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위증 등 혐의로 증인을 고소한 데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nki@hani.co.kr
성폭행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안희정(53) 전 충남도지사의 재판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가운데 공판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집중 심리 과정에서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피고인 쪽 주장이 여과 없이 보도돼 피해자의 사생활에 대한 평가와 도덕적 비난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 전 지사 쪽 변호인단은 당초 공판준비기일부터 “김지은 전 비서가 피해자일 수 없는 이유를 증명해 보이겠다”고 변론 방향을 밝혔다. ‘피해자답지 않은’ 평소 행실과 평판을 공개하겠다는 취지다. 성폭력 범죄 재판에서 ‘2차 가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변론 전략이었지만, 이 사건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는 피고인 쪽 증인신문 대부분을 공개재판으로 진행했다.
실제 지난 11일 공판에서는 김씨의 후임 수행비서 어아무개(35)씨가 “(김씨가)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리저리) 재는 느낌을 받았다”며 김씨의 행실을 ‘평가’하는 듯한 증언이 공개됐다. 지난 13일엔 안 전 지사의 부인이 증인으로 출석해 “김씨가 부부의 침실까지 찾아왔던 적이 있다”고 말했고, 이 역시 공개됐다.
반면 안 전 지사와 관계가 강압적이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심문과 검찰 쪽 증인신문은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됐다. 당시 정황이 시시콜콜 공개될 경우, 2차 피해가 있을 것을 우려한 피해자 쪽 의사가 반영된 결과다. 실제 지난 6일 오전 시작해 16시간에 걸쳐 이어진 김지은(33)씨의 피해자 심문은 모두 비공개로 진행됐고, 9일 검찰 쪽 증인신문 역시 일부 비공개(2명 공개, 2명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런 공개된 증언의 ‘비대칭’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자극적인 언론 보도로 이어졌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대책위원회는 지난 11일 안 전 지사 쪽의 증인이 “김씨가 직접 호텔을 예약했다”고 주장한 내용을 제목으로 내건 보도 등을 지적하며 “호텔을 예약하는 수행비서의 업무 수행을 마치 ‘합의한 성관계’라는 뉘앙스로 보도한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비판했다. 김씨 쪽 변호인단도 “검찰 쪽 증인은 비공개로 신문해 중요한 증언은 공개되지 않았는데, 안 전 지사 쪽 주장에 부합하는 일부 증언만 크게 보도돼 피해자가 심각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재판부도 “증인의 진술에 대해 지나치게 자극적인 보도가 이루어지는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여론재판’ 양상이 이어지면서 재판의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원은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고 가는 여론재판이 반복되면 사법부에서 유죄 판결을 하더라도 판결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형사재판은 공개재판이 원칙이지만, 성폭력 사건은 재판부에서 언론 보도에 대한 의견을 좀 더 적극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주간 다섯 번의 공판을 거치며 집중심리로 진행된 이번 재판은 오는 16일 피해자의 심리 상태 등에 대한 전문가 증언과 23일 추가 공판을 끝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이달 말 1심 선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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