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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장이라는데 노동자인듯…배달기사인 나는 어느 쪽인가요?

등록 2018-07-13 04:59수정 2018-07-13 10:23

[창간30돌 특별기획 - 노동orz]
4부 플랫폼님, 제가 정말 사장님입니까
③ 회사 밖에도 있고, 회사 안에도 있는

<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를 통해 낮게 웅크린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 낮밤을 바꿔 일하는 제조업체 노동자와 감정·감시 노동의 이중고를 겪는 콜센터 노동자,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들의 삶을 전해드렸습니다.

기술 발달로 배달대행 앱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위탁계약’을 맺은 탓에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됩니다. ‘노동orz’의 이번 장면은 두 바퀴에 몸을 의지해 아스팔트 위로 쫓기듯 내몰린 배달대행기사들입니다.

일러스트 이재임
일러스트 이재임

‘배송업무 위탁 계약서’

제6조(‘을’의 지위) : ‘을’은 ‘갑’의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의 지위로서 ‘갑’에게 종속되지 아니하며, 위탁업무는 ‘을’의 재량과 책임 하에 수행하되, 본 계약서에서 약정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의무를 부담한다.

“사인하세요.” (ㄱ업체 교육담당자)

지난 4월19일 강남구에 있는 배달주문대행 ㄱ업체 본사 사무실에서 3시간 남짓 교육을 받았다. 교육이 끝날 무렵 담당자가 내민 ‘에이(A)포’ 용지 세 장에는 ‘근로계약서’가 아닌 ‘배송업무 위탁 계약서’라는 낯선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럼 이거 4대 보험은 안된다는 거죠?” 피자가게·배달대행업체 등에서 배달 기사로 일해봤다는 동료 교육생에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사인하며 말했다. “우리는 개인사업자니까요. 그래도 여긴 좋은 거예요. 산재는 가입시켜주잖아요.”

권리 따질 땐 회사 밖 사장님
배송업무 위탁계약한 개인사업자로
임금 대신 콜수 따라 수수료 받아
노동 3권도 4대 보험도 보장 안돼
사고 많아도 비용 탓 산재 가입 꺼려

일할 땐 회사 안 노동자
배달대행업체 ‘입사’ 교육시키고
“지각 땐 퇴사” 등 꼼꼼 근태관리
업무시간·장소·내용 자율성 없어
“노동절에 한번도 쉬어본 적 없어”

온라인 플랫폼 노동현장
음식점-대행업체-배달기사 3자간
고용주 여부·고용관계 아리송해
연 15조 시장 불안 일자리 ‘폭발’
“노동자성 인정 등 법 논의 필요”

장수경 기자가 지난달 2일 서울 마포구 빵가게에서 음식을 받아 배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장수경 기자가 지난달 2일 서울 마포구 빵가게에서 음식을 받아 배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기술의 발달, 위탁이라는 ‘선긋기’ 5월4일 오후 1시30분께 남가좌동의 한 죽집에서 연남동으로 죽을 배달하고 나오는 길에 “사무실로 복귀하라”는 메시지가 카카오톡에 찍혔다. 전후 사정도 없는 지시에 허겁지겁 사무실로 향했다. ‘뭔가 배달이 잘못됐나’ ‘콜 개수가 적어서 관두라는 건가’ ‘아니면 기자라는 게 들켰나’ 온갖 상상을 하며 도착한 사무실엔 재우님, 민준님, 하민님도 앉아 있었다.

