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29일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 기념 ‘269명이 만드는 형법 제269조 폐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0여명의 여성들이 각자 손에 든 하얀 피켓을 머리 위로 올리자 숫자 ‘269’가 되었다. 10여명의 여성들이 붉은 천을 손에 들고 하얀 피켓 사이를 가로질렀고, 숫자 ‘269’ 위에는 붉은 선이 그어졌다.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형법 제269조의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 참가자 269명의 퍼포먼스다.
20여개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공동행동)이 29일 낮 12시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낙태죄를 규정하는 ‘형법 제269조’의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날 퍼포먼스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국제 행동의 날·매년 9월 28일)을 맞아 진행됐다. ‘국제 행동의 날’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미프진’이라도 불리는 인공임신중절 약물인 ‘미페프리스톤’의 시중 판매를 승인한 2000년 9월 28일을 기념한다. 이날 퍼포먼스는 영상으로 기록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기념하는 전 세계 여성운동 단체 등에 공유될 예정이다.
퍼포먼스를 진행한 공동행동은 이날 집회에서 ‘낙태죄’로 임신중지를 범죄화하고 처벌하는 것은 인공임신중절을 근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한 시술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공동행동은 “사회적 낙인 없이 비혼부·모가 될 수 있는 권리, 결혼유무·성적지향·장애 등과 상관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실천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면서 “이러한 권리들이 보장될 때 인공임신중절 시술이 줄어드는 것은 전세계의 사례에서 입증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국가가 ‘낙태죄’를 필요에 따라 인구통제 수단으로 자의적으로 행사해왔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가가 인구가 많다고 판단했을 때는 가족계획을 강요하다가, 인구가 적다고 판단했을 때는 낙태죄 적용을 강화했다는 주장이다. 공동행동은 “’낙태죄’ 존치의 역사는 국가가 인구관리 계획에 따라 여성의 몸을 통제의 도구로 삼아 생명을 선별하려 했던 역사”라며 “우리 삶의 권리를 무시하고 여성의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온 법과 정책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공동행동은 “여성들을 처벌함으로써 책임을 전가하는 대신, 장애·질병·연령 등 다양한 조건이 출산 여부에 제약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여건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며 “우리는 누구든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원하고, 낙태죄 폐지는 그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익명의 여성모임인 비웨이브(BWAVE)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 앞에서 열린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촉구 집회에서 계란은 생명이 아니라는 취지로 계란 깨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낙태죄 폐지’ 및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하는 집회는 인근 다른 장소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해온 여성 모임인 ‘비웨이브’가 17번째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800여명의 여성(주최쪽 추산)들은 정부와 사법부 등에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6년만에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리중인 헌법재판소가 이번에 결정을 하지 않으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면서 “위헌결정이 나지 않을 경우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이 극심하게 침해될 것”이라고 외쳤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69조 1항과 제270조 1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심리를 진행 중이다. 당초 예상보다 선고가 늦어지면서, 5기 재판부 퇴임 후 새로 구성 중인 6기 재판부로 결정이 미뤄졌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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