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구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둘)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정개혁특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두려움은 직면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 <최종병기 활>의 대사다. 청나라 장수 쥬신타가 활시위를 당기면서 “바람을 계산하느냐, 두려운 것이냐”고 내뱉자, 조선의 명궁인 남이가 누이를 방패 삼은 그를 신기의 활 솜씨로 쓰러뜨린 뒤 읊은 독백이다.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특위)의 ‘상반기 재정개혁 권고안’, 특히 종합부동산세 개편 내용을 살피다 불현듯 이 대사가 떠올랐다.
권고안이 미흡하다 못해 실망스럽게 된 까닭이 혹 ‘바람’을 지나치게 계산한 탓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다. 이른바 세금폭탄론이란 보수언론 등의 공세와 힘센 강남권 납세자들의 조세저항이란 ‘바람’ 말이다. 초안이 발표된 22일의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여해 “과표 현실화의 의지 부족”을 지적한 바 있지만, 권고안의 뼈대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권고안이 물론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형해화시킨 종부세를 정상화 방향으로 돌리고, 임대소득 과세 등을 강화한 점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종부세만 놓고 보면 이런 평가를 수긍하긴 어렵다. 세수 효과가 미미한데다, 공시지가 현실화를 위한 일정표도 없다. 과세 형평성을 높인다고 말하기엔 전체 내용이 빈약하다.
기실 세금폭탄론은 가짜 담론이었다. 조세정치 측면에서 고려 대상일 수는 있어도 특위와 정부가 피하거나 계산할 게 결코 아니다. 조세정의에 대한 다수 국민의 공감대를 신뢰하고 이를 바탕으로 극복할 대상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내 삶을 책임지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내세웠다. 이 목표는 혁신적인 조세 및 예산 개혁과 증세 없이는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반기 최종안에 세수 효과를 획기적으로 드높일 과감한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특위의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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