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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김학의 긴급출국금지는 적법했나?”

등록 2019-04-15 11:38수정 2019-04-15 11:46

강희철의 법조외전(56)
긴급출금 당시 김학의 신분은 ‘피의자’ 아닌 거로 확인
피의자라야 긴급출금 가능한 ‘출입국관리법’ 위반 논란
출금 요청 검사 권한도 의문…검찰 “논란의 소지” 인정
출석의무 없는 소환일정 일방적 공개로 비난여론 키워
법조계, “진상 규명 못지 않게 적법절차도 중요” 지적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사진 왼쪽)이 지난달 22일 밤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가려다 출국을 제지당한 뒤 일행과 함께 돌아 나오고 있다. JTBC 화면 갈무리.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사진 왼쪽)이 지난달 22일 밤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가려다 출국을 제지당한 뒤 일행과 함께 돌아 나오고 있다. JTBC 화면 갈무리.

18살 소녀가 납치돼 강간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 남성이 용의자로 체포됐다. 피해자도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이 이 남성한테서 2시간 동안 진술서를 받았다. 조서 맨 앞엔 진술 강요나 협상 없이 임의로, 즉 자유의사에 따라 자백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재판에서 이 진술서는 증거로 채택됐다. 변호인이 반대했지만, 구술자백으로 인정됐다. 남성은 1심에서 납치와 강간죄로 각각 징역 20년과 30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도 유죄로 판결했다. 그런데 3심에서,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깼다.

‘절차상 중대하자’가 문제가 됐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피고인은 경찰 신문 과정에서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와 진술거부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고, 필요한 법적 권리를 고지받지 못한 상태에서 자백했기 때문에 그 자백은 유죄의 증거로 쓰일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라면 어떤 반응이 일어났을까 자못 궁금하지만, 이 판결은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내린, 저 유명한 ‘미란다 판결’이다. 경찰신문에서 피의자의 진술거부권, 자백이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충분히 고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자백은 증거에서 배제한다는 ‘미란다 원칙’(Miranda Rule)이 이 판결을 통해 확립됐다. 범죄자는 단죄해야 하지만, ‘적법 절차’를 지키는 것이 먼저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범죄·수사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라는 대사도 미란다 판결에서 유래한다. 이 판결의 정신은 우리나라 헌법(제12조 5항)과 형사소송법(제200조의 5, 제244조의 3 등)에도 구체적인 조항으로 이미 반영돼 있다.

그런데 50년도 더 된 이 고색창연한 판결이 요즘 서초동에서 새삼스레 화제다.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서다. 김학의와 미란다,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걸까.

“김학의 사건은, 과거 수사과정에서 정권과 검찰의 권한 남용이 있었다고 의심하잖아요. 결국은 정권 차원에서 봐준 것 아니냐. 수사과정에서 검찰과 경찰에 부당한 외압이 행사됐다는 의혹도 있고 말이죠. 그러면 오래 전 결론이 났던 사건이라도 다시 수사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적법절차’는 반드시 준수해야겠죠. 그런데 김 전 차관이 출국을 시도하고,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과연 적법절차가 지켜졌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법조인들이 많습니다. 주요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 문제도 있고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잖아요.” (검사 출신 변호사)

김학의는 긴급출국금지 당시 ‘피의자’였나

법무부는 지난달 23일 자정께 다음과 같은 내용을 법조 기자단에 알렸다.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하여 긴급출국금지조치(긴급출금)를 취하여 출국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이 조치의 근거가 되는 긴급출금은 출입국관리법에 나온다.

제4조의6(긴급출국금지) ① 수사기관은 범죄 피의자로서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으며, 긴급한 필요가 있는 때에는 (…) 출국심사를 하는 출입국관리공무원에게 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다.

