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갑룡 경찰청장 기자회견 중 “경찰총장” 발언에
법조계 “핵심 증거물 공개, 있을 수 없는 일” 비판
‘해외 투자자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그룹 빅뱅의 승리가 지난달 27일 저녁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마디로 ‘경찰총장’ 도망가라는 얘기 아닌가.”
지난 13일 경찰이 ‘버닝썬’ 사건 경찰 고위직 유착 의혹의 핵심 증거물인 카카오톡 대화방 속 내용을 ‘공개’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경찰 조직 논리를 앞세우다 수사의 기본을 스스로 깼다는 것이다. 검찰 안팎에선 경찰이 선제적으로 대규모 수사팀을 꾸렸지만, 그와 별개로 검찰이 이 사안을 직접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민 경찰청장과 배용주 경찰청 수사국장은 13일 오후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이 사건 증거물 내용을 선제적으로 밝혔다. ‘경찰 최고위층 유착 의혹이 있는데 누구인지 특정이 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다. 배 수사국장은 “특정된 것은 없다. 구체적인 범죄사실도 없다”며 “다만 카톡 내용에 ‘경찰총장’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 부분에 대해 철저히 확인하겠다”고 덧붙였다. 곧바로 민 경찰청장이 “마치 ‘딜’을 한 것처럼 하는 뉘앙스가 나와서 내사단계부터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했고, 배 수사국장은 “‘옆에 업소가 우리 업소 내부 사진을 찍고 그랬다. 경찰총장이 그런 부분 봐준다’는 내용”이라며 핵심 증거물의 구체적 내용까지 설명했다. 이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두 사람은 “(경찰총장이 언급된 날짜는) 2016년 7월이다” “그들이 말하는 구체적 사안에 대한 날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내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앞으로 은밀하게 내사해야 할 내용을 언론에 모두 공개한 것이다.
서울지역의 한 검사는 14일 “실제로 경찰청장 등 고위직이 연루됐다면 오히려 더 은밀하게 수사를 해야 할 사안이다. 증거물부터 공개한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했다. 해당 ‘경찰총장’이 관련자를 회유하거나 말을 맞출 수도 있고, 또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도 “경찰청장이 이제 막 시작된 수사의 핵심 증거물을 공개한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찰총장’ 도망가라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경찰 내부에서도 수사 중인 사안의 핵심 증거물을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공개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찰 하위직뿐 아니라 고위직까지 연루된 단서가 드러나자 당황한 상황에서 ‘스탠스’가 꼬인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 수사를 검찰이 직접 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많다. 다만 경찰청장이 나서서 대규모 수사력을 투입했다며 수사 강행 의지를 밝힌 점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다. 이날 민 경찰청장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경찰의 명운이 걸렸다는 자세로 전 경찰 역량을 투입하겠다”며 자체 수사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