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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좌절한 대중이 찾은 상상의 적…예멘 난민과 배타주의

등록 2018-06-26 14:54수정 2018-06-26 16:29

[한겨레21]
제주 예멘 난민 사태 이후 폭발하는 배타주의
도덕적 비난 말고 혐오에 숨은 시민적 요구 찾아야
지난 6월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예멘 난민 취업설명회에서 순서를기다리는 예민 난민들. 박승화 기자
지난 6월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예멘 난민 취업설명회에서 순서를기다리는 예민 난민들. 박승화 기자

올 것이 왔다. 예멘 난민의 제주 도착을 계기로 어떤 정념들이 폭발적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을 뭐라 일러야 할까. 난민혐오,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혐오), 극우주의…. 여러 명명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에서 ‘배타주의’(exclusionism)라는 말을 제안하고 싶다.

배타성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특질 중 하나이자, 내가 나일 수 있는 동일성의 조건이다. 그러나 배타성이 배타주의가 되면, 개인과 집단은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심지어 타자의 존재를 지우려 든다. 주로 외국인을 향하지만, 동질 집단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대표적 사례가 매카시즘, ‘빨갱이 혐오’다. 배타주의는 선민의식이나 고양된 애국심에 젖어 타 집단을 적대하는 쇼비니즘(광신적 애국주의나 국수적 이기주의) 또는 징고이즘(광신적이고 호전적인 애국심)과는 다르다. 권위주의적 지도자가 나올 경우 배타주의가 파시즘으로 전화할 가능성이 있겠으나 아직은 그리 되지 않았다.

너무 추상적인 우정과 환대의 정치

배타주의의 핵심은 외국인 여부가 아니라 우리와 우리 아닌 자, 정상성과 비정상성, 우월성과 열등성, 순수성과 불순성 따위로 배제와 차별의 이유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메커니즘 자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배타주의가 나쁜 이유는 적을 생산하는 적대의 정치이기 때문이 아니다. 착취와 억압이 존재하는 한 적대는 필연적이다. 문제는 차별과 배제의 메커니즘이 실제 적대를 왜곡하고 은폐해버린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적대의 정치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면서 너무 쉽게 ‘우정과 환대의 정치’를 대안으로 제시하곤 한다. 물론 우정과 환대의 정치는 우리의 목표로 손색이 없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짜 문제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규범적인 접근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2009년 말부터 2010년 말까지 약 1년 동안, 필자는 한국 최대 규모의 반다문화주의 커뮤니티였던 ‘다문화정책 반대’ 카페에서 유통되는 담론을 살펴본 적이 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나오기 한참 전이다(자세한 논의는 <우파의 불만: 새로운 우파의 출현과 불안한 징후들>(글항아리·2012) 참조). 거기에는 날것 그대로의 배타주의 담론이 펄떡이고 있었다. 그 말들은 이른바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이 생산하고 유포해온 ‘주류 우파’의 언어와 사뭇 달랐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 정착을 위해 강간을 해서라도 한국 여자들을 임신시키려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아이들이 후진국형 전염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무슬림은 인구가 적을 때 조용히 지내다가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타 종교에 대한 박해와 테러를 시도하며, 결국엔 신정일치 체제를 관철시킨다. 한국의 이슬람화는 2020년이다” “다문화 정책은 저가 인력을 붙들어둬서 임금동결 상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의 더러운 음모이다. 인권은 그걸 가리기 위한 위장일 뿐이다.”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지역주의, 반공주의, 뉴라이트 역사관 같은 ‘전통적 우파 담론’은 아예 관심 밖이었다. 이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건, 대다수 국민이 진보세력과 보수세력 모두 ‘다문화주의 한통속’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탄식했다. “다문화족들은 우파가 정권을 잡으면 금방 우파에 붙고, 좌파가 정권을 잡으면 좌파에 붙는다. 실상 다문화족들은 정치성향이 없으며 어떻게 하면 나라 팔아 돈 벌어볼까만 생각하는 족속들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한국형 제노포비아’의 논리는 완성형에 가까웠다. 실제 지금 보이는 난민 거부 논리의 대부분이 저때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베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넷우익 커뮤니티의 맹주로 떠오른 이후, 반다문화 담론은 한동안 수면 아래에 잠겨 있었다. 일베의 담론이 온라인을 완전히 점령한 반면 다문화정책 반대 카페는 눈에 띄게 쇠락했다. 넷우익 커뮤니티의 기원이면서도 후발 주자에게 밀려났던 셈이다. 배타주의 논리의 생산지라는 점에서 일베와 다문화정책 반대 카페는 유사했지만, 내용적 측면에선 상당히 달랐다. 국가정보원의 여론 조작 도구이기도 했던 일베가 이른바 ‘민주화 세력’만을 주된 타격 대상으로 삼은 반면, 다문화정책 반대 카페는 ‘민주화 세력’뿐 아니라 ‘산업화 세력’까지 일관되게 비판했다.

