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4세’ 김혜원(가명)씨가 지난달 29일 오후 강원도 홍천 집에서 낳은 지 18일 된 아기를 돌보고 있다. 홍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나의 소원, 할 때 소원이요. 단어 뜻이 좋아서 그걸로 이름을 지었어요.”
지난달 29일 오후 강원도 홍천군 한 시골 마을에서 만난 열아홉살 김혜원(가명)씨가 생후 18일인 딸 소원이를 품에 안고 말했다. ‘고려인 4세’인 혜원은 까만 생머리를 양쪽으로 곱게 땋아내렸다.
모유 수유를 하는 혜원은 ‘밤’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2시간마다 깨요. 자꾸 울어요.” 처음으로 소원이를 목욕시킬 땐 손이 벌벌 떨렸다. “떨어뜨리면 어떡해요. 너무 무서웠어요.” 유튜브에서 ‘아기 목욕시키기’ 동영상을 검색해 그걸 보면서 소원이를 씻겼다고 했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열아홉 엄마 품에서 소원이는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혜원이는 그런 소원이를 아무 말 없이 한참 내려다봤다. 혜원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스쳤다. “가족이 생겨서 좋아요.” 엄마와 할머니를 차례로 잃고 홀로 삶의 무게를 짊어진던 혜원이에게 소원이는 이제 살아갈 이유 자체다.
혜원이의 고향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다. 2000년 2월 혜원이가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이혼했다. 엄마는 반찬을 만들어 팔았다. 고려인 2세인 할머니는 혜원이가 두 살 때 한국에 일하러 갔다. 할머니는 꼬박꼬박 돈을 부쳐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제가 공부를 되게 좋아했어요. 한국어 학원도 다녔어요. 학원비도 할머니가 주셨어요.” 혜원이가 과거형으로 말했다.
2011년 엄마가 암으로 숨지면서 수학을 곧잘 하던 11살 혜원의 삶은 통째로 뒤집혔다. 아빠나 친가 쪽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엄마 지인 집을 전전하던 혜원이는 2012년 6월28일이 돼서야 방문동거비자(F-1)를 얻어 할머니 손을 잡고 한국에 왔다.
혜원이는 여전히 한국말이 서툴렀다. 또래 친구들이 쓰는 휴대전화 앱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경기 여주시 한 초등학교 5학년으로 들어갔지만 적응이 쉽지 않았다. “친구랑 셋이 앉아 있잖아요? 그럼 둘이서만 카톡을 해요. 그때 그게 뭔지 몰랐어요. 내 앞에서 자기들끼리 카톡을 보내면서 웃고 그랬어요. 제가 말을 못한다지만 그런 (따돌리는) 느낌은 다 알았어요.”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용직으로 일하던 할머니는 밤 8시가 돼서야 집에 왔다. 혜원이는 그때까지 밥도 안 먹고 할머니를 기다렸다. 혜원이의 사정을 알게 된 지역아동센터는 다문화 학생 대안학교인 ‘해밀학교’에 연락을 했다. 기숙형 학교여서 혜원이처럼 돌봄 사각지대에 빠진 아이에게 적합할 것이라고 했다. 2013년 가을, 혜원이는 여주 집을 떠나 해밀학교가 있는 강원도 홍천군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됐다.
“해밀학교에 들어가서 한국말이 많이 늘었어요. 기숙사라서 애들하고 선생님들하고 자꾸 이야기하니까요.” 후견인 이경진(42) 선생님을 만난 것도 이때다. 그는 혜원이를 “생각이 깊은 아이”라고 했다. “처음 봤을 땐 아이가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그건 생각이 깊은 탓이고 실제로 친구들하고는 굉장히 활달하게 잘 지냈어요.”
기숙사 생활은 2년 만에 끝났다. 2015년 1학기가 끝나자 할머니는 혜원이에게 “공부는 그만하고 같이 일을 하자”고 했다. 할머니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화장품·초콜릿 공장부터 대형마트 물류창고까지 가리지 않고 일을 했던 할머니였다. 혜원이도 주말에 여주 집에 가거나 방학이 되면 할머니를 따라나서 일당을 벌었다. 주변 고려인 친구들의 사정이 비슷했다. “한국에 들어온 고려인 중에 대학까지 졸업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공장 같은 데 다니고 하니까….” 열다섯, 혜원이는 그렇게 학교를 떠났다. 하지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게 있었어요. 많이 힘들어도 엄마하고 할머니한테는 웃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고요.” 혜원이는 엄마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참는 게 버릇이 됐다. “한국에 와서는 할머니가 참으라고 하면 참고, 뭐 하라고 하면 다 했어요.” 4년 동안 할머니 동거남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도 참았다. “그 남자가 1주일에 한 번은 꼭 술에 취해 저를 때렸어요. 겨울에 잠옷만 입고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어요.”