하민님이 본부장에게 “본부장님, 저희 뭐 잘못한 거 있어요?”라고 물었다. 본부장이 “아, 거치대 교체하시라고요”라고 답하자, 하민님은 “갑자기 복귀하라고 하셔서 쫄았잖아요”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배달주문대행 ㄱ업체 소속 배달 기사들은 전원 본사에서 마련한 자석형 거치대로 교체했다. 배달대행업체들은 배달 기사와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 계약’을 맺는다. 전통적인 ‘철가방’ 배달원은 음식점에 고용된 직원으로 업주의 지시를 받지만 배달대행업체 기사들은 개인사업자로 취급된다. 노무 제공에 따른 임금 대신 배달 대행에 대한 수수료를 받아간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다. 배달대행 앱 등 온라인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생긴 새로운 직업군이다. 배달대행업은 음식 주문고객이 음식점에 주문을 하면, 음식점이 계약을 맺은 배달대행업체에 배달을 맡기는 형태다. 이어 대행업체가 배달 기사들이 볼 수 있는 앱에 콜을 띄우면 기사들 가운데서 콜을 잡는다. 과거에는 사업자가 직원들에게 ‘면대면’의 지시를 했다면, 기술 발달에 따라 플랫폼을 통해서만 관계를 맺는다. 여기에서 플랫폼 노동의 현장에서 고용주는 누구인지, 배달대행업체와 기사의 관계를 고용관계로 볼 수 있는지 등의 논란이 생긴다. 배달 기사들을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정의하기 위해선 업무 시간과 장소, 업무 내용 등에서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배달대행업체들은 타이트하게 배달 기사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실제 기자가 일했던 ㄱ업체는 ‘입사’ 전 교육을 받아야 했고, ㄱ업체의 로고가 박힌 헬멧과 점퍼 등을 입고 운행해야 했다. 또 본부장이라 불리는 중간 관리자가 사무실에 상주하며, 대행 기사들의 ‘근태’를 관리했고, 자신의 오토바이를 이용해 건당 수수료만 받는 ‘지입제 기사’들에게 ‘똥콜’을 강제 배차(강배)하기도 한다. 대행 기사들의 단톡방에는 직접 고용의 노사관계를 연상시키는 용어가 난무했다. 본부장은 가끔 ‘퇴사조치’ 등을 언급하며 대행 기사들의 근태 관리를 하곤 했다. 김우현(25)님이 4월26일 두어시간 지각하자 본부장이 다음날 단톡방에서 “앞으로 무단결근 3회면 무조건 퇴사 조치하겠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라고 공지를 띄운 게 대표적이다. 배달 기사들 사이에서 ㄱ업체는 당연한 듯 ‘본사’로 불렸다. 20개월째 ㄱ업체에서 ‘완전 성과급제’인 지입제 기사로 일한 광연님은 “나중에 퇴사하면 나도 큰 회사 다녔다고 말하고 다닐 거야”라고 말했다. 이들은 노동권을 말할 땐 회사 밖의 ‘개인사업자’였고, 실제 일 할 때는 회사 안 ‘노동자’이기도 했다.

배달중 사이드미러가 부러졌던 배달대행업체의 리스용 오토바이
배달중 사이드미러가 부러졌던 배달대행업체의 리스용 오토바이
사장님들이 만든 또 다른 ‘사장님’ ‘사고로 인한 오토바이 수리비, 직원 퇴직금, 보험료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직원의 잦은 지각, 무단결근 기타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부족한 배달사원 모집 스트레스에서 해방됩니다.’

한 배달대행업체가 음식점이 직접 배달원을 고용하지 않고 배달대행업체를 이용했을 때 장점이라며 내건 광고 문구들이다. 이 업체는 음식점이 배달원을 한명 고용하는 대신 배달대행업체를 이용하면 한 달에 최대 250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배달대행업체의 이런 광고는 영세 음식점의 애환을 파고들었다. 대행업체와 ‘위탁 계약’을 맺음으로써 음식점 사장님들은 배달원을 고용했을 때 생기는 모든 책임에서 벗어난다. 4대 보험에 가입할 의무, 목돈인 퇴직금을 줘야 할 의무, 간혹 사고가 벌어졌을 때 떠맡아야 할 골치 아픈 사고 수습의 과정 등에서 벗어난다. 대신 대행업체에 제공하는 월 가맹점비, 건당 발생하는 콜 수수료를 내면 된다.

배달대행업체도 배달 기사와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 계약을 맺는다. 이제 개인사업자가 된 배달 기사들은 어디에도 위험을 호소할 수 없다. ‘사장님’과 ‘사장님’이 각종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사장님’을 만들어 낸 셈이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며 상찬받는 플랫폼 노동의 실체는, 하청업체에 위험한 작업을 떠넘기던 고전적 외주화의 원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개인사업자가 된 배달 기사들은 노동자로서 권리를 요구할 수 없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조합 결성 등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5월1일 노동절에 일한다고 해서 휴일근로수당을 받을 수도 없다. 오히려 주문이 밀려 더 바쁘게 일해야 한다. 민준님은 “근로자의 날은 회사 다니는 사람들만 쉬는 거예요. 우리는 개인사업자잖아요. 전 한번도 쉬어본 적 없어요”라고 말했다. 승민님도 “어젯밤 마감할 때 웬 배달이 그렇게 많은가 했더니 오늘 근로자의 날이라서 그랬구먼”이라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배달 중개업이 난립하면서 배달 기사들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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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아들’들이 산재 가입하지 않는 이유 “산재에 가입할 필요를 못 느낀다.” 배달대행 기사로 1년 넘게 일한 이기재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기재님은 산재 보험 등 4대 보험을 ‘미래의 일’로 미뤘다. 그는 “미래에 얼마 받을지 안받을지 모르는 돈을 내는 것보다 지금 당장 내 주머니에 들어올 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재님이 배달대행 업무를 위해 가입한 보험은 택배 기사 등이 물품 배송 과정에 파손 책임 등을 덜기 위해 드는 유상운송 보험뿐이다. 지난해 3월 이후 배달대행업체 기사들도 산재 보험 적용이 가능하지만 현장에선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기사들은 대부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 탓에 가입을 꺼린다. 업체에선 상대 차량의 보험금으로 병원비와 합의금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11대 중과실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다. 산재 보험 가입을 채근하는 기자에게 업체 뿐만 아니라, 동료 기사들도 “유난 떠는 것 아니냐”는 눈길을 보낸 까닭이다.

