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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케냐 난민캠프 15살 가장 마리암이 말하는 평화란?

등록 2018-11-28 05:00수정 2018-11-28 07:41

2018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케냐 난민캠프 ‘마리암의 하루’
남수단 내전 피해 2014년 케냐로
동생·조카 등 5명 오롯이 책임져
마리암이 지난달 18일 케냐 카쿠마 난민촌에 있는 공용 식수터에서 밥을 짓는 데 쓸 물을 받은 뒤 물통을 옮기고 있다. 카쿠마/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마리암이 지난달 18일 케냐 카쿠마 난민촌에 있는 공용 식수터에서 밥을 짓는 데 쓸 물을 받은 뒤 물통을 옮기고 있다. 카쿠마/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달 18일 오후 3시20분께(현지시각) 케냐 북부 카쿠마. 학교에서 생물과 영어 시험을 마친 마리암이 노트 한권과 펜 한자루만 들고 빠르게 교실을 빠져나왔다. 흙먼지가 얼룩덜룩한 흰색 교복 상의와 남색 치마를 들썩이며 마리암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흙이 날려 눈이 매운 흙길을 걸은 지 20분쯤, 길옆으로 덤불과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고 사람 한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이 나왔다. 케냐는 10월 낮 기온이 섭씨 37~38도에 이른다. 뜨거운 햇볕을 가리는 숲길을 200m 정도 걸으면 잔 나뭇가지를 이어 만든 담벼락이 나오는데, 이 안이 마리암의 집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리암이 20ℓ짜리 젤리캔(석유나 물을 담는 데 쓰는 옆면이 납작한 통) 4통을 들었다. 하루에 한 번씩 물을 길어야 한다. 집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수돗가에는 마리암처럼 물을 길으러 온 사람 50여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수도꼭지는 아침 6시, 오후 4시 하루 두번만 열린다. 평소엔 오전에 물을 긷지만, 오늘은 시험이 있어 오후에 물을 길었다. 이날 마리암이 길은 물로 마리암 가족이 씻고 마시고 세탁을 한다.

물을 가득 채운 물통을 머리에 얹자 가녀린 몸이 휘청거린다. 물통을 집으로 옮긴 뒤 곧장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마당 주변에 떨어져 있는 장작을 주워 화로에 올리고, 이웃집에서 불씨가 남아 있는 숯 3개를 빌려 왔다. 마리암이 화로에 숯을 얹자, 4살짜리 조카가 낡은 종이판으로 능숙하게 바람을 일으켰다.

고향 남수단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15살 마리암이 지난달 18일 오후 케냐 카쿠마 난민촌에 있는 학교 교실 책상에 앉아 있다. 마리암은 성폭행 피해자인 언니와 여동생 2명, 조카 2명을 돌보며, 방과후에는 이웃인 소말리아 난민 가정에서 빨래를 도와 생활비를 마련한다. 카쿠마/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향 남수단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15살 마리암이 지난달 18일 오후 케냐 카쿠마 난민촌에 있는 학교 교실 책상에 앉아 있다. 마리암은 성폭행 피해자인 언니와 여동생 2명, 조카 2명을 돌보며, 방과후에는 이웃인 소말리아 난민 가정에서 빨래를 도와 생활비를 마련한다. 카쿠마/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전쟁 중 부모 잃은 아이들은 노동을 마리암은 2014년 4월 남수단에서 가족과 함께 케냐로 넘어왔다. 남수단은 2011년 수단에서 독립했지만 석유와 천연자원이 풍부한 탓에 수단과 석유 분쟁이 일었다. 2013년 12월엔 딩카족인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이 누에르족인 리에크 마차르 부통령을 해임하면서 남수단의 양대 부족인 딩카족과 누에르족 사이에 내전까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수만명이 죽고, 약 300만명이 피란민이 되었다. 적대 부족인 누에르족과 결혼했던 마리암의 언니는 내전 중에 남편을 잃었다. 언니의 배 속 아이를 지키기 위해 마리암 가족은 피란길에 올랐다.

케냐 북부의 카쿠마 난민캠프로 삶터를 옮긴 뒤에도 누에르족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누에르족은 언니가 낳은 아이를 빼앗으려고 케냐까지 쫓아왔다. 마리암의 엄마까지 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언니는 정신을 놓고 말았다. 어느 날 밤, 벌거벗은 채로 뛰어다니던 언니는 성폭행을 당했다. 마리암에게 둘째 조카가 생긴 이유다.