입을 다물고 있을 동안 폭행은 강도를 더해갔다. 2016년 여름의 일이다. “할머니는 일하러 가고 저는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화장실 문을 확 열었어요. 제가 ‘할머니한테 다 말할 거다’라고 했더니 저를 때리더라고요.” 혜원이는 또 참았다. 4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학교를 완전히 그만두기는 싫어서” 잠시 일반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술에 취한 남자가 이번엔 묵직한 맥주캔을 손에 들고 때리기 시작했다. 입에서 피가 흘렀다. 교복이 빨갛게 물들었다. 혜원이는 피로 물든 교복을 입은 채 경찰서에 가서 그 남자를 신고했다. 남자는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출국 됐다. 혜원이와 함께 맞기도 했다는 할머니는 “왜 신고했냐”며 종종 혜원이를 원망했다. “멍이 든 얼굴을 하고 학교에 가고 싶진 않았어요. 일하러 간다고 하고 그만뒀어요. 3개월 정도 다녔던 것 같은데.” 열여섯, 혜원이는 두 번째로 학교를 떠났다.
“일당이 6만3000원이었다가 7만2000원이 됐어요.” 해밀학교를 떠나고 2년, 혜원이의 일당이 9000원 올랐다. 그 사이 휴대전화 충전용 부품을 조립하고 건물을 청소했다. 초콜릿 공장도 다녔다. “제가 한국인처럼 생겼잖아요. 그래서 인력사무소 사장이 (일을) 잘 보내줬어요.” 고려인이라는 점이 혜원이의 한국살이에 득이 된 건 이 정도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일거리마저 끊겼다. 딱히 놀러다닌 곳도 없다. “한국에 와서 롯데월드, 에버랜드, 춘천 남이섬 가봤는데요, 전부 학교 다닐 때 갔던 곳들이에요.”
한국인처럼 생겼지만, 한국인은 아닌 혜원이는 정기적으로 방문동거비자를 갱신해야 했다. 그런데 2017년 9월 할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갱신 기회를 놓쳤다. 할머니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혜원이는 ‘미등록 외국인’이 돼버렸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4개월을 더 버텼지만 혜원이는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다. “그때 제가 초콜릿 공장을 다니고 있었거든요. 열심히 일해서 병원비 모으면 할머니한테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어떤 분이 저를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서 무서워서 못 갔어요.” 할머니가 눈을 감을 때도 곁을 지키지 못했다. “할머니가 저를 한국에 데려오지 않았다면 제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떻게 혼자 살았겠어요….” 혜원이의 입에서 서러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에 이어 할머니마저 떠나버린 뒤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는 무겁기만 했다. 할머니가 입원한 뒤부터 혜원이는 홀로 여주 집을 지켰다. 미성년자에 미등록 상태였던 혜원이에게는 통장 하나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공장에서 번 돈은 종이봉투에데 넣어 보관했고요. 그 돈으로 ‘불닭볶음면’ 사서 자주 먹었어요.”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실은 그 위태로운 삶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사망하자마자 집주인은 집을 비우라고 말했다. 몇달 밀린 월세가 이유였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던 혜원이는 돌아가신 할머니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 하나를 찾았다. 이경진 선생님이었다.
기꺼이 후견인을 자처한 선생님 덕분에 비자 문제가 해결됐다. ‘출국해도 돌봐줄 가족이 없는 혜원이를 구제해달라’는 호소에 법무부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비자를 조건부로 갱신해줬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있었다. 홀로 남았다는 지독한 현실 앞에서 어린 소녀는 자주 마음이 흔들렸다. “진짜 진짜 왜 사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저는 혼자가 됐잖아요.”
