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에 붙은 하일지 교수 망언 모음 대자보
제자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 중인 하일지(본명 임종주) 전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의 최근 미술 전시회가 논란이다. ‘미투 시련이 피워낸 예술혼’이라는 일부 평론가들의 평에, 동덕여대 학생들은 2차 가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15일 <한겨레> 확인 결과, 하 전 교수는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파주 헤이리 예술인마을 논밭갤러리에서 ‘하일지-시계들의 푸른 명상’이라는 전시회를 연다. 논밭갤러리는 80여점의 작품에 대해 “시집 ‘시계들의 푸른 명상’과 소설 ‘우주피스 공화국’을 내용으로 강렬한 색채의 사용과 자유분방하고 유머가 넘치는 시적 풍경을 그렸다”고 소개하고 있다. 논밭갤러리는 “(하 전 교수가) ‘성공적으로 전시가 이뤄진다면 파리에서도 전시를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수준으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전시 소식이 알려지자 동덕여대 학생들은 “강제추행 사건의 피고인이 본인의 이름을 내건 전시회를 여는 것은 명백한 2차 가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동덕여자대학교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2일 입장문을 내고 “(하 전 교수는)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미투 고발의 가해자이자, 강제추행 사건의 피고인임에도 이런 사실을 지운 채 당당히 본인의 이름을 내건 전시회를 준비 중”이라며 “이러한 2차 가해 형태는 대학과 예술계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타 대학의 미투 연대체를 비롯한 각 분야의 예술계에서도 이 사건에 함께 행동해줄 것”을 요청했다.
일부 작가와 평론가들이 하 전 교수의 전시를 두고 “미투 폭로 뒤 그가 겪은 시련이 ‘예술혼’으로 꽃피웠다”는 식의 극찬을 내놓으면서 비난은 더해지는 모양새다. 오세라비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번 전시를 소개하며 “경이로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예술혼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1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철저히 고독과 싸우며 외부의 질시를 삭히고 삭힌 시간들. 심연의 저 밑바닥에서 기적적으로 솟아오른 예술혼”이라 평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을 맡고 있는 이영준 평론가는 “작년 이맘 때 교수직을 던져버리고 교단을 떠나던 하일지 교수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덕분에 그는 자기 자신도 몰랐던 예술혼을 되찾게 되었으니 인생사는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이런 일부의 평가에 대해서도 “성범죄 사실은 은폐하는 행위”라고 입을 모았다. 동덕여대 H교수 비대위는 “(일부 작가 및 평론가들은) 미투 고발 이후 어떠한 사과도 없이 교단을 떠난 가해자를 마치 ‘고독과 싸워야 했던 예술가’로 포장했다. 가해 교수의 강제 추행으로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서술은 성범죄 사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2차 가해다. 본인이 가진 권력적 위치와 사회적 영향력을 가해자를 옹호하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 책임은 더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여성 대학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문학론을 펼치다가 성범죄 사실이 드러나자 곧바로 달아난 가해자에게서 어떻게 ‘예술적 정신’을 찾아낼 수 있는 건지 되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이런 비판에 대해 논밭갤러리는 1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하 전 교수가 유죄든 무죄든 그건 저희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저희 공간은 누구나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고 작품은 작품 자체로만 평가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전시를 만들었다. 평가는 그림을 보시는 분들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것때문에 2차 피해·가해가 생길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하 전 교수는 2015년 12월 자신이 교수로 있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학생에게 강제로 입을 맞춘 혐의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피해 학생은 지난해 3월 하 전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인터넷에 폭로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밖에도 하 전 교수가 교단에서 미투 운동에 대한 폄하 발언과 성희롱성 발언을 한 것이 지난해 3월 폭로된 바 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