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주최해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내 난민아동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토론이 끝난 뒤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오른쪽)이 할리마와 포옹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수도권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할리마(16·이하 모두 가명)의 엄마는 아프리카 국가 출신이다. 여성의 성기를 절제하는 악습인 ‘할례’를 거부했던 할리마의 엄마는 주변인들의 비난을 피해 모국에서 1500㎞나 떨어진 가나의 유엔난민기구(UNHCR) 버부람 난민 캠프까지 떠밀렸다. 2001년, 엄마는 난민 캠프에서 딸 할리마를 낳았다. 열한살이 될 때까지 난민캠프에서 살았던 할리마는 2012년 2월 엄마와 함께 한국으로 와 난민 신청을 했다.
“사실 저는 난민 인정이 될 줄 알았습니다. 난민으로 인정받아 가족 모두 한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매일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제 막 16살이 됐을 뿐인데, 그런 나이에 겪으면 안 되는 것들을 너무 많이 겪으며 자랐습니다.” 덤덤한 목소리로 자신의 경험을 말하던 할리마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난민캠프에서는 할리마와 엄마가 떠나기 전 이들이 난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까지 발급했지만, 법무부에서는 이 둘에 대해 난민인정을 불허했다. 난민인정불허처분 취소소송에서도 3심까지 패소한 이들은 현재 난민인정 재신청을 한 상태다. 난민 캠프에서 태어난 할리마는 한국에 도착해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난민’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2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내 난민아동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참가한 할리마의 사례는 난민인정률(2018년 4월 기준)이 4.1%에 불과한 한국의 현실을 방증한다. (난민협약국 평균 난민인정률은 38%.) 한국에서 태어나 ‘단 한번도’ 한국 밖을 나가본 적이 없고, 부모님이 쓰는 영어보다 한글이 더 익숙한 초등학생 로사(10)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난민 신청자다. 2008년 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내전을 피해 한국으로 온 로사의 부모님은 한국에서 로사와 남동생을 낳아 길렀지만, 지난 10년간 난민인정을 받지 못했다. “부모님이 원래 살던 아프리카에는 할머니랑 언니 셋, 오빠 한 명이 같이 살고 있대요. 저는 한 번도 못 봤고, 사진으로만 봤어요.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언니 오빠가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혼자 있으면 외롭거든요.”
20일 오전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주최해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내 난민아동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참가한 로사(10)가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난민 신청자들은 신청 후 6개월간은 취업허가를 받을 수 없을뿐더러, 정부로부터 생계지원도 받을 수 없어 경제적 어려움을 크게 겪는다. 난민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과 불안한 지위는 아동의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할리마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한국에 도착해 이젠 살았구나 싶었지만, 당장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어요. 죽을 만큼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어요. 엄마는 취업 불가라 일을 못하셨고, 공장 일을 하던 아버지는 기계에 손가락이 다쳐 3개가 잘렸습니다.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조금씩 하시면서 가족을 부양하세요.” 경기도에 거주하는 로사의 아빠는 공장에서, 엄마는 미용실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다른 가족들도 다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같이 살고 싶다고 하는데, 돈을 많이 벌지 못해서 못 그러고 있대요. 엄마 아빠가 슬퍼하는 모습 보면 저도 슬퍼져요.”
난민이자 이방인으로서 감내하는 따가운 시선도 아이들에겐 상처다. 할리마가 이제는 능숙하게 구사하는 한국어 실력은 사실 교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에 가까웠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고릴라나 원숭이를 닮았다면서 저를 놀렸어요. 그럴때면 엄마한테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화풀이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 한국말을 먼저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잠도 줄여가면서 공부했어요.” 지금은 다행히 친한 친구들이 생겼지만, 할리마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지하철같은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어렵다”며 눈물을 흘렸다. 토론회를 주최한 세이브더칠드런의 조민선 국내사업부장은 “난민 아동의 생활실태조사 결과 부모의 난민 지위가 불안정할수록 아동들이 언어발달에 지연을 겪거나, 위축감, 우울감등을 더 많이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난민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아동의 생존과 보호를 위해서라도 보편적 출생등록제도 실시, 난민 인정률 향상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일 오전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주최해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내 난민아동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참석한 할리마가 본인이 직접 쓴 글을 낭독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난민들은 자신의 신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어렵다. 난민을 향한 혐오 발언이 극심한데다, 국가로부터 난민 인정을 기다려야하는 입장에 놓인 탓이다. 할리마와 로사의 부모님은 아이들의 본명이나 출신 국가, 사는 지역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러나 난민 아동들은 각자 저마다의 꿈을 키우며 한국 사회에서 움트고 있다. 할리마는 친구와 가족, 이웃들과 지금처럼 오래 함께 사는 것을 ‘일상의 소박한 바람’이라고 표현했다.
“지금은 한국의 평범한 여고생으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신기한 게 가나의 난민캠프에 있을 때는 꿈이 없었는데, 한국에 오고 나서 꿈이 생겼어요. 특기를 살려서 통역가가 되거나 멋있는 여군이 되는게 꿈이에요.”(할리마)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 중에 송중기랑 박보검을 좋아해요. 나중에 커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면 (아프리카에 있는) 언니 오빠들 한국에 데려와서 같이 사는게 꿈이에요.”(로사)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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