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한 의사가 고인을 추모하며 그렸다.
진료하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숨지기 직전 간호사가 대피할 수 있도록 조처한 사실이 확인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첫날 그에게 진료를 받았던 환자 등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2일 “임 교수가 진료실 문 앞의 간호사에게 ‘도망치라’고 말한 뒤 본인은 반대편으로 향하는 모습이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포착됐다”며 “임 교수는 도피 중에도 간호사가 피했는지를 확인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서서 간호사를 바라봤고, 피의자가 다가오자 다시 도피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임 교수가 마지막까지 간호사 등의 안전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 박아무개(30)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5시44분께 진료상담을 해주던 임 교수의 가슴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사건 당시 임 교수는 박씨가 진료실에서 흉기를 휘두르자 진료실과 연결된 옆 진료실로 대피한 뒤 이곳에서 나오며 근처에 있는 간호사에게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경찰은 “간호사를 대피시키기 위해 문밖으로 나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진료실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도망치라고 말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임 교수의 빈소는 이날 오후 2시께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에 차려졌다. 빈소에는 강북삼성병원 의료진을 포함해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근무복 차림으로 빈소를 찾은 일부 의료진은 조문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며 빈소를 나서기도 했다. 빈소를 방문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진료 현장에서 의료진과 환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실효적인 장치를 확보해야 한다”며 “장례가 끝나는 대로 정책 대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인에게 진료를 받았던 환자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12년 전 임 교수를 처음 만나 열흘 전까지도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료를 받았다는 주아무개(55)씨는 고인을 ‘자상한 의사’로 기억하며 안타까워했다. 주씨는 “믿고 싶지 않은 일”이라며 “진료가 끝나면 항상 자리에서 일어나 환자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늘 웃는 얼굴로 배려해주셨던 분이었다. 나처럼 힘들고 아픈 사람을 살리고 가셨으니 하늘나라에서 좋은 것만 보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들이 2년 전 임 교수로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정아무개(55)씨는 “아들이 우울증 약을 먹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뻔했는데, 임 선생님을 만나 지금은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 너무 감사했다”며 “아들도 소식을 접하고 밤새 울었고, 나 역시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는 피의자 박씨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가 진행됐다. 박씨는 “왜 죽였느냐” “유가족에게 할 말 없나” 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신민정 선담은 오연서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