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비서를 위력으로 성폭행한 혐의 등을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오른쪽)가 2일 오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비서를 성폭행하고 추행했다는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53)의 첫 정식재판이 2일 시작됐다. 안 전 지사 쪽은 “업무상 위력관계를 이용한 명백한 성폭력”이라는 검찰 주장에 대해 “위력은 없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이날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조병구)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서 검찰과 안 전 지사 변호인단쪽은 안 전 지사의 혐의에 대한 ‘위력 인정 여부’를 두고 팽팽히 맞섰다. 검찰은 “피고인은 차기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고, 피해자는 공식 수행업무에서부터 개인 모임 연락 등 사적인 수행까지 피고인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을의 위치에 있었다”며 “피고인은 극도로 비대칭적인 지위를 이용해 수행비서에게 맥주와 담배를 가져오라고 시킨 뒤, 위력을 이용해 간음하고 추행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어 “특히 첫 번째 범행은 피해자가 수행비서로 일한 지 26일만에 발생했는데, 그 사이에 피고인과 피해자가 같이 밥을 먹거나 차를 먹는 등 연애감정을 불러일으킬만한 사건은 없었다”며 “‘모든 것은 연애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피고인의 인식은 전형적으로 권력형 성범죄자가 보이는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이 위계에 의한 권력형 범죄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공소장에서 안 전 지사가 ‘차기 대통령 유력 주자’였다는 점을 두 번이나 언급하기도 했다.
검찰의 공소장 낭독이 끝난 뒤 안 전 지사쪽은 ‘성관계에 위력은 없었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는 “위력이란 정신적·물리적 측면으로 힘이 있어야 하고, 피해자의 성적 결정권을 침해할 만한 것이라야 한다”며 “(안 전 지사가) 사회적 저명도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위력이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이어 “고소인이 언론에 나와 피해를 호소했다고 해서 이성간의 성관계나 스킨십이 성폭력이 될 수는 없다”며 이번 사건이 애정관계에서 비롯된 점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또한 김지은(33) 전 비서를 두고 “안정적인 공무원 자리를 버리고 무보수로 캠프에 올 만큼 결단력있는 여성”이라고 언급하며 공소장에 적힌 내용이 김 씨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현재 안 전 지사는 김지은(33) 전 정무비서에 대한 피감독자 간음·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강제추행 등의 혐의(피감독자 간음 4회·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강제추행 5회)를 받고 있다. 지난 4월5일 두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난 뒤 이날 88일만에 포토라인에 선 안 전 지사는 “혐의를 계속 부인하느냐”는 등 취재진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곧장 법정으로 향했다. 안 전 지사는 오전 공판이 끝난 뒤 “재판의 여러 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말씀드리겠다”고만 짧게 말했다.
이날 안 전 지사는 재판장의 ‘인정신문’에서 직업을 묻는 질문에 “현재 직업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공판에서는 기소된 사람과 법정에 출석한 사람이 실제 같은 인물인지 확인하는 절차인 인정신문을 거친다. 안 전 지사는 검찰이 공소장을 읽는 시간을 포함해 공판 대부분 두손을 모으고 의자에 기대 앉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피고인석에 앉은 안 전 지사와 재판 방청을 위해 법정을 찾은 김 전 비서와의 거리는 불과 10m도 채 떨어지지 않았다. 김 전 비서는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단쪽의 발언을 직접 필기해가며 재판을 방청했다.
첫 재판부터 검찰 쪽과 변호인단쪽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앞으로 집중심리로 이어질 재판에서도 혐의에 위력이 있었는지, 위력이 있었다면 안 전 지사의 행위와 위력에 인과관계가 성립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오는 16일까지 최소 7차례의 심리를 거쳐 8월 전 1심 선고를 할 예정이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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