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96)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54)씨가 국외 도피 21년 만에 붙잡혀 국내로 송환되면서, ‘한보 사태’ 장본인인 정 전 회장의 생존 여부 및 소재가 파악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 전 회장 사망설’이 제기되지만, 검찰은 정 전 회장의 사망 여부를 확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정 전 회장은 2007년 교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출국해 12년째 도피 중이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단장 손영배)은 1997년 11월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EAGC) 자금 322억원을 횡령해 스위스 비밀 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받는 정한근씨를 파나마에서 체포해 22일 국내 송환했다고 23일 밝혔다. 정씨는 1998년 6월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뒤 국외로 도주했다. 정씨의 체포로, 부친인 정태수 전 회장의 생사 여부와 소재 파악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정 전 회장은 2005년 본인이 이사장으로 있던 영동대학교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2006년 2월 1심 재판부가 징역 3년을 선고했으나, 건강 악화와 피해 변제 시도 등을 이유로 법정구속되지는 않았다. 2심 재판을 받던 정 전 회장은 2007년 ‘일본에서 치료를 받겠다’며 법원에 낸 출국금지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자 출국해 12년째 귀국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정 전 회장이 불출석한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해 2009년 5월 징역 3년6개월을 확정했다. 그가 귀국한다면 징역형을 살아야 한다.
정 전 회장의 생사 여부와 거주 지역은 그를 도왔던 친인척들의 수사·재판에서 조금씩 드러난 바 있다. 며느리 김아무개씨가 정 전 회장의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교비 1억35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2009년 기소됐는데, 김씨는 카자흐스탄에 있는 정 전 회장에게 2900여만원을 불법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뒤 법무부가 카자흐스탄 당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자 정 전 회장은 키르기스스탄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곳에서 금광사업을 한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10여년이 흐른 현재 정 전 회장의 생사 여부와 거주 지역은 더욱 불투명한 상황이다. 아들 정한근씨는 ‘부친이 사망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정태수 전 회장의 생존을 전제로 조사를 진행해왔다”며 “정 전 회장의 사망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정짓기 위해 몇가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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