1.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2. 피의자가 도망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는 때

조항 그대로, 긴급출금은 ‘범죄 피의자’를 대상으로 한다. 법에 그렇게 정해져 있다. 그럼 김학의는 당시 ‘범죄 피의자’였을까. 아니었다. 피의자가 되려면 누군가의 고소·고발이 있거나 수사기관이 ‘인지’를 해 사건번호(형제 번호)가 매겨져야 한다. 이를 입건이라고 하는데, 김 전 차관은 당시 입건된 상태가 아니었다. 검찰에도 물어봤다.

-김학의 전 차관은 긴급출금이 될 당시 피의자였나?

“(22일 밤) 긴급출금 당시에는 피의자가 아니었다. 피내사자 신분이었다. 그날 밤 긴급출금을 한 법무부에서도 대검찰청에 (김 전 차관의 신분을) 피내사자라고 설명했고, ‘넓은 의미의 피의자’라고 했었다. 김 전 차관이 출국 시도를 함으로써 재수사 가능성을 높였고, 결국 자신을 피의자로 만든 셈이다.” (검찰 관계자 ㄱ)

‘넓은 의미의 피의자’라는 설명은 곧 피의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피내사자는 긴급출금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법적 요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어도 긴급출금은 그냥 ‘강행’됐다. 법무부의 지시를 받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법적 근거를 따져 묻는 김 전 차관과 승강이를 벌였고, 급기야 “지금 나가면 진짜 도피가 되는 겁니다”라는 말에 김 전 차관이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김 전 차관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는 상황과 그가 법적으로 피의자인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검찰 출신 변호사)이지만, 법무부와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일단 출국부터 막았다.

“출입국관리법이 정한 긴급출금의 요건은 정식으로 입건된 피의자 신분이라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출금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거주 이전 자유’를 심대하게 제약하는 조처다. 그래서 법령도 좁게(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민주 국가의 대원칙이다. 검사가 누군가를 피의자라고 의심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요청한 검사도 문제지만, 이를 승인한 법무부와 대검도 긴급출금 요건을 제대로 심사했는지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법관 출신 변호사)

물론 그 길로 김 전 차관이 출국했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졌을 것이다. 수사는 시작도 하기 전 공중에 붕 뜨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은 동반사퇴를 면치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출금이 적법했는지와는 별개 문제다. 일종의 ‘정치적 책임’의 문제인 것이다. 수사의 대중적 당위성이 있다고 해서 법을 어겨도 좋다는 ‘면허’는 누구에게도 주어져 있지 않다.

긴급출금 요청한 검사는 ‘권한’이 있었나

문제의 3월22일 밤, 김 전 차관 긴급출금은 그야말로 긴급하게 이뤄졌다. 대검 진상조사단(조사단) ‘김학의 팀’(8팀) 소속 이아무개 검사가 밤 11시 넘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연락을 받고 급히 요청서를 만들어 김 전 차관의 출국을 부랴부랴 막았다.

한데, 이 검사의 이 출금 조처를 두고 그가 요청서에 서명할 법적 권한을 가졌는지 의아해하는 법조인들이 많다. 이 검사는 원래 대전지검 소속으로, 대검 산하 조사단에 파견 근무 중이다. 검사이긴 하나 수사권을 가진 검사는 아니고, 현재는 검찰의 내부 감찰 차원에서 대검이 진행 중인 과거사 조사 업무를 맡고 있다. 이런 배경 탓에 “형사소송법에 정해진 사건 관할이 없는데 어떻게 출금 요청을 할 수 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 역시 검찰에 물어봤다.

-이 검사가 어떤 자격과 직무 권한으로 김 전 차관을 출금한 것인지 궁금하다.

“이 검사는 파견 명령이 동부지검으로 났고, 사유는 진상조사단 업무 수행이다. 그래서 조사단 업무를 하는 게 이 검사의 주 업무다. 이 진상조사는 검찰 내부적으로 감찰 활동의 일환이다. 감찰의 경우 과거 수사기록을 변호사나 대학교수 등 외부 민간위원이 열람하면 안 되기 때문에, 팀마다 검사가 2명씩 들어가게 된 거다. 검사 신분은 유지되고 있고, 하는 업무는 검찰의 감찰 활동이라고 보면 된다. 즉 검사로서 추상적 권한은 있지만, 수사 활동은 아니다.”

