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표’ 사법개혁이 황교안이라는 더 큰 벽을 만났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신임 대표가 2월27일 전당대회장에서 당대표 선거에 앞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고양/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골수 공안’ 황교안 전 총리가 제1야당 대표에 선출됐다. ‘어대황’(어차피 대표는 황교안)을 확정한, 특기할 것 없는 전당대회 결과에 새삼 주목하는 까닭은 이른바 ‘사법개혁’의 운명과 관련해서다.
황 대표는 정치에 입문한 뒤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에 대해 찬반을 밝힌 적이 없다. “입이 4분의 3”이라는 정치에서 없는 말을 짐작으로 때우기는 쉽지 않지만, 지난 1월15일 그가 입당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에는 많은 것이 드러나 있다. “나라 상황이 총체적 난국인데 현 정부는 ‘적폐몰이’만 하고 있다. 정권과 맞서 싸우는 강력한 야당이 되는 게 첫번째 과제다. 지금은 우리가 분노를 합해서 정상적이고 반듯한 나라가 되도록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를 검사로, 상관으로, 장관으로 겪어본 법조인들은 ‘정상’과 ‘반듯’의 의미를 이내 이해했다. “‘정권과 맞서 싸우는 강력한 야당’이라는 게 뭐겠나. 결국 입법 협조는 없다는 거지.”(검찰 관계자) 이런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국회에 제출돼 있는 검찰·경찰·국가정보원과 사법부의 개혁법안은 앞으로 험로를 벗어나기 어렵다. 더구나 그는 “뭉근하게 깔고 앉아 조지는 스타일”(검찰 출신 변호사)이라고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도 ‘어대황’의 위험 신호를 감지는 했던 것 같다. 2월12일, 별로 새로울 것 없는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를 소집한 것이 그렇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는데,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알리바이성 회의’가 아니라면 왜 그 시점인지부터가 불분명했다. 임기가 이미 끝났거나 사의를 밝힌 각종 위원장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한껏 무게를 실었으나 대통령의 발언은 지루한 동어반복이 많았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과 식사하는 자리라고 해서 예의 차원에서 갔다”고 했다.
대통령이 강조했다. “입법을 통해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항구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원론적으로는 옳은 말이다. 교과서에서 본 듯도 하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어떻게’다. 대통령은 “연내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대승적으로 임해주실 것을 간곡하게 당부드린다”고 했으나, 그 정도 ‘당부’로 움직일 국회였으면 그 법안들이 지금까지 저러고 있을 리 만무하다.
아마도 그래서 조국 민정수석이 또 나섰음직하다. 그가 꺼내 든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 가운데 국회의원 등 선출직 제외 가능” 카드에선 절박한 심정이 읽힌다. 하지만 결과는 패착이다. 핵심 내용을 어설픈 흥정의 좌판에 올려 진정성을 스스로 훼손했다. 수단과 목적을 물구나무 세웠다. ‘국회의원 빼고 공수처’에 박수를 보낼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이러고도 혹여 의제 설정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이라도 한다면 딱한 일이다. 게다가 의원입법으로 진행 중인 법안의 핵심 내용을 맘대로 넣고 뺄 수 있다고 말하는 ‘대통령 비서관’은 처음 본다. 그러니 “지금까지 이런 민정수석은 없었다. 그는 대통령 비서관인가, 여당 원내대표인가” 같은 영화 대사 패러디가 나오는 것이다. 조 수석은 발언 말미에 “국회가 답할 차례”라고 했다. 이 역시 들어본 말이다. 그는 지난해 3월22일 ‘청와대발 개헌안’을 발표한 뒤에도 “이제 국회의 시간”이라고 했었다. 그 개헌안은 결국 국회 문턱을 못 넘었다.
대통령은 제1야당을 압박만 할 뿐 설득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2년이 흘렀다.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시대적 과제”(문재인 대통령) 같은 말을 애써 보태지 않아도 사법개혁에 대한 의미 부여는 이미 차고 넘친다. 명분이 아무리 훌륭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허사다. ‘광야의 외침’은 종교에서 모두를 흔들어 깨우는 경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에선 공허한 도덕 강론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유능한 진보’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오바마가 ‘공화당 밉상’들이 예뻐서 웃으며 함께 골프 치고 맥주를 마셨을까.
이제, 황교안이라는 더 큰 ‘허들’이 추가됐다. 설득하지 못하면 좌절하게 될 것이다. 15년 전 노무현 정부 초기 ‘4대 입법’의 실패를 다시 입에 올리는 법조인이 부쩍 늘었다.
강희철 법조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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