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파면된 2017년 3월10일 오전 청와대 앞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4년 6월10일 정진우 당시 노동당 부대표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경계지점에서 약 60m 지점에서 ‘청와대 만인대회’ 시위를 열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전국에서 진상규명과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던 때였다. 정 부대표는 6·10 항쟁 27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를 열기 위해 청와대 근처 61곳에 집회를 신고했다. 경찰은 모두 불허했다.
정 전 부대표는 6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원래 청와대 근처에서 집회를 열려고 했는데 경찰이 금지하고, 모인 사람들도 막아서다 보니 우발적으로 국무총리 공관 앞에서 집회를 열게 됐다. 세월호 참사 뒤 청와대 주변 집회가 모두 금지되고 경찰이 무리하게 관련 집회를 막던 때였다”고 말했다. 이 집회에 참여했다 연행된 그는 구속기소됐다.
세월호 집회에 검경은 민감하게 대응했다. 검찰과 경찰이 세월호 집회를 주최했던 그의 카카오톡 계정을 압수수색해 40일 동안 그가 다른 사람들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를 모두 들여다본 사실도 뒤늦게 알려져 논란됐다. 이 같은 ‘카톡 사찰’을 폭로하자 검찰은 보석 결정으로 풀려난 정 부대표의 보석을 취소해달라고 2014년 10월 법원에 청구했다 기각됐다. 다음 해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유환우 판사는 정 부대표의 신청을 받아들여 국무총리 공관 100m 이내 집회를 금지·처벌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 세월호 집회의 나비효과…총리 공관 100m 내 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결정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만장일치로 총리 공관 경계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의 옥외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이를 처벌하는 집시법 조항(제11조 3호, 제23조 제1호, 제24조 제5호 중 관련 부분)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심판대상 법 조항은 위헌이지만, 국회의 입법재량을 고려해 헌재가 정한 시점까지 유예기간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헌재가 제시한 2019년 12월31일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해당 집시법 조항의 효력은 없어진다.
헌재는 “집회의 자유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능을 강화·보완하고 사회통합에도 기여하는 등 언론·출판의 자유와 더불어 대의제 민주국가의 필수적 구성요소라고 할 것”이라며 “총리의 헌법적 지위와 중요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총리 공관 인근에서 집회의 장소를 제한하는 것은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집회·시위에 의한 총리 공관의 기능이나 안녕이 침해될 가능성이 부인되거나 현저히 낮은 경우에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완화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며 “이 사건 금지장소 조항은 규제가 불필요한 집회까지도 일률적·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헌재는 밝혔다.
집시법은 5·18 군사쿠데타 뒤 입법·사법·행정을 통합해 국가 최고 통치기관의 역할을 했던 국가재건최고회의가 1962년 12월31일 만든 법이다. 제정 때부터 특정 장소는 집회 절대 금지 구역으로 규정됐다. 당시 집시법 제7조는 ‘국회의사당, 법원,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대법원장·국무총리 공관,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사절 숙소, 중앙관서, 서울특별시청, 부산시청, 도청, 역’ 경계지점으로부터 200m 이내의 장소에서 옥외 집회와 시위를 금지했다. “재판에 영향을 미치거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집회 또는 시위를 하지 못하도록”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200m가 100m로 줄어든 건 1989년 개정 때였다. 그로부터 약 30년 동안 이 100m마저 점차 줄어들었는데, 고비 때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 외교기관·국회 100m 내 집회 길 열어준 헌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제11조 집회 시위 금지 장소.
삼성생명 해고노동자들은 2000년 11월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경계지점에서 100m 이내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해고노동자’와 ‘외교기관’이라는 낯선 조합은 삼성본관과 삼성생명 건물 안에 대사관이 있었던 탓에 성사됐다. 경찰은 같은 해 4월 해고노동자들의 집회 행진 경로에 있는 삼성본관 건물에는 싱가포르대사관이, 삼성생명 빌딩에는 엘살바도르 대사관이 있다며 집회를 금지했다.