-그러면, 김 전 차관의 경우 감찰 시한(3년)은 이미 지났고 검찰을 떠난 지 오래된 일반인인데, 이 검사가 무슨 권한으로 출금을 시킨 거냐.

법리적으로, 문언대로 보면 논란의 소지는 있다.” (검찰 관계자 ㄱ)

이 검사에게 직접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안 받다 문자로 신분을 밝히고 다시 전화를 걸자 받았다. 그러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소관 부서인 법무부나 대검에 문의하시라. 제가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검찰 인사를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찰 내 요직을 두루 거친 변호사에게 이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간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 검사는 신분상 검사가 맞지만, 직무는 검사 업무를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검찰도 ‘검사의 추상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을 것이다. 이 검사는 수사할 수 있는 사건 관할권이 없는 상태다. 파견을 가 있는 검사나 수사관이 그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아무 데서나 수사를 할 수는 없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파견 가 있는 검사가 수사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거다. 그런 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법령에 사건 관할이 엄격히 명시돼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 진상조사단이나 검찰과거사위원회에서 ‘수사권이 있는 검찰을 통해 출금을 요청했다’고 하지 않았나. 조사단 스스로 출금을 할 수 있으면 왜 요청을 하겠나. (이 검사가 법적으로) 권한에 없는 일을 했다는 방증이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김학의 사건’ 주무위원인 김용민 변호사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김학의 사건’ 주무위원인 김용민 변호사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출금이 어렵다는 건 조사단도 알았다?

지난 4월5일 전후, 일부 언론에 ‘대검이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김학의 출금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다’는 취지의 기사가 나간 뒤 대검이 뒤집어졌다. 마치 김 전 차관을 봐주기 위해 출금 요청을 거절할 것처럼 비치면서다. 대검은 ‘정면 대응’과 ‘해명’을 놓고 여러 논의를 벌이다 간단한 해명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나온 게 ‘팩트체크’라는 제목의 A4 1장 분량의 문건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조사단 8팀(김학의 팀) 팀원이 먼저 대검 기조부에 전화로 김 전 차관 출금 검토 필요성을 타진했다가 ‘문서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검토 요청을 자진 철회했다.”

그런데 사흘 뒤인 8일, 이번엔 진상조사단의 상위 기구격인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김용민 위원(변호사)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비슷한 내용의 주장을 폈다.

“(3월20일) 갑자기 대검에서 연락이 왔다. ‘고려사항’이라는 명칭으로 김학의 사건이 불기소 처분 난 것을 고려해라, 어떤 권고도 없는 상태라는 등의 고려사항을 보냈다. 명시적으로 하지 말라는 얘기는 없지만, 결국 조사단에게 (출금)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강력하게 한 것이다. 대검이 기존에는 불개입 원칙을 고수해왔는데, 유독 이 사건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반대입장을 보내온 것이라고 이해했다.”

출금 검토 요청을 한 사람은 앞서 언급한 이아무개 검사다. 그는 처음부터 계선을 잘못 밟았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와 대검 진상조사단의 활동 근거인 ‘검찰과거사위 규정’(법무부 훈령), ‘진상조사단 운영규정’(대검 훈령)을 보면 진상조사단은 어떤 조치를 하기에 앞서 과거사위원회에 먼저 보고해야 한다. 즉 ‘진상조사단 → 과거사위원회 → 법무부 정책기획단 → 대검 기획조정부’ 순으로 논의를 해야 했는데, 중간 과정을 건너뛴 채 3월19일 곧바로 대검 기조부의 담당 연구관(검사)에게 전화를 걸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 검사 등 조사단 쪽은 김학의 출금이 당시 상황에서 적법하지 않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월19일 오후 이 검사와의 통화 내용을 정리해둔 대검 기조부 연구관의 메모를 보면, “출입국관리법상 현재 상태(수사가 진행될 것이 명백한 사안)에서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출금이 가능할 것으로 사료됨”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검사가 연구관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본인에게 권한이 있고 딱 떨어지는 피의자라면 출금 요청을 하면 되고, 아니면 못하는 것인데, 왜 굳이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대검의 의견을 달라”고 한 것일까.

