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고등여학교 4학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한 이희호 이사장(맨오른쪽). 김대중 평화센터 제공
이화고녀 4학년 때 체육대회에서 통치마에 저고리를 입고 달리기 시합에 출전한 이희호(앞줄 왼쪽 넷째 단발머리)의 모습.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40년 이화고녀를 졸업한 이희호(뒷줄 왼쪽 둘째)는 어머니 간병과 죽음, 아버지의 재혼 등 순탄치 않은 가족사를 겪느라 2년 뒤에야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사진은 서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이화여전 입학 준비를 하던 1941~42년 무렵으로, 아버지(맨 오른쪽)와 함께한 모습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62년 5월 결혼식을 올린 이희호와 김대중은 그 시절 여느 신혼부부들처럼 충남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당시 아산의 현충사를 둘러보는 모습으로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성역화 사업을 하기 이전이다. 맨 오른쪽은 안내원.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이희호는 결혼 이듬해 1963년 11월12일 아들 홍걸을 낳았다. 마흔한살 노산이었으나, 6대 총선에서 목포에 출마한 남편 김대중은 선거일(26일)을 코앞에 둔 때여서 홀로 병원에가서 수술을 받았다. 사진은 1964년 어느 날 새 가족이 모처럼 창경원으로 나들이를 갔을 때로, 김대중이 안고 있는 아이가 막내 홍걸, 이희호 오른쪽이 고교 1년생 맏아들 홍일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둘째 홍업은 빠져 있다. 뒷줄에 선 여자는 가사도우미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바로가기 클릭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