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 발표가 다가오면서 ’국민연금 폐지’ 청원이 거세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국민연금 제도 개편을 앞두고 여론이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고 보험료를 내는 나이도 60살에서 65살까지 늘리는 방안 등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보험료 인상, 수급 개시 연령 상향조정 등은 정부안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고, 오는 17일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 수립 공청회에서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보고서’가 공개될 예정이지만 누리꾼들의 비판은 거세지고 있습니다.
특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현재 가입이 ‘의무’로 돼 있는 국민연금을 ‘선택’으로 바꾸자거나 아예 ‘폐지’하자는 내용의 청원이 1700건 이상 올라와 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국민연금은 대국민 사기(coff****)”라거나 “다음 대선 공약 국민연금 폐지를 밀겠다(jt33****)”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과연 ‘국민들의 돈을 빼앗아가는’ 나쁜 제도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연금은 어떤 사보험과 비교해봐도 수익률이 월등히 높습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고소득자일수록 ‘보험료는 많이 내지만 수급은 적게’ 받고, 저소득자일수록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입니다. 국민연금을 통해 ‘소득 재분배’ 효과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많이 내는 이들이 무작정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닙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 뒤 나중에 돌려받는 금액인 ‘수익비’를 따져보면, 지난해 기준 평균 수익비는 1.4배~2.9배입니다. 즉, 소득이 높아 국민연금 보험료를 가장 많이 납부한 이도 나중에 자신이 낸 돈보다 1.4배 많은 돈을 돌려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소득이 적은 이는 자신이 낸 보험료의 최대 2.9배까지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사보험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이 돈을 떼일 가능성도 없습니다.
다만, 나중에 받는 국민연금의 금액이 편안한 노후 생활을 보장할 정도로 안정적이려면 40년이라는 ‘가입 기간’을 가능한 한 꽉 채워야 합니다. 가입 기간이 길수록 더 많이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설명들을 좀 더 쉽게 전하기 위해 소득이 들쭉날쭉하지만 연평균 25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얻는다는 프리랜서 강지훈(가명·41)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강씨는 ‘국민연금을 내는 게 이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2010년부터 국민연금을 꾸준히 내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강씨는 이미 놓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늘리기 위해 ‘추가 납부’도 하고 있습니다. 그는 “2010년부터 낸 거로 계산하면 나중에 받을 예상액이 한 달 45만5천원인데 2004년부터 낸 것으로 추가 납부를 하면 매달 받는 금액이 57만7천원으로 12만원 올라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국민연금 추가 납부를 하면서 꼼꼼하게 자신의 ‘이득’을 계산해봤습니다. 우선 2010년부터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것으로 계산했을 때 강씨는 60살까지 3700만원 정도를 보험료로 내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65살 이후 그가 받을 연금 예상액은 한 달 45만5000원입니다. 이렇게 따지면 강씨는 약 72살까지 자신이 낸 만큼(3700만원)을 돌려받게 되고, 그 이후로는 사망 때까지 매달 45만5000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2004년부터 국민연금을 낸 것으로 가입 기간을 늘리는 ‘추가 납부’를 한 경우에는 더 많이 돌려받습니다. 강씨의 경우 추가 납부를 하면서 애초 보험료보다 800만원 가량 많은 총 4500만원을 보험료로 내게 되는데요. 이때의 예상 연금은 ‘추가 납부’하기 전 금액보다 약 12만원이 오른 한 달 57만7000원입니다. 이 경우 역시 약 72살까지 스스로 낸 돈을 모두 돌려받게 되고, 그 이후로도 57만7000원을 사망 전까지 추가로 받게 됩니다. 강씨는 “소득이 높지 않아 매달 국민연금을 내고 거기에 추가 납부까지 하는 것이 부담되긴 한다”면서도 “평균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시대에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는 건 손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매년 물가상승률만큼 수급액이 인정되기 때문에 사보험과 달리 실질가치가 보전된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습니다. 또 장애를 입거나 사망할 경우 장애연금과 유족연금도 지급됩니다.
강씨와 같이 국민연금을 추가납부하는 ‘추납보험료’ 신청자는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13일 <한겨레>가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추납보험료 신청 건수는 2013년 2만9984건에서 2017년 14만2567건으로 약 5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올해 추납보험료 신청자는 5월 기준 5만4434명입니다.
추납보험료 신청뿐 아니라 주부나 학생처럼 소득이 없어 국민연금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님에도 스스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임의가입자’ 숫자도 매년 늘고 있습니다. 임의가입자 수는 2013년 12월 17만7569명에서 2018년 5월 현재 33만9927명으로 두배 가량 늘었습니다. 국민연금이 어떤 사보험보다 안정적이며 노후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이미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국민연금은 손해다”, “국민연금 제도는 폐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가 저질러온 불신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지금도 자유한국당은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안이 아니라고 하지만, 국민은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권의 무능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국민연금 기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지에 대한 대책을 정치권에서 머리 맞대고 논의해도 부족할 판에 국민적 불안을 조성하며 이를 발판으로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에 사는 91살 김아무개 할아버지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국민들이 “국민연금을 폐지하자”고 외치는 또 다른 이유는 먹고살기가 그만큼 팍팍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생계유지도 힘든 마당에 미래를 위한 ‘국민연금’에 돈을 낼 여유 자체가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 국민연금에 가입했어도 실직·휴직 등으로 보험료를 내지 못해 납부 예외를 신청한 경우가 368만명, 보험료를 장기체납한 이들도 102만명이나 됩니다. (
▶관련기사: 국민연금 ‘재설계 논의’ 위해 꼭 알아야 할 5가지) 당장 국민연금 보험료를 낼 돈이 없어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는 나중에 받을 국민연금의 혜택도 미미합니다. ‘용돈 연금’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들은 “나중에 용돈 연금 받으려고 국민연금 내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쓰고 싶다”고 얘기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불안정한 노동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예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동이 불안정한 이들을 위해 ‘가입 기간’을 늘려주는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이 교수는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가입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크레딧 사업이 있다. 이것을 강화해서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또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없애기 위해 국민연금 제도 개선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도 제안했습니다. 그는 “시장주의자들이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조장하고 이를 악용해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는 행위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캐나다에서 건강보험료에 대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의료민영화 위기를 극복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국민연금에 대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국민들이 심사숙고하게 되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합의를 통한 합리적인 제도개선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제도 개편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은 ‘국민연금 폐지’가 아닙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국민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사회보장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이 폐지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노인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래세대는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해 이러한 노인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은 ‘국민연금을 폐지해달라’가 아니라 ‘당장 먹고살기가 힘든 국민연금 사각지대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달라’가 돼야 하지 않을까요?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