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티에츠(Tietz) 가문 소장작으로 110년 만에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된다고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의 ‘수확하는 두 농부’(사진 왼쪽·Two harvesters·1888년작 주장)와 ‘꽃이 있는 정물화’(오른쪽·Floral still life·1886년작 주장)
서울 강남의 르메르디앙 호텔 내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러빙빈센트 전’에서 전시 중인 빈센트 반 고흐의 원화 2점이 위작 의혹에 휩싸였다.
르메르디앙 호텔 내 갤러리인 엠(M)컨템포러리는 지난해 11월 영화 <러빙 빈센트>(2017)에 사용된 회화 125점을 모아 기획한 ‘러빙빈센트 전’을 열며 독일 티에츠(Tietz) 가문이 1930년대부터 소장해왔다는 고흐의 원화 2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 전시는 오는 7일까지 열린다. 전시 홍보 책자 등에는 이번에 공개된 고흐의 그림 ‘꽃이 있는 정물화’(Floral still life·1886년작 주장)와 ‘수확하는 두 농부’(Two harvesters·1888년작 주장)가 110년 만에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된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복수의 미술계 전문가들은 이번에 공개된 원화 2점이 위작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반 고흐 등 후기 인상주의 작가를 연구한 서성록 안동대 교수(미술학)는 ‘고흐가 직접 그린 원화로 보기 어려운 면이 많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서 교수는 “고흐는 사망한 지 130년이나 지나 연구자들도 많고, 작품 소장이나 주요 전시 기록 등도 많이 알려진 만큼 전문가들이 모르는 고흐의 원화가 어느 날 갑자기 나올 순 없다”며 “공신력이 있는 기관이나 학자가 보증하는 감정서가 없다면 최소한 전시 이력이나 작품이 실린 출판물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경우”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꽃이 있는 정물화’가 파리 시절의 작품이라는 건데, 고흐는 파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을 만나면서 인상주의 화풍의 영향을 많이 받고 색채학에 고무되던 시기였어서 그림의 색채가 굉장히 밝아지고 붓질이 짧아지는 등 화풍이 크게 변했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런 특징이 없다. 그런 점에서 고흐의 원화로 단정하기 불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확하는 두 농부’ 역시 짧게 툭툭툭툭 쳐서 리드미컬하게 연결해서 역동적으로 터치하는 고흐의 스타카토식 붓질이 안 느껴진다. 고흐는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은 점에서 형태가 아니라 색채의 화가인데, 이 작품은 역으로 형태가 강조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10여 차례 국외 유명 작가들의 명화 전시를 기획한 ㄱ씨도 “‘수확하는 두 농부’가 그려졌다는 1888년은 고흐가 ‘아틀리에’(예술가 공동체)에 있던 전성기인데, 그 시절 그림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인체 표현 자체가 허술하다. 또 이 그림에선 고흐가 1886년 파리에 도착한 이후 쓰기 시작한 임파스토(impasto·물감을 두껍게 칠함) 기법이 보이지 않는다. 나에겐 고흐 거의 전 작품이 수록된 도록도 있는데, 이런 풍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도표기 오류를 고려해 1880년대 초 네덜란드 시절 그림이라고 가정해도 말이 안 된다. 그 시기 고흐는 대표작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볼 수 있듯 검은색, 황갈색, 적갈색 등 어두운 톤을 사용했지 이렇게 붉은색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 그림은 거의 100% 진품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ㄱ씨는 아울러 “고흐 작품을 감정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이라며 “그 미술관 재단 멤버가 고흐 손자이고, 거기서만 진짜 증명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겨레>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 이메일을 통해 해당 작품들의 감정 여부를 여러 차례 확인한 결과, 반 고흐 미술관은 연구팀 명의로 “두 그림을 감정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3차례 보내왔다. 반 고흐 작품의 감정과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 뉴욕의 ‘반 고흐 엑스퍼츠’ 역시 <한겨레>의 감정 요청에 “두 그림 모두 반 고흐가 그린 그림으로 보기 어렵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번 전시의 주관사이자 고흐의 원화 2점을 들여온 타란튤라 코리아 쪽은 위작 의혹을 부인했다. 남영지 타란튤라 코리아 대표는 <한겨레>와의 이메일 인터뷰와 전화 통화에서 “티에츠 가문의 소장작은 지난 100여년 동안 독일 밖으로 반출된 적이 없고, 순수한 개인 소장품으로 보관돼왔기 때문에 반 고흐 미술관의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며 “‘꽃이 있는 정물화’의 경우 유럽의 미술 감정 권위자 마틴 오트마(martin ottmar)가 2004~2005년께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미술관 쪽으로부터 반 고흐의 작품이라는 의견을 받은 만큼 반 고흐 미술관에 별도의 인증을 요청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남 대표는 “반 고흐는 짧은 시간(10년)동안 다수의 그림을 폭풍처럼 쏟아낸 화가였던 만큼 긴 세월 동안 본인의 스타일을 구축한 다른 화가들처럼 색채나 스타일을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반 고흐 미술관은 <한겨레>가 남 대표의 해명을 반영해 ‘2004∼2005년께 마틴 오트마가 미술관을 방문해 반 고흐 작품이라는 의견을 받은 적도 없느냐’고 재차 질문하자 이사회 비서인 바벳 미어딩크(Babette Meerdink) 명의로 이메일을 보내 “반 고흐 미술관은 두 작품을 본 적도, 감정한 적도 없다”고 재차 답변을 보내왔다.
전문가들 역시 남 대표의 해명으로도 제기된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미술 감정 및 문화재 복원 전문가인 최명윤 한국미술과학연구원 이사장은 “‘고흐가 짧은 시간 동안 다작을 했기 때문’이라는 식의 해명은 위작 의혹 논란에서 세계 공통어처럼 나오는 전형적인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최 이사장은 “이 그림을 그린 제작연대를 보면 고흐가 상당히 전성기일 때 그린 것인데, 그 천재성을 타고 난 분이 과연 이렇게밖에 못 그렸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며 “같은 시기에 그린 다른 그림에서는 (어떤 수준을) 넘어섰는데, 이 그림에서는 계속 헤매는 건가,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선담은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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