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18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벽에 ‘춘풍추상’(남에겐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자신에겐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이라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최근 어느 송년 모임에서다. 거개가 법조인이라 비위 의혹으로 시끌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이 화제에 올랐다. 꼬리를 문 얘기는 이내 특별감찰관(특감)으로 번졌다. 대통령의 배우자와 친족, 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공직자의 비위 행위 감찰을 위해 박근혜 정부 때 처음 도입된 독립적 감찰기관 말이다.
“집권 1년 반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 봐.” “직전엔 의전비서관이 만취 운전도 했잖아.” “난 지금 특별감찰관 없는 게 원인인 것 같아.” “뜬금없이 웬 특별감찰관? 거긴 청와대 고위직만 감찰하는 거 아닌가?” “특감이 있었으면 특별감찰반 애들이 저렇게 맘 놓고 설쳤을까? 청와대를 감시하는 ‘워치독’(감시견)이 없는 건 큰 문제야.” “그래. 그건 일리가 있네. 누군가가 항상 꼬나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심하게 되지. 없으면 그 반대고. 사람 심리가 그렇잖아. 조직 기강도 마찬가지고.”
특감의 부재는 외부 감시자의 부재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생각하면 있는 것이 정상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상의 비위 감찰이 직무라지만, 상징적 ‘효과’는 중·하위직까지 미친다. 상시적인 워치독의 존재는 그 자체로 강력한 경고가 된다. 그런 특감이 19개월째 공석이다.
문 대통령도 국회에 후보자 추천을 요청한 적이 있다.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24일이다. 그날 청와대 설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대통령은 특별감찰관이 법률상 기구로 이를 적정하게 운영할 의무가 있고, 대통령 친인척 비위 감찰이라는 기능에 독자성이 있으므로 (…) 그 기능을 회복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특감은 ‘법정기관’이다. 법엔 특감 자리가 비면 30일 안에 후임자를 임명하라(특별감찰관법 제8조 2항)고 돼 있다. 이석수 초대 특감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감찰했다가 사실상 해임된 2016년 9월 이후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 상태로 두면 위법이다. 법률가인 문 대통령이 ‘기능 회복’을 말한 것은 이 점을 염두에 둔 것이라 생각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포청천 같은 후보를 추천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특감은 임명되지 않았다. 후보자 추천방식을 놓고 여야가 ‘밀당’하는 사이에 대통령도 입장을 바꿨다. “조국 민정수석이 중심이 돼 청와대와 정부 감찰에서 악역을 맡아 달라.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에 대해서도 열심히 감시해 달라.” 대통령의 발언이 ‘특감 불필요론’으로 들렸다.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둔 직후의 일이다. 지난해 강조한 ‘의무’도 ‘필요’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문 대통령은 그 뒤로 특감 임명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2013년 야당 시절 특별감찰관법을 처음 대표 발의했던 박범계 의원은 이석수 초대 특감이 내쫓긴 지 한 달 되던 시점에 “식물기관으로 전락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때도 야당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월 임차료만 5천만원인 특감 사무실은 행정직원 4명이 겨우 명맥만 붙들고 있다.
지난해 말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만들어지면 특감은 흡수될 것”이라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보도되기도 했다. 공수처는 범죄 수사기관, 특감은 비위 감찰기관이라는 차이를 모르고 한 소리일까. 그로부터도 1년이 지났다.
국군기무사 해편 때의 검사 파견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청와대는 국군조직법에 근거조항이 애매한 데도 신설 ‘군사안보지원사령부’(옛 기무사)에 현직 검사 2명을 파견토록 했다. 국군조직법에는 “국군에 군인 외에 군무원을 둔다”고 돼 있다. 대통령령이 상위법을 어겼다고, 국회에서 위법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법제처 유권해석을 근거 삼아 유야무야 넘어갔다. 법에 따라 반드시 임명해야 할 특감은 비워둔 반면, 법적 근거가 모호한 검사 파견은 위법 논란을 무릅쓰고 강행한 것이다.
그날 송년 모임은 유난히 말이 많았다. 몇 마디가 더 이어졌다.
“이제 집권 3년 차로 넘어가는 데 조국 수석의 ‘셀프 감시’, 잘 될까?” “글쎄, 팔은 안으로 굽는 거 아닌가? 전 정권들 봐봐. 민정수석이 멀쩡히 있는데도 측근·친척 비리에 예외가 있었나? 정권을 위해서도 외부 감시자는 있는 게 좋아.” “특감 임명 안 해도 법적 책임은 없어. 찾아보니 벌칙 조항이 없네. 하지만 나중에 손해 보는 건 대통령이 될지도 몰라. 호미로 미리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 일이 생길 수 있거든.”
강희철 법조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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