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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예멘 난민 품었다가 ‘부대끼는’ 제주

등록 2018-07-02 05:00수정 2018-07-03 08:06

긴급구제 내밀었다가 상처받거나
서둘러 고용했다가 이탈자 속출
“한국 사회 맞닥뜨린 난민 과제
제주에만 맡겨선 해법 못 찾아”
지난달 28일 제주 시내 한 관광호텔에 예멘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달 28일 제주 시내 한 관광호텔에 예멘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주로 찾아온 549명의 예멘인들을 품은 제주도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중앙정부 등 ‘공적 시스템’이 예멘인들을 방치할 때 이들을 ‘긴급구제’했던 제주도민을 상대로 성난 여론의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태다. 출입국 당국의 긴급한 요청에 예멘인들을 취직시켰던 제주도 내 사업장에서도 당국의 방치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 예멘인들이 터잡은 제주 도민들은 적극적으로 ‘난민 문제’에 답을 찾고 있는데, 정부 대응은 여전히 ‘서울편의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제주의 한 가족의 도움으로 그들의 집에 머물던 예멘인 ㄱ씨 일가족은 제주시 외곽에 별도 숙소를 구했다. 언론 노출 등으로 이들의 집에 난민들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이웃들의 항의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가족의 집에 찾아와 해꼬지를 하겠다는 댓글도 달렸다. 애초 오갈 곳 없는 난민 가족의 안전을 지켜주겠다며 자신의 집을 내준 호의에 박수는 커녕, 자신의 가족의 안전마저 위협받게 됐다. 이들 가족처럼 아무런 공적 지원없이 예멘 난민들을 품었던 제주도민이 오히려 상처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제주난민대책위의 설명이다.

서둘어 열어준 취업 현장의 갈등도 심상치 않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은 지난달 어선·양식업·요식업 등 내국인 일자리 수요가 적은 업종에 대해서 예멘 난민신청자들의 취업을 지원한 바 있다. 하지만 난민신청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어선과 양식업 등의 업주들은 고심이 깊다. 직업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업주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벌써부터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수협의 한 관계자는 “난민신청자들이 어선 작업환경에 대한 이해도 없이 뱃일에 뛰어들었다 멀미를 호소하고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선주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고 했다. 또 양식업 조합에 따르면, 양식장에 취업한 예멘인 180여명 가운데 지난달 29일 기준 70여명이 일을 그만 뒀다. 양식업 조합의 한 관계자는 “출입국 당국은 취업 알선만 했을 뿐 사후관리는 손 놓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예멘인들도 막막한 처지다. 지난달 28일 <한겨레>가 찾은 제주 시내 한 관광호텔의 2인실 방에는 20대 예멘인 다섯 명이 함께 지내고 있었다. 이들은 한 명도 취업하지 못한 상태다. 이 방에 사는 압둘라(가명·22)를 비롯한 3명은 어선에 올랐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최근 하선했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출렁이는 파도로 배멀미와 구토를 반복하다 결국 하선을 결정했다며 한다. 압둘라는 “일주일 간 버텼는데 구토만 하다 배에서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내전 중 부상으로 한쪽 다리에 큰 상처가 있는 아메드(가명·29)는 “양식장, 식당 등에 취업하려고 해도 업주들이 고용을 꺼린다”며 “언제까지 주변에 의존할 수는 없다. 자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생계비 지원이 없는 예멘인들은 스스로 취업해 돈을 벌지 못하면 주변의 도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선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난민 문제’를 제주도에 일임한 정부의 편의주의를 문제 삼고 있다. 집단 난민 신청에 당황한 정부가 마련한 대책은 이들을 제주라는 섬에 묶어두는 ‘출도 제한’과 ‘조기 취업 허가’ 정도 뿐이었기 때문이다. 김성인 제주 난민대책위원장은 “한국 사회 전체에게 던져진 ‘난민’이라는 난제를 현재로선 제주도민들이 홀로 감당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갈등관리에 실패한 법무부 등의 초기대응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적극적인 갈등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들의 정착을 지원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일자리 제공인 만큼 내국인과의 충돌이 없는 직역에 대한 취업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의 신강협 소장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와 달리 예멘인들은 1∼2시간의 교육만 받고 긴급하게 취업현장에 투입돼 혼선이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다”며 “취업 이후에도 업주와 예멘인 사이 통역을 지원하고 중개를 서는 등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인 위원장도 “제주도민의 일자리와 상충하지 않은 범위에서 업종 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더불어 아이가 있는 가정 등은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서울권 이슬람 커뮤니티로 갈 수 있도록 먼저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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