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사고로 뇌병변장애 1급을 얻은 김미형씨가 충북 청주시 자택 침대에 누워있다. 스스로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 없는 김씨는 어머니 김정남씨(사진 맨 왼쪽)와 두 딸의 돌봄을 받고 있다. 사진 월드비전 제공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지난 5일 오후 5시 충북 청주시 외곽의 한 주택. 올해로 중학교 3학년인 민아(가명·15)가 걸어서 20분 거리의 학교에서 막 돌아왔다. 방 안에 있는 엄마에게 익숙한 듯 큰 소리로 인사를 했지만 엄마 김미형(37)씨는 대답이 없다. 대신 외할머니 김정남(59)씨가 손녀를 맞았다.
“우리 딸이 오른쪽 뇌가 아예 없어요.” 정남씨가 오그라든 미형씨의 왼쪽 손을 주무르며 말했다. 침대에 누운 미형씨의 머리 오른쪽이 왼쪽과 달리 푹 꺼져 있었다. 머리 앞쪽에서 뒤쪽으로 길게 이어진 흰 줄도 눈에 띄었다. “수술 자국이에요. 거기엔 머리카락이 다시 안 자라더라고요.” 정남씨가 덧붙였다.
중증 뇌병변 장애를 지닌 미형씨는 스스로는 몸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다. 오른쪽 뇌를 다친 탓에 미형씨의 몸 왼쪽 전체가 마비됐다. 마비된 팔과 다리가 오그라들면서 안 그래도 마른 미형씨의 몸은 더 작아졌다. 정남씨는 그런 딸의 몸을 하루도 빠짐없이 주무르고 다리와 어깨가 곧게 펴지도록 당겨준다. “미형이 인상이 안 좋잖아요? 그럼 어디가 덧나도 덧나 있어요. 틈날 때마다 여기저기 살펴봐야 해요.” 올해로 9년째, 정남씨는 딸에게 기적이 찾아오길 바라며 하루하루 같은 일상을 산다.
2010년 5월의 일이다. 결혼 뒤 두 딸을 낳고 충북 음성군에 살던 미형씨가 이틀째 정남씨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의아해하던 정남씨에게 사위가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전했다. 전날 저녁 계단에서 구른 미형씨가 하루가 지나도록 의식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왜 진작 연락하지 않았느냐’는 정남씨의 말에 사위는 ‘깨어날 때만 기다렸다’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했다. 미형씨의 상태는 매우 위중했다. “눈이 하얘요. 검은 눈동자가 없어요. 음성 병원에선 뇌에 압력이 차서 그렇다고 했어요.” 급하게 서울 대형병원으로 옮겨진 미형씨는 13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이때 오른쪽 뇌를 제거했다. 미형씨는 꼬박 3개월을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미형씨의 첫째 딸 민아가 6살, 둘째 딸 민주(가명·12)가 3살 때 일이다. “엄마 몸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어요.” 이제 열다섯살이 된 민아의 희미한 기억 속에 사고 당일 엄마의 모습이 남아있다.
정남씨는 미형씨의 사고 자체가 의문투성이라고 말했다. 유일한 목격자인 사위는 ‘계단에서 굴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정남씨에게 “이런 머리 상처는 계단에 굴러서 생긴 게 아니라 어딘가에 반복적으로 머리를 찧어서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고가 나기 3년 전에 있었던 일도 정남씨의 의심을 키웠다. 남편과 크게 다툰 미형씨가 이혼을 결심하고 친정에 찾아왔을 때다. “당시 딸 얼굴에 새카맣게 멍이 들어 있었어요. 어린 나이에 시집갔지만 제 자식 챙기는 건 말도 못했던 딸이라… 애들 때문에 남편한테 다시 돌아간 거죠.”
의심은 끝내 풀리지 않았지만 딸을 살리는 게 먼저였다. 미형씨는 첫 번째 대수술 뒤로도 11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정남씨는 모든 일을 제쳐놓고 딸 간호에만 매달렸다. 민아와 민주는 사위에게 맡겼다. 그렇게 1년 반이 흘렀다.
1년 반 동안 아이들은 철저히 방치됐다. “아빠는 일하느라고 늦게 들어왔어요. 다음 날 아침에 들어올 때도 있었고요.”(민아) 일곱살 민아와 네살 민주 단 둘이서 잠을 잔 적도 여러 번이다. 집은 점점 ‘쓰레기산’이 되어갔다. “민아가 언젠가부터 주말에 병원에 와서는 ‘나 할머니하고 같이 살면 안 되냐’고 자꾸 묻더라고요. 내가 그동안 가보지는 못해도 김치며 멸치볶음이며 반찬을 해서 보냈거든요. 그런데 오랜만에 사위 집에 가서 보니까 냉장고가 고장났어요.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바퀴벌레가 우글우글 쏟아지더라고요. 청소도 전혀 안 했는지 빨지도 않은 옷이 썩은 채 쌓여있는데 거기서도 바퀴벌레가….” 정남씨는 몸서리를 쳤다.