가장 공포스러운 내부의 타자

2015년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를 기점으로 반다문화 담론은 다시 부상한다. 유럽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치고는 이례적으로 한국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과거 한국에서 이슬람 혐오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주로 테러리즘이나 근본주의였다면,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에는 확연히 ‘여성혐오’로 옮겨갔다. 그와 함께 등장한 게 ‘문명’과 ‘미개’(야만)의 이분법이다. ‘우리는 문명인이지만 무슬림은 미개하다’는 것이다. 식민주의자의 ‘멘털리티’를 이보다 더 명확히 보여주는 말은 없다. 독일의 역사학자 위르겐 오스터함멜에 따르면 식민주의 사고의 기본 요소는 ‘열등한 타자성의 구성’과 ‘식민자의 피식민자를 향한 문명화의 사명감’ 등이다. <샤를리 에브도> 논란 이후, 식민주의는 한국 반다문화 담론의 주요 특징으로 완전히 자리잡게 된다.

그렇다면 배타주의는 왜 이렇게 확산됐을까? 그 배경에 대중의 ‘위기 인식’이 있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재분배(redistribution)의 위기’, 또 하나는 ‘인정(recognition)의 위기’. 전자는 계급과 관련된 경제적 차원의 위기이고, 후자는 정체성과 관련된 문화적 차원의 위기다. 당연하게도 이 위기들은 최근에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착취는 늘 일어났고 억압도 마찬가지다. 재벌의 ‘갑질’과 중소기업 죽이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으며, 가부장제하의 여성 억압은 말할 나위 없다. 즉, 새로운 사회적 위기 상황이 나타나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배타주의가 출현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위기를 인식하고 설명하는 논리가 재구성된 것’에 가깝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적확히 짚었듯이, 사회모순에 대한 구조적 해결책(제도와 정치)도 개인적 해법(자기계발)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좌절한 사람들은 “상상의 해결책”을 요구하게 된다. 상상의 해결책은 이성이 아니라 편견에 의존한다. 이를테면 ‘현저성 편향’(salience bias)이 나타나는 것이다. 현저성 편향은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현저하게 드러난 단서를 사건의 원인으로 여기는 인지적 착각이다.

복잡한 사회모순의 구조를 파악하고 막강한 권력자와 맞서는 건 너무 어렵고 효능감 낮은 일이다. 하지만 내부의 수상한 자를 색출해 책임을 묻는 건 쉬울 뿐 아니라 높은 효능감을 준다. 이제 할 일은 명확하다. ‘타자의 동심원’ 가장 바깥쪽부터 순서대로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것이다. 한 세대 전, 가장 공포스러운 내부의 타자는 간첩이었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건 무슬림·이주노동자다.

‘난민혐오’ 비난을 넘어서

예멘 난민 논란은 누적된 불만이 임계점을 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혐오 발언이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인종차별” “난민혐오”라는 비난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번 사태는 사회경제적 불안과 직결된 저항이면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시민적 요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구조적 해결책이 강구되지 않는 한 저항은 강도를 높이며 반복될 것이다. 더 구체적이고 치열하게 공론화해야 하는 이유다.

박권일 사회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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