선생님 집에 머물며 다시 해밀학교에 착실히 다니는가 싶던 혜원이가 지난해 4월 갑자기 집을 나갔다. 경기도 안산시에서 고려인 친구와 함께 살며 휴대전화 부품 조립 공장에 다녔다. 밤을 꼬박 새워 12시간을 일하는 날이면 10만8000원을 손에 쥐었다. “그땐 공부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다른 걸 하면서 할머니 생각을 안 하고 싶었어요. 몸이 힘든 것보다는 머리가 너무 힘들었어요.”
지난해 9월, 혜원이가 선생님 집으로 돌아왔다. 배가 부른 채였다. 아이 아빠는 안산에서 만난 고려인이라고 했다. 가족이 없는 혜원이에게 “도와주겠다”며 접근했던 남자였다. 남자는 할머니 동거남이 그랬던 것처럼 임신한 혜원이에게 손을 댔다. 이경진 선생님 부부는 혜원이를 아무 말 없이 다시 받아주었다.
김혜원씨의 집 앞 빨랫줄에 지난달 29일 오후
“소원이는 저처럼 힘들게 안 살았으면 좋겠어요.” 방황하던 소녀는 이제 아이와 함께 할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혜원이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많은 사람의 응원과 후원도 한몫했다. 여주 집의 밀린 월세 300만원과 지금 소원이와 함께 사는 집 보증금 300만원 등은 해밀학교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매달 30만원 월세는 한 재단에서 3년 동안 지원하기로 했다. 우즈베키스탄 친구 부부는 혜원이와 함께 살면서 소원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정서적·물질적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지역 커뮤니티도 나섰다. 홍천 지역 젊은 엄마들이 기저귀부터 속싸개, 젖병 등 소원이에게 당장 필요한 물품들을 보내줬다. 대한적십자사는 출산비용 80만원과 긴급 생계비 150만원(2018년 300만원 지원)을 지원하고 있다. “저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도와주셔서 너무 감동받았습니다. 한국에 좋은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출산 전후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해밀학교 후원자들의 일시 후원금 1300만원 가운데 남은 금액은 200만원이다. 적십자의 긴급 생계 지원도 이달 끝난다. 당장 소원이의 양육 비용이 막막하다. 혜원이가 소원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다시 취업 전선에 나서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데 최소한 3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초등학교 졸업장밖에 없는 혜원이가 어떤 방식으로든 공부를 이어나가는 것도 과제다. 꿈이 뭐냐고 묻자 혜원이는 “무역 쪽에서 통역으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국적을 얻지 않고는 혜원이의 홀로서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이경진 선생님의 말이다. 혜원이는 현재 양육수당 등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재외동포법 시행령은 동포의 범위를 3세대까지로 한정해 혜원이와 같은 고려인 4세는 외국인으로 분류한다. 취업 활동에도 제약이 많다. 6월 말까지 특별 연장된 방문동거비자는 원칙적으로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최근 법무부는 고려인 4세도 재외동포로 인정하는 재외동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는데 개정안 통과 뒤 취업 활동이 자유로운 재외동포비자(F-4)를 받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이경진 씨는 “지금으로선 혜원이가 합법적으로 취업할 가능성은 없다”며 “귀화만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혜원씨의 방문 안쪽에는 다짐을 적은 종이가 붙어 있다. 러시아어로 된 질문에 ‘딸 잘 기르기’ ‘돈을 벌기’ 등의 답이 한국어로 적혀 있다. 질문의 뜻을 물으니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요”라고 답했다. 홍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울지마.” 혜원이는 막 태어난 소원이를 안고 이렇게 속삭였다. 이 말은 혜원이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혜원이가 방문 안쪽에 붙여둔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딸 잘 기르기’ ‘돈을 벌기’ 같은 말이 한국어로 적혀 있었다. 러시아어로 된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혜원이에게 질문의 뜻을 물었다.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요.” 혜원이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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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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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다민이(가명)의 사연(
<한겨레> 2018년 12월26일치 19면)이 소개된 뒤 총 1476만2700원(2월7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익명으로 900만원을 쾌척한 후원자를 포함해 수많은 후원자가 ‘다은가족 힘내세요’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일시후원계좌를 통해 후원해주신 168명과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후원의 손길을 전달한 82명의 후원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습니다. 후원금은 다은·다민이의 재활치료비(언어) 및 생활안정지원 비용으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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