마리암을 만난 곳은, 그러니까 난민캠프다. 마리암의 아침은 바쁘다. 내전 과정에서 부모를 잃은 15살 마리암이 챙겨야 할 가족은 여동생 두명과 언니, 조카 두명 등 모두 다섯명이다. 마리암은 새벽 5시에 일어나 한시간가량 물을 긷고 아침 식사를 준비한 뒤 등교한다. 학교를 마치면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언니는 살림에 보탬이 되기 힘들다. 마리암은 난민캠프에 있는 소말리아 난민 가정에서 빨래를 해 돈을 번다. 주말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 한두 집을 돌며 400벌을 빨면 한집당 1달러 정도 번다. 일이 적으면 50센트다. 50센트는 우유 500㎖와 25㎝ 크기의 빵을 살 수 있는 돈이다. “4~5시간 빨래를 하고 나면 너무 피곤하지만, 난민캠프엔 직업이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행운이에요.”

마리암이 사는 카쿠마 난민캠프는 1991년에 생겼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730㎞가량 떨어진 북서부 지역 투르카나주의 중심 로드와르. 여기서 비포장도로를 3시간가량 달리면 카쿠마 마을 외곽에 세워진 난민캠프가 나온다. 르완다, 소말리아, 남수단, 우간다 등 인근 아프리카 국가에서 내전을 겪는 사람들이 도망쳐 온다.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난민과 난민 신청자 18만6205명을 수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60%가 18살 미만이다. 계속 유입되는 난민 탓에 캠프가 4곳으로 늘었다. 타이야르 수크루 칸시조글루 유엔난민기구 카쿠마 지부장은 “지난 5년 동안 케냐에 온 난민 57%가 카쿠마 캠프로 왔다”며 “자국의 상황이 나아지면 돌아가는 일이 꽤 있다”고 말했다.

■ 조혼, 성폭력에 내몰리는 여자아이들 위기는 언제나 약한 고리로 향한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전쟁은 여성, 특히 어린 여성들에게 더 가혹했다. 18살 우에이(가명)는 남수단에서 수백㎞를 걸어와 마리암처럼 캠프1에 산다. 생존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낯선 곳에서 마주한 삶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시험이 끝난 2016년 어느 일요일. 엄마는 교회에 갔고, 우에이는 가족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집에서 20~25분 거리에 있는 강가 주변에서 장작을 모으고 있었어요. 갑자기 어떤 남자가 나타나 등을 공격했고 일이 벌어졌죠. 소리를 질렀지만 누구도 듣지 못했어요.” 우에이가 짧은 머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우에이는 “성폭행을 당한 뒤 나는 더는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지도, 여성으로서 존중받지도 못한다”며 울먹였다. 피해자는 우에이인데 사람들은 우에이 가족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우에이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했다. 비난과 조롱에 쫓겨 우에이 가족은 남수단인이 많이 사는 구역에서 소말리아인과 콩고인이 주로 사는 구역으로 이동했다. “성폭행을 당한 뒤 친구를 많이 잃었어요. 다행히 새로 이사한 곳 친구들은 내가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잘 몰라요.”

뛰어난 외모 때문에 카쿠마 난민캠프에서 ‘미스 카쿠마’로 꼽히는 19살 아오이는 요즘 할머니를 피하고 있다. 아오이는 2013년 누에르족과의 내전 중에 부모를 잃고 2살, 7살, 10살이던 여동생들, 할머니와 함께 남수단에서 케냐로 넘어왔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오이가 다시 남수단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할머니가 남수단에 있는 삼촌에게 이야기해 나를 조혼시키려고 해요. 삼촌은 나를 데려가려고 카쿠마 난민캠프까지 쫓아왔어요.” 아직도 아프리카에선 결혼 지참금을 받으려 가족의 어른들이 여자아이들에게 나이 많은 남성과의 결혼을 강요한다. 조혼을 거부하자 삼촌은 아오이한테 몇개뿐인 펜과 책을 몽땅 가져가버렸다. 삼촌은 틈틈이 아오이를 노리고 있다.

