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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심석희 변호인 “선수촌서 피해…국가책임 짚어야”

등록 2019-01-09 19:17수정 2019-01-10 11:23

법무법인 세종 임상혁 변호사
“심 선수 아버지, 충격으로 약물 치료 중
통제된 시스템에 선수 몰아 넣고 범죄엔 나몰라라
교육강화·영구제명 사후엔 너무 늦고 의미도 없어
선수들 대들어봤자 손해다 인식…대한체육회 방관만
아버지는 충격과 분노에 약물에 의존해 간신히 버텨
국민들 모두 나서서 심석희 선수 용기 응원 해야”
심석희 선수 법률대리인을 맡은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심석희 선수 법률대리인을 맡은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신고센터 없어서 이렇게 됐나요. 교육강화 하고 영구제명하면 뭐해요. 사후엔 이미 늦어요. (국가가) 근본적으로 자기 책임이라고 절실하게 느껴야 해요. (지금까지) 도마뱀 꼬리 자르면 된다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빠지고, 당사자 개인비리로 남겨둬 여기까지 온 겁니다.”

9일 서울 중구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만난 임상혁(50) 변호사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 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조재범 코치한테 성폭행당한 사실을 두고 ‘국가의 부재’를 얘기했다. 임 변호사는 “법률적으로 관리감독의 문제가 있다. 국가대표선수는 국가의 대표이고, 국가가 필요해서 국제대회에 내보낸다. 좋은 성적을 요구하며 통제된 시스템에 선수를 넣어두고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난 모른다고 빠진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부터 나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근절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임 변호사는 심석희 선수의 변호인을 지난해 여름 처음 맡았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벌어진 조재범 코치의 심석희 선수 폭행사건이 법정 다툼에 들어가면서 심석희 선수 쪽에서도 조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9월 상습상해 등 혐의로 조재범 코치한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했다.

초·중등 학교를 다니는 두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임 변호사는 “심석희 선수의 폭행 내용을 알고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학부모는 심석희나 김연아를 보면서 선수의 꿈도 키우고, 지도자한테 맡긴다. 그런데 성폭력까지 당했다는 사실을 들으면서 이게 사실인가 의심했다. 심석희 선수의 말을 못 믿는 게 아니라 과연 2019년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일인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심석희 선수는 평생의 아픈 상처인 성폭행 피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조재범 전 코치와 법정공방을 하면서도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구속된 조 전 코치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면하려고 하자 용기를 냈다. 임 변호사는 “2심 과정에서 조 코치가 합의서를 제출하는 등 자칫 폭력 문제가 집행유예로 끝날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리 쪽에서도 얻어낼 것을 얻어내면서 합의할 것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때 심 선수가 아버지한테 성폭행 사실을 털어놨다”고 말했다.

평생 딸 뒷바라지를 해온 아버지의 충격도 엄청났다. 임 변호사는 “오랫동안 딸을 지원해온 아버지도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뒤 굉장히 충격을 받고 분노했다. 현재 스트레스 때문에 약물을 복용하면서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임 변호사는 곧바로 심 선수의 성폭행 피해 고백 이후 여성 변호사를 배치해 심 선수와 일대일 심층 면담을 진행했고, 주말까지 밤샘 작업을 하면서 12월 성폭력 사건에 대해 추가 고소를 할 수 있었다.

임 변호사는 이 부분에서 심석희 선수의 용기를 칭찬했다. 그는 “폭행 사건만으로 재판이 진행될 때 자칫 경미한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심 선수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할까’ ‘경기력 향상을 위한 매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야’ 등으로 생각했다면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심 선수는 단호했다. 정말 대단한 결심이고 큰 용기”라고 했다.

지금까지 지도자 폭력이나 성폭행 문제가 터지면 최종적으로 피해를 보는 쪽은 선수가 많았다. 2015년 국가대표 루지의 권아무개 선수는 상습 폭행을 해온 코치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해 승소했다. 하지만 1년 단위로 뽑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대비할 수 없었고, 결국 꿈에 그리던 대표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임 변호사는 “고소를 하고 소송까지 가도 판결문은 의미가 없다. 선수는 대들어봤자 손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그때도 연맹에서는 선수를 전혀 보호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도 방관하기는 마찬가지다. 구조의 문제라기보다 개인 문제로 치부한다”고 비판했다.

쇼트트랙을 비롯한 빙상종목은 대개 개인코치가 선수를 지도한다. 선수와 지도자의 관계는 이해가 상충하지 않으면 평생을 간다. 심석희 선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조재범 코치의 지도를 받았고, 중학교 시절부터 전국을 석권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 대신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 같은 기억이 더 무겁게 쌓였다.

심석희 선수 법률대리인을 맡은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심석희 선수 법률대리인을 맡은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임 변호사는 이날 문화체육관광부 긴급 기자회견에서 노태강 차관이 성폭력 가해자 영구제명 등 새로울 것 없는 대책을 내놓은 것에 대해서도 “알맹이가 하나도 없다. 무책임하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막지 않고 사고가 터진 후에는 아무 소용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피해 장소가 국가가 직접 관리감독하는 선수촌 여자 라커룸, 대학교 라커룸에서 발생했다. 만약 정말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불 꺼진 방에 찾아가 살펴보는 관심이 필요했다. 과연 그것이 남의 일인가. 이번 일을 계기로 관리감독의 법적 책임이 어디까지 있는지, 상급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건이 불거지면 이것이 빨리 사라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런 사람이 다 없어져야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고 덧붙였다.

심석희 선수는 현재 2월 월드컵과 대표선발전을 준비하면서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고 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심석희의 표정이 이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훈련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 변호사는 “여성으로서 견뎌야 할 추가적인 피해와 가해자의 보복, 가족들을 생각해 이 사실을 혼자서 감내해왔다. 그 신체적, 정신적 피해는 너무 막대하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이 힘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심석희 선수의 건강한 부활은 큰 의미가 있다. 선수 생활도 더 해야 한다. 임 변호사는 “심 선수가 더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심 선수를 지지하고 성원해 능력있는 선수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북돋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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