헌재는 2003년 10월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외교기관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제11조 제1호 중 관련 부분)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먼저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한다”며 “집회장소가 집회의 목적과 효과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외교기관 100m 내 집회 금지 조항은 “위험 상황이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예외 없이 집회를 금지해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삼성 해고노동자 사례에서 보듯 “집회금지 구역 내에서 외교기관이나 당해 국가를 항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다른 목적의 집회가 함께 금지”되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외국의 대사관 앞에서 소규모의 평화적 집회금지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탓이다. 셋째,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일어나는 집회는 원활한 업무 보장 등 관련 집시법 조항이 달성하려는 법익의 침해가 없어서다. 헌재는 “집회의 자유를 평화적·합법적으로 행사하려는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헌재의 임무”라며 “이 사건 법률조항은 민주국가에서 집회의 자유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 특히 대의민주제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완하는 집회의 자유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헌재가 집시법 제11조의 ‘집회·시위 금지장소’에 두 번째로 손을 댄 것은 지난 5월이다. 헌재는 재판관 만장일치로 국회의사당 경계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의 집회·시위를 금지·처벌하는 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아 2019년 12월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헌재 결정에 앞서 법원은 올해 들어 “국회와 국회의원은 국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7건의 무죄 선고와 3건의 위헌법률 심판 제청 결정을 통해 이 조항의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헌재는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집회가 열린다고 국회의 기능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국민주권에 바탕을 둔 대의제 민주주의를 충실하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국민의 목소리에서 벗어난 곳에 존재하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국회의사당을 국회 본관, 의원회관, 국회도서관 등 국회 부지 내의 장소 전체로 해석하게 되면 국회의사당 인근 일대를 광범위하게 집회금지 장소로 설정해 지나친 규제라고 할 것이다”라고 헌재는 판단했다.
■ ‘탄핵 촛불’ 때 열린 청와대 100m 앞…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헌재의 외교기관·국회·총리 공관 100m 이내 집회·시위 금지·처벌 조항 위헌 결정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헌재가 청와대 대통령 관저, 법원 100m 이내 집회금지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지난 1월 “대통령 관저 100m 이내 모든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이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이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처음 제기했다. 집시법 제11조에서 경계지점에서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한 곳은 ‘청와대’가 아니라 ‘대통령 관저’다. 청와대의 일부인 대통령 관저는 청와대 담장에서 600m 안쪽에 있다. 하지만 경찰은 교통 소통을 제한(집시법 제12조)하거나 주거 지역의 사생활의 평온을 침해(집시법 제8조 제5항)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대통령 관저 100m 밖 집회를 폭넓게 금지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 관저도 아닌 청와대 100m 앞 집회는 2016년 12월에야 처음 허용됐다. 서울행정법원 6부(재판장 김정숙)가 2016년 12월2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1심 선고 때까지 경찰의 옥외집회 금지 결정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을 허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한 촛불집회 범위를 경찰은 기존의 관행대로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까지로 제한했지만, 법원은 청와대로부터 500m, 200m까지 점점 확대하다 100m 앞까지 열어줬다.
“청와대 외곽 담장에서 1㎞밖에 머물러있던 집회의 자유는 매주 조금씩 전진했습니다. 놀라울 만큼 질서 있는 비폭력 평화집회를 유지한 시민들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촛불 행진이 맞닥뜨렸던 가장 마지막 장벽은 바로 집시법 제11조 제2호입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집회의 자유는 청와대 100m 앞에 여전히 머물러있습니다. 위헌 결정을 통해 집회장소 선택의 자유에 드리워져 있는 권위주의의 마지막 장막을 걷어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 중)
그렇다면 법원 100m 이내 집회금지는 어떨까. 헌재는 2005년 11월과 2009년 12월 두 차례 법원 앞 집회금지 조항(집시법 제11조 제4호)에 합헌 결정을 했다. 하지만 가능성이 희박한 것은 아니다. 2009년 합헌 결정에 대해 이공현·송두환 재판관은 반대 의견(위헌)을 냈다. 이공현·송두환 재판관은 “이 사건 법률조항은 각급 법원의 경계로부터 100m 이내라고 하는 광범위한 지역에 대해 일체의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대도시를 제외한 중소도시의 경우 국가기관 등 각종 공공기관이 위치하고 있는 도시 중심지역의 거의 전부를 가리키게 된다”며 “결국 실질적으로 중소도시 거의 전역에서 일체의 집회 및 시위가 금지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6단독 이규홍 부장판사도 지난 2016년 3월 박성수씨의 국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판결문에서 집시법 제11조 제4호를 “법원 인근에서 집회가 언제나 예외 없이 금지된다는 취지라기보다 ‘법원의 기능 보호’와 무관한 집회는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씨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비판 전단 살포를 수사하는 검찰 비판 기자회견을 열고 “멍멍”이라고 개 짖는 소리를 냈다 체포됐다. 검찰은 대법원 100m 이내에서 집회를 열어 집시법 제11조 제4호 등을 위반한 혐의로 박씨를 기소했다. 박씨는 형사재판을 받던 중 “집시법 제11조 제4호를 적용해 현행범 체포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으므로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 사건 공무집행(현행범 체포)이 불법행위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지만, 집시법 제11조 제4호를 법원 인근 100m 내 집회를 모두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 부장판사는 “한국의 경우 대부분 법원과 검찰청은 같은 단지 내 나란히 존재하므로 검찰청에 대한 집회도 거의 법원 100m 내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결국 입법의도와 달리 행정부서인 검찰청이나 법원 인근 100m 내 다른 관공서 등까지도 모두 집회금지 구역이 되면 집회장소 선택이 강하게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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