근로복지공단(2016) 조사 결과도 기재님의 말을 뒷받침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배달대행업체 기사의 38%만이 산재 보험에 가입했다고 응답했고, 국민연금은 22%, 고용보험은 38%만 가입했다고 대답했다. 배달 기사들은 스스로 산재 보험 ‘적용 제외’를 신청하면 의무 가입 대상에서 벗어난다.

이들은 산재 보험에 가입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사업주가 보험료를 떠넘겨서 보수가 더 낮아질 것 같아서’(18.8%),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도 가입하라고 할 것 같아서’(25%), ‘근로자가 아니므로 가입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20.8%) 등을 주로 꼽았다. 그러다 보니, 업무상 사고에 대해 산재로 처리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2%에 그쳤다. 특수형태업무종사자에 준해 산재 보험에 가입하는 배달 기사들은 사업주와 배달 기사가 절반씩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굳이 장래의 위험을 위해 현재의 수익을 줄이지 않는 셈이다.

‘용산의 아들’ 준헌님은 산재 보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기자에게 “안 다쳐요.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준헌님은 약 2년간 배달대행 기사로 일하면서 10번 정도 교통사고를 경험했다고 한다.

흔들리는 두 바퀴로 하루 12시간 도로 위를 내달리는 배달 기사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업무 현장의 안전일 것이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의 ‘2015년 서울 지역 배달 아르바이트 실태조사’에선 ‘제한시간 내 배달완료 위해 무리하게 운전’(40%)이 사고 원인 1위로 꼽혔다. 이어 ‘건당 인센티브 받기 위해 무리하게 운전’(20%)이 뒤따랐다. 열에 여섯명이 시간과 실적에 쫓기며 사고를 경험하지만, 이에 대한 안전판은 사실상 전무한 셈이다.

이런 배달 기사들에게 4대 보험 역시 다른 세계의 일이었다. 기재님의 “우리 업계는 사고가 나도 각자 해결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제도권 바깥의 일인 것이다. 제도권 안쪽에 있는 사람들의 잣대로 판단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노동권의 사각지대에서 일해 온 기재님에겐 ‘제도권 안쪽의’ 안전보장을 묻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이었던 셈이다. 김종진 부소장은 “산재는 천재지변이 아니다. 사전예방과 사후관리가 안돼서 생기는 사고를 종사자가 떠맡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다른 직업군보다 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배달대행 기사들이 산재 가입을 망설이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제도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김 부소장은 이어 “배달대행 기사들은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에도 가입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가 폐업하거나, 교통사고·해고 등으로 자리를 잃으면 곧바로 빈곤의 나락에 떨어질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장수경 기자가 지난달 2일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장수경 기자가 지난달 2일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플랫폼 노동 그 후 배달대행 기사들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긴 일자리인 ‘플랫폼 노동’의 대표적 사례다. 배달앱 시장 1위인 ‘배달의 민족’의 월평균 주문건수는 2018년 6월 기준 1900만건이 넘었다. 2014년 500만 건에서 약 4년 새 4배가량 늘었다. 배달대행의 시장 규모는 연간 1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긱 이코노미’의 이런 폭발적인 성장에는 불안한 일자리의 증가라는 대가가 뒤따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민간부문 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중심으로’를 보면, 2015년 기준 특수고용노동자는 218만여명이다. 변화하는 기술환경에 따라 저임금·불안정 일자리에 머무는 특수고용노동자는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자인 ‘배달대행 기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느냐’ 여부에 4차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의 질이 달려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전세계적인 숙제다. 앞서 프랑스는 2016년 노동법을 개정해(엘코므리법) 플랫폼 사업자의 ‘사회적 책임’을 도입했다. △플랫폼 노동자가 산재 보험에 임의 가입하는 경우 플랫폼이 부험료를 부담할 것 △플랫폼 노동자에게 직업 훈련을 보장할 것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쟁의권에 해당하는 단체행동권을 보장할 것 등이 주된 내용이다. 계약 관계상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만으로 ‘무한경쟁’의 운동장에 떠밀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진 부소장은 “현재 가장 논쟁적인 플랫폼 노동자인 배달대행 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정책적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며 “아이티 기술 발전에 따른 다양한 플랫폼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만큼, 노동법 규범이 플랫폼 노동자를 어느 만큼 포괄할 수 있을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2017년에 낸 ‘디지털 기술발전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 유형과 정책적 대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노동법이 독립 자영업자를 둘러싼 불공정 계약을 규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는 근로자에 대한 노동법상 의무들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자영업자’의 발생을 막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자영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글을 마치며_

