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SKT 올해 말 2G 서비스 종료 선언…
“번호는 내 분신” 주장하는 이용자들 또다시 불만 폭발
010 번호 통합 논란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에스케이텔레콤이 지난 2월, 올해 안에 2세대(2G) 서비스 종료 계획을 밝히자 2G폰 이용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끝까지 투쟁입니다. 016을 버릴 수 없습니다.” “정작 눈앞에 종료시킨다는 말이 나오니 불안하네요. 폰 망가질 때까지 버티겠습니다.”
2월21일 에스케이텔레콤(SKT)이 2019년 안에 2세대(2G)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네이버 카페 ‘010통합반대운동본부’가 시끌시끌해졌다. 그동안 정부와 통신사의 ‘010 통합’ 움직임에 안테나를 세웠던 식별번호 ‘01×’(011, 016, 017, 018, 019) 이용자들이 또다시 폭발한 것이다. 이날에만 관련 글이 최소 120개가 올라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2G 서비스를 이용하는 01× 번호 그대로 3G·LTE·5G로 이동할 수 있는 ‘한시적 세대 간 번호이동’을 2월25일부터 2021년 6월30일까지 허용했다. 010 번호 이동에 동의한 뒤 전환하면 기간 내에는 01× 번호를 사용할 수 있다. 01× 이용자들이 “01×로 LTE를 이용하는 게 가능한데도 정부에서 010 번호 통합을 위해 막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현재 01× 번호 이용자는 2G 서비스만 쓸 수 있다. 과기부 관계자는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번호 자원 관리 차원에서도 010으로 통합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주민등록번호 같은 내 번호
경기도 일산에서 자동차부품 사업을 하는 SKT 이용자 김아무개(55)씨도 SKT의 2G 종료 계획 발표가 못마땅하다. 김씨는 1995년 SKT에서 011을 개통했다. 이후 25년 동안 011을 써왔다. 엘지(LG)텔레콤(현 LG유플러스)으로 잠깐 번호이동을 했지만 011 번호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기아자동차에 다니던 김씨는 회사 부도 뒤 퇴사해 사업하는 지금까지도 명함에 휴대전화번호 ‘011’이 찍혀 있다. 김씨에게 011은 날 때 부여받아 바뀌지 않는 ‘주민등록번호’와 같다.
김씨는 “예전 한국주택은행(현 KB국민은행) 계좌번호도 지금껏 쓰고 있다. 혹자는 바꾼 번호를 지인들에게 안내하면 된다고 하는데, 사업하는 사람에게 번호는 ‘신용’이자 ‘분신’이다. 내 번호는 흔히 말하는 ‘골든 번호’도 아니다. SKT에서 100만원을 준다고 해도 이 번호가 중요하다. 2G폰을 사용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011을 쓰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를 보면 김씨처럼 01× 번호를 유지하고 싶다는 글이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온다.
스피드 011, 파워 017 추억의 01×
경북 영천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40대 중반의 민영운(가명)씨도 SKT에서 ‘019’ 번호를 이용하고 있다. 019 번호를 쓴 지 20년이 넘었다. 민씨도 김씨처럼 01× 번호를 바꾸고 싶지 않다. “채무가 있다거나 자기 번호를 알려주기 싫을 때 번호를 바꾸지 않나. 20년 넘게 쓰는데다 내 번호를 외우는 사람들이 있어 바꾸고 싶지 않다. 정부에서 강제로 바꾼다면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나는 내 번호가 좋다.” 민씨는 3년 전쯤 ‘010통합반대카페’에 가입했다.
010통합반대카페는 SKT의 서비스 종료 계획에 대해 “SKT의 2G 서비스 종료가 확정된 게 아니다. 우리 카페와 여러분의 목표는 SKT의 2G 이용이 아니라 01× 번호의 지속적인 이용이다. SKT의 2G 서비스는 01× 번호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던 수단일 뿐”이라며 번호이동과 전환가입을 하지 말고, 기기변경 등을 할 때 각서를 쓰지 말라는 등의 행동 요령을 알리고 있다.
1996년 2G 기술 상용화가 도입된 뒤 커진 개인이동통신 사업은 통신사마다 ‘스피드 011’ ‘파워 017’ ‘원샷 018’ 등을 내놓으며 01× 번호 다양화로 이어졌다. 01× 번호는 곧 각 통신사의 브랜드가 됐다. 2002년 정보통신부는 ‘010 번호 통합 정책’을 추진하면서 브랜드 차별을 없애고 01× 번호 자원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는 효율성 등을 추진 이유로 들었다. 현재 2G 서비스는 SKT와 LG유플러스만 제공한다. KT는 2012년 3월 종료했다. 과기부에 따르면 2G 이용자는 2018년 12월 기준 SKT 91만 명, LG유플러스 70만 명, 알뜰폰 6만2천 명으로 총 167만 명 수준이다. 2014년 633만 명, 2016년 355만 명에서 줄어드는 추세다. 여기에는 010 번호를 쓰는 이용자도 포함된다. SK텔레콤이 2G 서비스로 사용하는 주파수는 800㎒, LG유플러스는 1.8㎓ 대역으로, 해당 주파수의 할당 기간은 2021년 6월이다.
2G 서비스 종료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통신 주무 부처인 과기부의 인가(승인)를 받아야 한다. KT는 2011년 3월 2G 서비스를 그해 6월 종료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당시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 승인이 나지 않아 두 차례 연기됐다. 가입자 전환이 빠르지 않다는 등의 이유였다. KT는 고객들이 낸 집행중지 가처분 소송을 대법원에서 이기고 2012년 3월에야 서비스를 종료할 수 있었다. 방통위 승인 시점에, KT의 2G 이용자는 KT 전체 가입자 수의 1%인 약 15만 명이었다.