정남씨는 당장 민아를 데리고 왔다. 아빠와 떨어지지 않으려던 민주는 한동안 친할머니집에 맡겼다. 그런데, 친할머니는 민주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주 빗자루를 들었다. 민주가 가끔 정남씨 집에 오는 날이면 민주 다리 양쪽 모두 멍이 들어있곤 했다. 아홉살이 된 민주는 “겁이 나서 친할머니한테 못 가겠다”며 정남씨 집에서 버텼다. 사위는 딸 앞으로 나온 보험금 일부를 마음대로 써버린 뒤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민주까지 거두면서 네 식구의 가장이 된 정남씨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5년 전 보험금과 어렵게 모아둔 돈 2천만원까지 다 쓰고 나자 생계가 막막했다. 그렇다고 온종일 딸을 집에 둔 채 밖에서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평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방문 간호사가 집에 오는 시간이 정남씨가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 시간에 정남씨는 부동산 고객들에게 토지 매물을 보여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김미형씨의 어머니 김정남씨가 딸 머리에 선명히 남은 수술자국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진 월드비전 제공
일을 하는 몇 시간을 빼곤 정남씨의 하루는 철저히 딸 미형씨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땀은 흘리지 않는지, 목에 가래가 끼진 않았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욕창이 생긴 부위에서 진물이 조금이라도 나면 하루에 3~4번씩 소독하고 새 거즈로 갈아준다. 특히 머리 위치가 아래로 내려가면 머리에 물이 찰 수 있기 때문에 2시간에 한번씩 자세를 바꿔줘야 한다. 늘 딸 침대 옆에서 잠이 드는 정남씨는 밤에도 2시간마다 깨서 딸의 자세를 바꿔주고 잠이 들기를 반복한다.
“얼마 전에 시어머니가 수술을 받는 바람에 며칠을 미형이한테 정신을 못 쏟았어요. 미형이 왼쪽 다리가 마비됐잖아요. 접힌 사타구니 사이에 땀이 나서 진물까지 생겼더라고요. 옷을 벗기는데 피가 쏟아졌어요. 이렇게 조금만 제 손이 늦어도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정남씨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사교성 좋고 활달했던 딸이 9년째 누워만 있을 줄 정남씨는 상상도 못 했다.
정남씨의 헌신적인 돌봄 덕분인지 3년 전부터 미형씨는 의식을 되찾고 가족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비록 눈을 깜빡거려 의사를 전달하는 정도이지만 정남씨는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변화’라며 감사해 했다. “다리 아프면 눈을 두 번 깜빡하라고 하면 그렇게 해요. 또 민아랑 민주 세워놓고 얘가 민아야? 그러면 눈을 한번 깜빡해요. 내가 가끔 속이 답답해서 소리라도 지르면 눈을 꼭 감고 있다가 ‘미안해’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리고요.”
정남씨는 “병원에서 퇴원할 때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는데 내가 직접 돌보면서 많이 나아졌다”며 “병원에 계속 있었으면 딸은 벌써 갔을(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아는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엄마 돌보는 법을 익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혼자서 엄마 가래를 뺐어요. 그리고 엄마를 옆으로 옮기거나 돌려 눕힐 때 할머니 혼자서 옮기시면 힘들잖아요. 그럴 때 제가 도와드려요.” 또래보다 의젓한 민아는 불평 한마디 없이 “엄마 얼굴을 매일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자랑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가끔 엄마 앞에 화이트보드를 가져가서 글씨를 써보게 해요. 오른손은 마비가 안 됐거든요. ‘엄마 이름 써봐’ 하면 정말로 이름을 쓰세요.” 민주는 한술 더 떴다. “저는 엄마랑 가위바위보를 했는데요, 엄마가 이겼어요.” ‘일부러 져준 것 아니냐’고 묻자 민주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민아는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재잘거려도 대답을 할 수 없는 엄마 미형씨 역시 답답할 테다. 요즘 정남씨의 걱정은 내년이면 중학생이 될 민주에게 쏠려있다. 정남씨는 민주가 친할머니로부터 맞은 기억 때문인지 쉽게 놀라고 집중력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신경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차도가 많지 않다. 민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침대 옆에 가서 가만히 앉아있다가 돌아온다고 말했다. 3년째 민아·민주 자매를 지원하고 있는 강동곤 월드비전 용암종합사회복지관 복지사업팀 과장은 “민주는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라며 “침대 옆에 앉아있다가 오는 행동은 민주 나름대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네 식구가 6년째 살고 있는 집은 고칠 데 투성이다. 2017년 큰 수해를 입은 탓이다. “물이 새서 작은 방 천장 벽지가 부풀어 올랐어요.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 통을 갖다놓고 터뜨렸더니 물이 쏟아졌어요.” 당시 열살이던 민주가 말했다. 삼일미래재단 지원을 받아 옥상에 방수 천막을 설치하고 아이들이 쓰는 작은방 천장과 벽, 미형씨 침대가 있는 큰방 벽 일부를 수리했다. 그런데 지난해 또 큰 비가 내리면서 작은방 벽 대부분과 큰방 벽 일부에 곰팡이가 생겼다. 아이들이 덮고 자는 이불에도 곰팡이가 묻었다. 민주는 “작은 방 책상에서 공부할 때는 벽에 닿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인다”고 말했다.
