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에 들어가며 삭발을 한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김미숙 위원장(오른쪽 둘째))과 이미영 경기지부장(왼쪽 둘째)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간 노인요양시설 비리 전면감사와 요양노동자 6대 요구 실현을 위한 요양노동자 삭발, 천막 농성 돌입 선포식'을 마친 뒤 서로 끌어안고 위로하고 있다.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은 민간 노인요양시설 비리 전면감사와 쉬운 폐업방지대책, 요양서비스노동자의 표준임금 지급, 공립 요양시설 확대, 관리 감독 대책 등을 요구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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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에 있는 민간노인전문요양원 세비앙실버홈 대표 ㄱ씨는 고가의 벤츠 승용차를 리스한 뒤 보증금 5171만원과 월 사용료 328만원, 차량 보험료와 유류비 등을 요양원 운영비에서 충당했다. 모두 합쳐 7700만원이나 되는 금액이었다. ㄱ씨는 이 밖에도 요양원 운영비에서 돈을 빼돌려 나이트클럽 유흥비, 골프장 이용료, 개인 여행비 등으로 1800여만원을 썼다.
#2.
경기 고양시에 있는 ㄴ요양원 대표 ㄷ씨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개인 차량 수리비와 고속도로 통행료, 차량 보험료와 유류비 등 모두 2400여만원을 역시 요양원 운영비에서 빼서 썼다. 경기 수원시에 있는 ㄹ요양원 대표 ㅁ씨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요양원 운영비 카드로 술과 유아 의류, 장난감 등을 구입하고 성형외과 진료비와 골프장 이용 등에 모두 1400여만원을 썼다. 경기 의정부시에 있는 ㅂ요양원 등 11개 시·군의 25개 노인요양시설에서는 예산 23억여원을 연금보험이나 종신보험 등으로 가입하면서 보험 수혜자를 시설 명의가 아니라 대표자 개인이나 대표자의 상속인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최근 터진 사립유치원의 횡령, 운영비 부풀리기 등 비리 못지않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조금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민간 노인요양시설에도 유사한 비리가 이어져 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의 요양보호사들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 노인요양시설의 비리를 전면 감사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이유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간요양기관의 대표나 이사장의 운영비 횡령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2016년 요양기관 727곳의 현지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이들 기관 가운데 94.4%가 요양급여비용 부당청구 등으로 복지부에 적발됐다. 요양급여비용은 요양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전자 심사기준에 맞춰 청구하면, 실제 진료 여부와 관계없이 지급되는 구조라 부당청구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경기도 감사관실이 지난해 8월 도내 노인요양시설 216곳을 대상으로 회계감사를 벌인 결과를 봐도, 111건(총 305억여원)의 회계부정이 확인되기도 했다.
지난 8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17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연보’를 보면, 지난해 장기요양보험 인정자는 58만5287명으로 집계됐다. 장기요양보험으로 지급한 연간 급여비(본인일부부담금+공단부담금) 약 5조7600억원 가운데 시설 급여는 2조4520억원이고, 이 중 노인요양시설에 지급된 급여는 2조1971억원이다. 이 가운데 민간 노인요양보호시설에 지급된 급여가 얼마인지는 별도로 조사된 바 없다.
노조는 요양보호사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 민간 노인요양시설 대표의 쌈짓돈처럼 쓰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보건복지부가 제시하고 있는 표준임금보다 대부분의 요양보호사가 30만~40만원까지 덜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런 돈들이 어디로 갔겠느냐”며 “민간 요양원의 회계감사 결과를 보면, 고급 승용차 리스, 나이트클럽 유흥비, 골프장, 개인 여행, 성형외과 진료 등 상상할 수 없는 내용으로 차 있다. 민간 요양원의 비리를 전면 감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미숙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이미영 경기지부장(왼쪽부터)이 민간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미온적인 대처에 항의하는 의미로 22일 삭발식을 진행했다.
실제로 요양보호사들의 목소리를 들어봐도, 민간 노인요양시설 대표들의 전횡은 심각한 수준이다. 세비앙실버홈에서 4년2개월 동안 일했던 정노자 요양보호사는 지난 6월 노조를 결성했다가 이사장 김아무개씨로부터 폭언을 듣고 결국 해고당했다. 김씨는 조합원들에게 “배부를 만큼 밥 먹여주니까 지들 맘대로 (노조를 결성)하냐”, “이 집안의 어른인 지 애비한테 (노조 결성한다고) 허락을 받아야 돼. ○○자식들아” 등의 막말을 했다고 한다. 해당 요양원을 폐업하겠다며 환자 150여명을 강제퇴원시키고 요양보호사 조합원 등을 해고하기도 했다. 정 보호사는 “식사시간은 10분이고,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어르신들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휴게실도 따로 없다”며 “어르신이 때리고 욕하고 성희롱을 할 때도 치매 어르신이라 사랑으로 돌보고 부모라고 생각해 모셨다. 그런데 우리가 노조를 만든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은 이날부터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전지현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사무처장은 “우리는 똥 치우는 사람들이 아니다. 10년을 일해도 월급이 동일해 자부심을 가지기 어려운 구조를 바꿔달라”며 눈물을 훔쳤다. 이날 정부와 국회의 미온적인 대처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삭발식을 진행한 요양노동자들은 “34만명의 요양서비스노동자가 인간답게 대접받을 수 있도록 다음 달 10일 요양보호사 총궐기 투쟁을 벌이겠다”며 강경투쟁을 예고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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