01× 번호 이용자들이 기대는 곳도 가입자 수다. 현재 SKT의 전체 가입자 수가 2760만 명 정도인데, KT처럼 2G 이용자가 1%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01× 번호 이용자는 2G 서비스만 쓸 수 있기에 2G 이용자가 가장 많은 SKT의 2G 서비스 종료 계획에 01× 이용자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01× 번호 이용자는 2018년 말 기준으로 SKT 43만 명을 포함해 약 52만8천 명이다. LG유플러스는 “아직 2G 서비스 종료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010 번호 통합에 반대하는 01× 번호 이용자들이 모인 네이버 카페 ‘010통합반대운동본부’. 010통합반대운동본부 누리집 갈무리
조기 종료 위해 통화 품질이 안 좋다?
SKT가 01× 가입자들이 쓰던 번호 그대로 3세대(3G)나 LTE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한시적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도 2G 이용자들의 빠른 전환을 위해서다. 전환이 빨라야 정부의 승인 가능성이 높아진다. SKT 관계자는 “2G 인프라 장비 등을 만드는 회사들이 2010년을 전후해 생산을 중단했다. 지금까진 구매한 예비 자재를 소진하면서 대응해왔는데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아 통신 장애에 완벽히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2G 가입자에게 30만원의 단말 구매 지원금, 24개월간 매월 요금 1만원 할인이나 24개월간 매월 사용 요금제 70% 할인 중 한 가지 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2G 이용자를 줄이려는 통신사와 01× 번호를 사수하려는 이용자들 사이에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셈이다.
01× 번호 이용자들은 SKT와 LG유플러스에서 2G 서비스를 조기 종료하기 위해 통화 품질 개선에 나서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통화 품질을 불량하게 유지해 2G 이용자의 자연 감소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취재기자가 김씨와 처음 통화한 3월18일, 김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자 김씨는 “사무실이 일산 외곽에 있다. 고객사 품질 정보 등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많은데 통화 수신 알림이 오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문자를 남겨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김씨는 거래처에서 부품을 급하게 발주하는 전화나 문자 수신이 늦어서 아찔했던 적이 있다. “부품을 거래처에 보내려면 택배 마감 시간인 오후 5~6시 전엔 포장이 완료돼야 하는데, 통신 불량으로 문자마저 늦게 와서 급하게 배송했던 적이 있다. 가까운 경기도 안산의 경우 다음날 아침에 직접 배송하기도 했다. 전화를 안 받으면 거래처에서 안 좋게 볼까봐 걱정된다.”
통화 품질을 지적하는 건 SKT 이용자뿐만 아니다. 19년째 LG유플러스에서 ‘019’ 번호를 이용하는 우진기(46·가명)씨는 좀더 심각한 사례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우씨와 통화할 때는 그의 목소리가 작게 들리고 중간에 끊어지기도 했다. 3층짜리 단독주택에 산다는 우씨는 “2층에선 통화가 잘되고, 3층에선 수신 안테나가 0~1개 정도만 뜨면서 통화가 안 된다. 집 인근 마트나 지하철역에서도 통화가 안 되는 일이 많다”고 했다. “통신사에 물었더니 집에 초소형 중계기를 설치하거나 LTE 서비스로 이동하라는데, 초소형 중계기는 효과가 적다 하고 LTE는 필요 없는데다 번호를 바꿔야 해 원치 않는다고 했더니 방법은 통신사 이동뿐이라고 하더라. SKT는 연내 서비스를 종료하겠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통화가 불편하면 이용자들이 못 버틸 테니 통신사에서 투자를 안 하는 것 같다.”
통신사는 이런 현실을 부정하거나 억울하다는 태도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아예 “통화 품질 민원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SKT 관계자는 “통화 품질이 나쁜 이유는 통신망뿐만 아니라 단말기 문제도 있다. 2G 단말기는 오래돼 서비스센터에 가도 수리가 어려워 단말기에서 생기는 문제도 통신사 문제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LG 등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의 2G폰 생산은 2014년에 끝났다. 노후 단말기를 쓸 수밖에 없는 01× 번호 이용자들이 번호 사수를 위해 찾은 방법은 국외에서 스마트폰을 역수입해 오는 것이다.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국내에서 파는 스마트폰은 2G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하지만 미국 등 국외로 수출하는 스마트폰은 가능하다.
번호 사수 위해 외국에서 스마트폰 ‘공동구매’
김씨도 2016년 중국 쇼핑몰 사이트에서 LG 스마트폰을 10만원대에 구입했다. “2G폰이 단종돼서 이젠 구할 수 없고, 수리하기도 쉽지 않아 선택한 방법이다. 데이터는 거래처에서 보낸 사진이나 도면 등 MMS를 확인할 때 필요해서 중고나라에서 2천~3천원에 샀다. 인터넷은 MMS 보낼 때만 쓴다.”
민씨도 삼성 갤럭시S7 엣지를 비슷한 방법으로 샀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가 외국에서 스마트폰을 몇 차례 공동구매를 했는데 그때 구입했다. 업무상 카카오톡을 써야 할 때가 있는데 01× 번호도 유지하고 스마트폰도 쓸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010번호통합운동본부는 SKT의 2G 서비스 종료 계획 발표 뒤 대응 방식을 묻는 투표를 했다. 그 결과 ‘정부와 통신사에 민원 제기와 합의를 한다’가 57.8%, ‘가처분이나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한다’가 42.2%였다. 민씨는 “생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헌법소원 등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헌법소원이나 법적 대응에서 희망을 찾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는 정부의 번호 통합 정책이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2013년 헌법재판소는 청구를 각하했다. 당시 헌재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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