멘 난민 신청자는 모두 480명이다.

하지만 18일에는 계획대로 행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식당·서비스업 사업장주가 60명 밖에 되지 않았다. 출입국청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을 불러모았다.

여러가지 요구사항이 많은 주민들과 난민 신청자들 사이를 중재하는 것도 출입국청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침에 온 순서대로 업주들과 연결시켜 줄 계획이었던 채용박람회는 잠시 중단됐고, 주민들과 난민들이 자율적으로 접촉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계약서를 쓰고 일터로 이동하고, 22일까지 출입국청으로 신고를 하도록 조치했다.

■ 어촌서 되돌아 온 50명, 일 못 구한 난민 ‘막막’

하지만 14일 어촌으로 일을 하러 갔다가 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포기하고 돌아온 예멘 사람들은 다시 고기잡이배를 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출입국청은 14일 일자리를 찾았다가 포기한 사람이 50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예멘에서 신문기자였던 이스마일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배멀미가 심하고 고기잡이 배는 도저히 탈수가 없을 것 같다. 식당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구하지 못해 너무 아쉽다”며 숙소로 되돌아갔다. 이스마일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몇번을 되돌아 봤다.

이날 오전 5시부터 나와 기다렸다는 따맘은 “목요일에 일자리를 찾아 고기잡이 배를 타러 간 친구가 며칠째 연락이 안된다. 일이 너무 힘들다고 해서 도저히 엄두가 안난다. 식당에 일자리를 구하려고 14번째로 여기 왔는데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이날은 공식적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지금부터는 제주도 곳곳을 다니며 개인적으로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한다. 따맘은 “오늘(19일)이 숙소에서 묵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무료 숙소나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을 알려주기를 부탁한다”고 ‘제주의 예멘 난민들(Yemen Refugees in Jeju)’ 페이스북 그룹에 글을 올렸다. 제주는 19일부터 장마권에 든다.

아파크와 사미 부부는 다행히도 한 식당주인과 이야기가 잘 돼 함께 갈 수 있게 됐다.

제주/ <한겨레21>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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