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구조대원들이 30일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 전복 사고 실종자들을 구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부다페스트/로이터 연합뉴스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29일 밤(현지시각), 며칠째 내린 집중호우로 유럽의 한강이라 불리는 헝가리 다뉴브강(두너강)의 물은 한껏 불어나 있었다. 악천후 속에서도 부다페스트가 자랑하는 관광 명소인 의사당 야경을 보려는 유람선들의 움직임이 바쁘게 이어졌다. 헝가리 기상정보 제공 업체인 이되케프가 공개한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불과 10여분 사이에 수십척의 선박이 머르기트 다리 밑을 통과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밤 9시5분. 한국인 관광객 30명과 한국인 가이드 2명, 사진사 1명, 헝가리 승무원 2명을 태우고 부다페스트 중심부인 의사당과 머르기트 다리 사이 구간에 있던 소형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의 후면을 스위스 크루즈 여행사 ‘바이킹 크루즈’의 대형 선박 ‘바이킹 시긴’이 들이받았다. 유람선은 전복됐고, 승객들은 검은 강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주변을 지나던 유람선 ‘부다페스트’의 승무원들이 두 배의 충돌을 감지하고 구조를 요청하는 함성을 질렀다. 전세계 선박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베슬파인더(www.vesselfinder.com) 자료를 보면, 바이킹 시긴이 머르기트 다리 통과를 위해 허블레아니를 들이받기 직전 동쪽으로 급한 변침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다페스트 재난관리사무소는 “두 배가 함께 북쪽으로 나아가다 머르기트 다리 교각에 이르렀을 때 어떤 이유에서인가 허블레아니가 크루즈선 앞으로 끼어들었다. 이후 충돌이 났고, 7초 정도 만에 배가 뒤집어졌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을 보면, 두 배가 다리를 향해 앞뒤로 조금 거리를 두고 나란히 항해하는 모습이 보인다. 충돌 순간은 명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두 배가 다리 교각을 피하기 위해 변침하는 과정에서 크루즈선이 허블레아니를 뒤에서 들이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여행사와 현지 유람선 업체들의 ‘안전 불감증’ 역시 사고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고가 난 참좋은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으로 2016년 2월 어머니와 함께 동유럽에 다녀왔다는 구아무개(24)씨는 “다뉴브강은 수십척의 중소형 유람선이 오가는 곳이다. 배가 회전하는 과정에서 부딪히지 않게 하는 것은 교통질서가 아닌 선장의 조타 실력에 달려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배가 뒤집히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었다. 안전 문제로 주의사항을 들은 것은 ‘휴대전화가 강에 빠지지 않게 하라’ 정도였다”고 전했다. 구씨의 지적대로 최근 유럽 내륙 크루즈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며, 2002년부터 2017년까지 15년 동안 다뉴브강의 크루즈 통행량은 무려 89%나 늘었다. 다뉴브강이 명확한 교통 규칙이 없는 혼잡한 고속도로처럼 변한 셈이다.
전세계 선박의 이동경로를 알 수 있는 베슬파인더를 통해 확인한 소형 유람선 ‘허블레아니’와 ‘바이킹 시긴’의 움직임. 전복된 허블레아니는 머르기트 다리 남단에 떠 있고 바이킹 시긴이 그 뒤를 들이받으며 나아간 것으로 확인된다.
구명조끼 등 필수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점도 피해를 키운 중요 원인이었다. 참좋은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으로 지난달 동유럽에 다녀온 홍아무개(64)씨는 “다뉴브강 유람선은 여행 필수 코스였다. 그렇지만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지시가 없어서 입지 않았다. 사고 때 대피 방법 같은 안내도 없었다”고 말했다. 2017년 6월 다뉴브강 크루즈에 탑승했다는 김아무개(57)씨도 “구명조끼는 없었고, 가이드가 왔다 갔다 하면서 조심하라는 말은 했다”며 “난간에 서 있다든지 할 때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바람 부니까 끝 쪽으로 가지 마세요’ 같은 주의를 줬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게다가 한국인 승객들이 타고 있던 배는 길이 27m인 2층짜리 유람선(정원 60명)으로 1949년 옛소련에서 만든 노후 선박이었다.
침몰한 유람선은 다리에서 하류 쪽으로 몇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됐다. 헝가리 언론들은 “경찰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길윤형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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