지난달 18일 오전 케냐 카쿠마 난민촌 안 학교에서 한 학생이 해어진 옷을 입은 채 수업을 듣고 있다. 카쿠마/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달 18일 오전 케냐 카쿠마 난민촌 안 학교에서 한 학생이 해어진 옷을 입은 채 수업을 듣고 있다. 카쿠마/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케냐에서도 이어지는 부족 전쟁 분쟁을 피해 떠나온 이들도 갈등의 고리까지 끊어낼 수는 없었다. 오유기(가명)는 캠프4에 있는 집에서 한동안 떠나 있어야 했다. 오유기는 분쟁 중인 딩카족도 누에르족도 아닌 문다리족이지만 남수단에서의 부족 갈등은 국경을 넘어 카쿠마 난민캠프에서도 이어졌다. 문다리족의 부족 표지가 딩카족과 비슷한 탓에 오유기 가족은 누에르족의 공격 대상이 됐다. 오유기의 아내 로즈(가명)는 “난민캠프에서 2015년 딩카족과 누에르족 간에 큰 다툼이 있었다. 서로 칼과 막대기를 들고 공격했다. 이 캠프엔 누에르족이 많아서 딩카족이 못 돌아다녔다. 딩카족이 많은 캠프1에 피신해 있었다”고 말했다. 로즈는 “난민캠프마저 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이젠 어디로 가야 하나 막막하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부족 갈등은 이어진다. 카쿠마 난민캠프엔 초등학교가 26곳, 중·고등학교가 6곳 있다. 마리암과 우에이, 아오이가 다니는 ‘카쿠마 난민 중·고등학교’ 학생은 총 3200명. 이 가운데 80%가 남수단 딩카족이고, 누에르족이 10%, 나머지는 콩고·소말리아·부룬디 등에서 왔다. 교사 조세핀(30)은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함께 다니기 때문에 갈등이 많다. 최근엔 딩카족 여학생이 학교에서 부룬디 출신 학생의 히잡을 잡아당기며 싸웠다. 딩카족 학생들이 여성 교사를 공격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카쿠마 난민 중·고등학교’에서는 이런 갈등을 줄여보려고 지난해부터 케냐 월드비전과 함께 ‘피스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남수단의 딩카·누에르족, 소말리아, 부룬디, 우간다, 르완다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 35명이 참여한다. ‘피스클럽’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평화에 대해 토론하고, 학생들끼리 다툼이 발생하면 중재에 나선다. 딩카족과 부룬디 학생이 싸웠을 땐 피스클럽이 학생지원처와 함께 사안을 논의 대상으로 올렸다. 지난해 3월부터 피스클럽 담당 교사로 활동 중인 조세핀은 “학생들이 폭력적인 상황을 마주할 때 어떻게 해결할지 배울 수 있어서 피스클럽에 참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케냐 월드비전은 카쿠마 난민캠프에 있는 12~18살 아이들에게 평화를 교육해, 평화 구축자로서 아이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이캡(ECap) 활동을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 20여개 학교에서 진행 중이다. ‘피스클럽’은 이캡 활동의 일환이다.

카쿠마 난민 중·고등학교 피스클럽에서는 평화를 상징하는 단어를 별명으로 부른다. 마리암의 별명은 “마블러스”(경탄할 만한). 전쟁으로 여섯 식구의 생계를 꾸려야 하는 15살 소녀는 별명으로 불릴 때면 마냥 행복하다. 피스클럽 활동 뒤 친구들과의 다툼에 휘말리지 않는다. 각 나라 정치인들이 평화를 중시하지 않아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마리암은 아직도 분쟁으로 고통받는 고국 남수단의 평화대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런 마리암에게 평화란 무엇인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이웃과 싸우지 않는 것.”(Do not fight with neighbors)

케냐 카쿠마 아동 돕기 모금에 참여하려면

분쟁의 상처와 두려움을 안고 난민촌에서 살아가는 케냐 카쿠마 아동들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우리은행 269-800743-18-309, 예금주: 나눔꽃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 월드비전 누리집(www.worldvision.or.kr)에서도 후원이 가능합니다. 모금 참여 뒤 월드비전(02-2078-7000)으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2천만원입니다. 후원금은 난민촌 어린이들이 종족 간 갈등, 학대, 폭력, 노동에서 벗어나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받도록 돕는 긴급구호사업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평화 증진 아동클럽, 교실 건축, 학습 기자재 지원 등이 진행됩니다. 월드비전은 소중한 후원금이 투명하게 사용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카쿠마/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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