힌트는 바로 뒤에 나온다. 이때 대검 기조부 연구관이 조사단 이 검사에게 보냈다-고 김용민 변호사도 언급한-는 ‘고려사항’에는 김 전 차관 출금의 법적 문제가 적시돼 있다.

고려사항

- 현 상태는 1. 김학의 사건 관련해서 무혐의 처분이 있는 상태 2. 조사단 진상조사 결과는 위원회에도 보고되지 않은 상태(위원회 심의 결과나 권고도 없음) 3. 장자연 사건처럼 일부 내용에 대한 수사권고도 없음.

앞서 두 차례 무혐의 처분 뒤 사정 변경이 없는 사건이고, 과거사위원회에서 권고 등 어떤 조처도 없었으니 그 정도로는 출금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이 검사에게 “일단, 위와 같은 판단(출입국관리법상 현 상태에서 출국금지가 가능하다)을 하게 된 설명을 간략하게라도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함 → 문서로 보내지 않은 상태임”이라고 적고 있다. 이 기조부 연구관의 별도 메모에는 “확인해본 결과, 법무부는 출금 관련 입장을 정한 바도 없고, 조사단 측에 출금 요청을 한 바도 없다고 함”이라는 대목도 나온다. 법무부도, 대검과 마찬가지로 당시 상황에선 출입국관리법상 출금이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입국관리법과 그에 따른 시행령, 시행규칙 등을 모두 살펴봐도 피의자도 피고인도 아닌 김 전 차관은 출국금지를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이 수사를 지시한 3월18일은 물론 긴급출금이 이뤄진 3월22일 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런 상황에는 변화가 없다. 대검과 법무부 모두 김 전 차관 출금에 난색을 보인 것은 이런 법적 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검찰 관계자 ㄴ)

진상조사단의 이 검사도 결국은 본인 요청을 거둬들인다. 3월20일 오후 5시4분에 수신된, 이 검사가 기조부 연구관에게 보낸 내부망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저희 팀은 다시 협의하였고, 15시경 적법절차 준수 등 감안 의견 없는 것으로 정리되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조사단은 적법절차를 지키기 위해 출금에 대한 의견이 없는 것으로 정리했다는 회신이다. 조사단 내부에서 출금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면 왜 막으려 드느냐고 항의를 했어야 맞지 않을까.

과거사위원인 김용민 변호사는 피의자 아닌 김학의의 출금이 적법하다고 생각해서 거듭 강경한 주장을 편 것일까. 전화로 출입국관리법의 긴급출금 관련 조항을 읽어준 뒤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금이 적법하다고 생각하냐, 출금해야 한다고 주장한 근거는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그 부분은 내가 아니라 대검과 법무부가 답변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출금 요청과 결정에) 개입하지 않았다. 22일 밤에 대검이 출금을 승인하지 않았나. (그에 앞서 나는) 그 부분 충분히 검토해서 적법하고 가능하다고 판단했는데, 그 부분을 굳이 지금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다. 대검한테 물어봐 달라. ‘니들이 (출금에) 동의했는데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물어봐 달라, 그쪽에.”