최저시급도 못받는 개인사업자…최소한의 노동권 보장을

‘우측 대퇴부 좌상, 2주간의 가료를 요할 것으로 사료됨.’

지난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3주 가까이, 118시간 동안 일하며 남은 것은 오른쪽 다리의 흉터와 사고로 지불한 오토바이 수리비 22만원을 뺀 88만5000원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노동자로 같은 기간 일 했다고 가정하고 최저시급으로 급여를 계산해 봤습니다. 하루 30분 휴게시간과 연장근로 시간을 제외한 전체 기본 근무시간은 94시간입니다. 최저시급 7530원을 곱하면 70만4055원입니다. 총 19시간 연장근로를 했습니다. 연장근로수당 1.5배를 가산하면 20만8958원입니다. 5월1일은 노동절이었습니다. 휴일근로수당 추가분 3만120원이 더 붙습니다.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면 하루치 급여를 받는 주휴수당도 있습니다. 2주치 12만480원만 계산하면, 합계는 106만원 정도입니다.

최저시급 노동자였다면 106만원 받을 수 있었는데, 개인사업자로 일하면서 110만원을 벌고 수리비로 22만원이 빠졌습니다. 흉터와 치료비는 덤입니다. 개인사업자가 아니었다면, 업무 중에 생긴 사고로 인한 부상과 오토바이 수리비는 업주의 책임이었을 것입니다. 산재보험에 가입해서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면 일을 하지 못한 기간 동안 하루에 6만원 정도 휴업급여와 치료비 등도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4월 초 점심을 먹은 뒤 육개장을 픽업하러 가던 길에 ㄱ업체 배달 기사 이민수(39)님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1차선으로 달리던 도중 2차선에서 불법 유턴하던 다른 업체의 배달 기사와 충돌한 겁니다. 민수님은 그날의 기억을 ‘배신감’이라고 되짚었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는데 본부장이 전화해서 ‘정산해달라’고 하더라고. 응급실에서 카드 단말기 켜고 동전 세면서 배달 내역 정리했다니까.” 민수님은 다시 그날을 기억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ㄱ업체는 다른 어떤 업체도 해주지 않는 ‘산재 가입’과 ‘운전자 보험’을 배달 기사들에게 보장한다고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보험 접수와 산재 처리 역시 응급실에 누워있던 민수님의 몫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배달 기사들은 스스로 ‘개인사업자’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사업자로서 그들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산업구조의 중심에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가 사라진 자리에 ‘플랫폼’만 남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사업자로 치부되는 ‘디지털 특수고용노동자’의 근태 점검, 출결 체크 등에는 여전히 사업주의 편의를 위한 노무 관리의 관성이 남아있습니다. 기술은 왜 한쪽의 편의를 위해서만 발전하는 것일까요?

예기치 못한 사고 탓에 배달대행 업체를 그만두고 이틀 만에 ㄱ업체에서 만난 동료 기사 경수님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직원 채용, 업무강도는 절반, 4대보험 가입, 각종 수당을 더하면 시급 11000원.” 경수님은 한 햄버거 가게에서 8시간 동안 일하면서 ㄱ배달대행업체에서 파트타임으로 ‘투잡’을 뛰는 형님이었습니다. 낑낑거리며 배달 일을 하던 기자가 위태로웠을까요. 경수님은 ‘직접고용’의 세계로 돌아오라 손 내밀어 주신 것입니다. 그는 이전에도 ㄱ업체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나 ‘4대 보험의 위대함’을 말하곤 했습니다. 경수님은 노동자 있는 곳에 노동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은 셈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배달대행업체 기사들은 모두 출퇴근 시간·업무 배차 등 플랫폼 관리자의 업무 지시를 받았습니다. ‘구속된 노동시간’을 사는 배달 기사들에겐 최소한의 노동권도 사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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