민아·민주 자매의 방. 천장에서 비가 새는 바람에 벽지 대부분에 곰팡이가 생겼다. 사진 월드비전 제공
문제는 이 집에서마저 조만간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집 주인은 3월 말까지 집을 비워달라고 한 상태지만 정남씨는 이사할 집을 마련하지 못한 채 속만 끓이고 있다. 정남씨의 월급 120만원과 미형씨의 장애연금, 기초생활수급비를 합쳐도 생활비는 늘 적자다. 월세 20만원, 보험비 80만원, 교육비 30여만원, 미형씨의 비급여 약값과 거즈·기저귀 등 의료용품 구입비 35만원, 그리고 미형씨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입원이라도 할라치면 간병비가 월 140만원에 이를 때도 있다. 외풍이 심한 집이라 겨울이면 난방비가 50만원까지 올라간다. 얼마 전 정남씨가 투자 사기를 당해 얻은 빚 2천만원은 원금을 갚을 생각도 못 하고 매월 37만원씩 이자만 내는 상황이다. 기초생활수급자에 선정된 것도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미형씨가 법적으로는 여전히 남편과 결혼 상태인 탓이다. 수급자 선정 뒤에야 민아는 처음으로 수학 학원에 다니게 됐다.
앞으로 네 식구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정남씨는 “딸이 너무 오래 누워있다 보니 점점 쇠약해지고 면역력도 떨어지고 있다”며 딸 걱정부터 했다. 민아는 “동생과 엄마, 할머니와 흩어지게 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라고 불안감을 내비쳤다. 어디에서 살게 되든 “네 식구가 함께 살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는 손녀들한테 부담 안 되게 딸을 책임지겠다”는 정남씨는 손녀들에게 미안한 게 많다. “첫째는 돈(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대화를 많이 못 나눠주는 게 미안해요. 할머니다 보니까 엄마만큼은 못 하잖아요. 키워주는 것밖에 더 되겠어요.” 하지만 민아의 생각은 다르다. “할머니는 저한테 엄마 같은 존재에요. 제일 고마운 건, 저를 할머니 집에서 키워주신 거요. 제가 필요할 때 제 옆에 있어 주셨으니까요.” 어느새 민아는 할머니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훌쩍 컸다. 민아에게 엄마가 기적처럼 일어난다면 같이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캠핑을 가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가 사고를 당하고 나서는 가족여행이라는 걸 못 가봤어요. 그리고 엄마는 늘 누워만 계셨으니까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해요.” 정남씨는 “그럴 가망이 있겠냐”면서도 다시 일어난 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네가 누워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일어난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만 한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민아·민주(가명) 자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해주실 분께서는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세요. (우리은행 269-800743-18-309, 예금주: 나눔꽃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 월드비전 누리집(www.worldvision.or.kr)과 네이버 해피빈(happybean.naver.com)에서도 후원이 가능합니다. 모금에 참여한 뒤 월드비전(02-2078-7000)으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해 드립니다. 모금 목표액은 모두 2500만 원입니다. 후원금은 민아·민주네 가족이 따뜻하고 안전한 집으로 이사하는 데 사용되며, 아동 어머니의 병원비 및 의료용품 구입비로도 쓰일 예정입니다.
<한겨레>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18일된 아기를 혼자 돌보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4세’ 김혜원(가명)씨의 사연(
‘고려인 4세’ 19살 엄마의 소원 “갓난 딸은 힘들게 살지 않기를…”)이 소개된 뒤, 목표액인 1000만원을 훌쩍 넘긴 총 3231만 6954원(3월18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기사가 나간 2월8일 적십자 희망풍차 콜센터(1577-8179)를 통해서 따뜻한 응원과 함께 후원 문의가 쇄도했다”고 전했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후원해준 정성은 혜원씨 가족의 생활안정자금으로 사용되며, 목표액을 넘어선 후원금은 혜원씨와 같은 어려운 상황의 다른 위기가정에 지원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