김학의 일방적 소환은 정당했나

진상조사단은 지난 3월14일 오후 2시 넘어 갑자기 법조기자단에 김 전 차관 소환 일정을 공지했다. “김 전 차관에게 내일(3월15일) 오후 3시 서울동부지검에 있는 조사단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다음날 김 전 차관은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을 쳤던 기자들만 보기 좋게 허탕을 쳤다. 많은 언론이 비슷비슷한 제목으로 이 사실을 보도했다. ‘김학의 전 차관, 진상조사단 소환에 불응.’ 어떤 매체는 아예 “연락 끊고 불응”이라고 달기도 했다.

김 전 차관은 이 출석 요구에 응해야 했을까.

“도의적 측면에서는 문제 삼을 수 있어도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시 김 전 차관의 신분은 참고인이었다. 조사단이 과거사를 조사하는 데 진술을 들을 필요가 있는 인물, 그 정도였다. 참고인은 수사 또는 조사 기관의 출석 요구에 응할 법적 의무가 없다. 교통사고 목격자로 경찰서에 나오라고 해도 많은 사람이 안 나가지 않나. 그게 바로 참고인 자격이기 때문이다. 강제할 수단도 없다. 조사단의 출석 요구도 마찬가지다. 조사단이 이런 법적 요건에 대해 몰랐을 리 없다.” (법관 출신 변호사)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조사단은 김 전 차관에게 여러 차례 출석 요구를 했는데 아무런 답도 듣지 못했다. 그러자 소환 일정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언론을 압박 수단으로 대놓고 이용한 셈이다. 나오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소환 날짜를 공개한 조사단의 포석은 결국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뒀다. ‘조사에 멋대로 불응한’ 김 전 차관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욱 높아졌고, 사흘 뒤 문재인 대통령의 공개적인 수사 지시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됐다.

진상조사단은 애초 3월 말에 끝날 예정이던 활동 기간을 또다시 2개월 늘리는 부수적인 성과도 올렸다. 그 이전까지 기간 연장에 난색을 보이던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의 수사 지시에 태도를 180도 바꾸면서다. 조사단 내부자도 사석에서 “활동 기간 연장 안 해준다고 하니까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조사단은 김 전 차관 공개소환 하나로 ‘1년 넘게 뭐 하고 있느냐’는 비난 여론까지 잠재우며 ‘1석 3조’의 효과를 올렸다.” (검찰 관계자 ㄴ)

“적법절차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김 전 차관 출금 이후 어느 법조인이 ‘불편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김학의가 벌인 일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그는 저울 양쪽에 놓인 단죄와 적법 중 적법이 더 무겁다고 했다. 수사받는 사람의 권리, 말하자면 ‘미란다 원칙’의 편에 선 셈이다. 법조인이라면 이런 관점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반대편엔 나쁜 사람 단죄하려면 약간의 법적 일탈 쯤은 감내해도 된다는 여론이 있다. 효율을 위해 잠시 원칙을 미룰 수도 있다는 논리다. 대중적 분노를 사고 있는 대상일수록 용인의 폭은 더 커진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그런 글이 많다. 현실적인 문제는 생각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3월22일 밤 김 전 차관이 그대로 출국했다면, 그래서 김 전 차관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밝힐 기회조차 기약 없이 미뤄졌다면? 이러나저러나 최악의 사태를 막았으니, 그깟 ‘적법’ 여부는 구태여 따져 무엇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법에 정해진 절차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겁니다. 우리 국민은 누구라도 ‘법 앞에 평등’합니다. 헌법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김학의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를 옹호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도 권리를 가진 시민의 한 사람입니다.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로 적법절차의 예외를 허용하기 시작하면, 그 예외는 나도, 당신도, 내 가족이나 친지도 될 수 있습니다. 그건 법치주의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고문을 해서라도 자백만 받으면 그만이던 과거 권위주의 시대 공안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런 상황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더욱이 검찰의 과거 잘못을 가려 재발 방지를 하겠다고 만들어진 기구가 전혀 새로운 ‘적법’ 논란을 낳는 것 자체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나중 어느 시점에 지금 그 일이 과거사 조사 대상이 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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