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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난민이 차린 ‘소울푸드’ 식탁에 모두가 둘러앉았다

등록 2018-06-27 16:26수정 2018-06-28 12:43

난민 여성이 준비한 ‘노마드의 식탁’ 행사
수단 출신 난민, ‘소울푸드’ 준비해 대접
“정치적 박해 피해 한국 온 남편 따라 한국행
재능 키워 좋은 사회 구성원 되는 것이 꿈”
할랄식으로 도축한 다진 소고기에 빵가루, 향신료, 다진 야채를 섞어 동그랗게 빚는다. 겉면이 노릇노릇해질 정도로 잘 구운 뒤 매콤달콤한 소스와 함께 곁들이면 아랍식 소고기 미트볼인 ‘코프타’가 완성된다. 26일 저녁 7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카페 한켠에 코프타를 비롯한 수단 가정식이 차려졌다. 쏟아지는 장대비를 뚫고 카페를 찾은 40여명의 참가자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수단 음식을 조금씩 접시에 담아 먹기 시작했다. “수단에서는 특별한 손님이 오거나 생일처럼 특별한 날에 코프타를 먹습니다. 즉, 여기 오신 모든 분이 특별하다는 얘기에요.” 아말라(27·가명)의 설명이 끝나자 ‘특별한 손님’으로 초대된 참가자들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반짝이는 초록색 히잡을 쓰고 본인이 직접 만든 음식을 소개한 아말라의 얼굴엔 한시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날 국제난민지원단체인 사단법인 피난처에서 주최한 ‘노마드의 식탁’ 행사에는 수단 출신 난민인정자인 아말라가 무대에 올랐다. 지난 4월부터 월 1회씩 진행돼 이달로 3회차를 맞은 ‘노마드의 식탁’은 세계 각국 여성 난민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가정식을 직접 만들어 나누는 행사로, 여성 난민들과 시민들의 교류를 독려하기 위해 유엔난민기구 등의 지원을 받아 기획됐다. 이날 노마드의 식탁에는 코프타를 비롯해 바오밥나무 열매 주스, 렌틸콩 치킨 스프, 잘라비아(아랍식 도너츠)등 주인공인 아말라의 사연이 묻어있는 음식이 올랐다.

아말라는 참가자들을 향해 자신의 ‘소울푸드’인 렌틸콩 수프를 소개하며 아버지와의 특별한 추억을 떠올렸다. 아말라의 아버지는 수단의 정치인이었는데, 정치권력의 탄압을 피해 이집트와 유럽을 전전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정착해 아말라와 4명의 동생을 낳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많으시고 훌륭하신 분이었지만, 극심한 인종차별 때문에 사우디에서의 삶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말라의 어머니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병상에 눕게 됐던 1999년의 어느 날, 아버지는 여덟 살이었던 아말라를 부엌으로 불러내 처음 렌틸콩 수프를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솔직히 말해서 그날 처음 제가 만들었던 수프 맛은 엉망이었는데, 아버지는 맛있다면서 그걸 다 드셨어요. 어린 딸을 기특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시나요? 제게 소울푸드인 이 음식은 아버지의 사랑과 격려를 기억나게 하는 음식이랍니다.”

14살이 되던 해 아말라는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다시 수단으로 돌아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받을 수 없었던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서였다. 2008년 의료엔지니어링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한 아말라는 학교에서 지금의 남편인 라만(36·가명)을 만났다. “라만을 처음 만났던 2009년에는 민주주의를 꿈꾸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정말 많이 일어났어요. 라만도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이 아프리카계 수단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랍계 정부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정치활동을 했던 라만의 모습이 ‘아버지와 닮아서’ 사랑에 빠졌다는 아말라에게 ‘잘라비아’는 연애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잘라비아는 수단식 길거리 도너츠에요. 라만과 함께 대학시절에 먹었던 음식인데, 아직도 이 음식을 볼 때면 달콤했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2012년 라만은 정치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떠나 난민신청을 하게 됐고, 1년 뒤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아말라와 연락할 수 있었다. “온라인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던 라만은 2016년 제게 프로포즈를 했어요. 이듬해인 2017년 이집트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11월 한국으로 돌아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아말라는 난민법상 난민 지위를 획득한 배우자나 또는 미성년자녀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는 ‘난민가족 재결합 제도’로 한국에 올 수 있었다. 라만이 난민인정자여서 다행이었지만, 한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낯선 곳에서 가족의 품을 떠나 난민으로 살겠다고 결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고국을 떠난 난민의 가족들이 인질로 잡히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라만에 대한 사랑이 두려움보다 컸습니다.”

경기도에 보금자리를 일군 라만은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아말라 역시 “사회에 도움이 되는 구성원이 되고 싶다”며 힘주어 말했다. “우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수단에서 전공했던 의료엔지니어링을 더 공부해 경제적 자립을 하고 싶습니다. 제 재능을 발휘해 사람들을 도우면서 한국 사회의 좋은 구성원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아말라의 발표가 끝나자 참가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즉석에서 노래 신청이 들어오자 아말라는 참가자들을 일으켜 세워 흥겨운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미지의 여행지에서 만나는 소울푸드’, ‘스토리가 담긴 가정식을 선사’. 피난처 스태프들은 노마드의 식탁 행사를 홍보하면서 일부러 ‘난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난민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낸다면 이들이 가진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공존할 수 있다는 고민에서다. 모임문화 플랫폼인 ‘온오프믹스’에 올라온 홍보글을 보고 행사에 참여했다는 직장인 신승연(25)씨도 난민이 주제인지 모르고 행사에 참여했다고 했다. 신씨는 “평소 미디어를 통해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접하면서 나 역시 난민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직접 난민을 만나고, 이들이 한국 사회의 좋은 구성원이 되고 싶다고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민에 대한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행사를 기획한 피난처의 김지은 간사는 “난민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게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음식을 매개로 난민들이 스스로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를 듣는 시민들도 난민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난민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노마드의 식탁’은 오는 12월까지 계속된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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