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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여진’ 끊이지 않는 검찰과거사위원회, 어디서 삐끗했나

등록 2019-06-28 16:44수정 2019-06-28 16:51

강희철의 법조외전(62)
과거사 반성 않던 검찰 사과 끌어내고 김학의 구속 성과 불구
부실 준비·의욕 과잉으로 연장 거듭하며 각종 논란 이어져
법령 아닌 훈령으로 급조한 탓 ‘강제조사권’ 없어 활동에 제약
“공수처 추진에 활용” 시선 속 고소·고발·민사소송 수렁에
문무일 검찰총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역사관 앞에서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적한 검찰 과오와 관련해 사과하기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문무일 검찰총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역사관 앞에서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적한 검찰 과오와 관련해 사과하기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25일 다시 고개를 숙였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의 권고에 따라서다. “과거사위 조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공정한 검찰권 행사라는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합니다. 큰 고통을 당하신 피해자분들과 그 가족분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문 총장은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이번까지 모두 다섯 차례 사과했다. 김근태 전 의원 고문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에서 잘못을 인정했다. 어쩌면 과거사위의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그전까지 검찰은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기는커녕 인정한 적조차 없었다. 이웃한 대법원이 머리를 조아릴 때도 검찰만은 요지부동이었다. 의혹이 불거진 지 6년 만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구속 기소한 것도 과거사위 활동이 남긴 대표적 결과물로 꼽힌다.

하지만 한편에선 과거사위가 남긴 ‘여진’도 계속되고 있다. 과거사위에 의해 ‘김학의 사건’ 수사 외압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5일 대검 진상조사단(조사단)에서 활동했던 이규원 검사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서를 대검에 냈다. 자신이 제기한 이 검사에 대한 대검의 감찰이 끝날 때까지 해외 연수를 떠날 수 없도록 발을 묶어달라는 뜻이다. 이 검사는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을 조사한 조사단원으로, 청와대에서 과거사 문제의 주무를 맡고 있는 이광철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과 사법연수원(36기) 동기이며, 검사가 되기 전 2년간 같은 법무법인에서 근무한 사이이기도 하다.

그에 앞서 곽 의원은 김학의 사건 재수사를 공개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과거사위에 의해 김학의의 스폰서인 윤중천의 인맥으로 지목된 한상대 전 검찰총장 등은 이미 과거사위 일부 위원과 조사단 소속 검사, 일부 언론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용산참사 사건 수사팀 출신 법조인들도 민·형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어느 법조인은 “과거에 이렇게 시끄러운 위원회가 또 있었나 싶다”고 했을 정도다. 출발부터 종료까지 시종 깔끔했던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와 자주 비교된다. 그런 차이는 왜, 어디서 생겨났는지 차근차근 짚어봤다.

겨우 70일 준비하고 서둘러 ‘개문 발차’

과거사위는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개혁위·위원장 한인섭)의 권고에 따라 설치됐다. 개혁위는 2017년 8월28일, 9월25일 두 차례 회의를 열어 논의한 뒤 9월29일 과거사위 설치를 공식 권고했다. “회의 때 한인섭 위원장 등이 ‘과거사 반성은 법원도 했는데, 유독 검찰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위원들끼리 이심전심으로 (과거사위 설치에) 합의가 이뤄졌다”(전 과거사위원)고 한다.

과거사위 정식 발족은 같은 해 12월12일이었다. 개혁위 권고에서 발족까지 70여일 동안 법무부의 준비는 부실했다. 가장 중요한 위원 선정부터 매끄럽지 않았다. “출범식장에 가서야 위원 명단을 알았다”(한 과거사위원)는 말까지 나온다. 과거 ‘역사’가 아닌 ‘구체적 형사 사건’을 다루는 데 법률가가 아닌 교수, 언론인까지 위원에 위촉됐다. 수사·공판 기록 열람의 위법성 시비를 처음부터 안고 들어간 셈이다. 책임성을 갖고 기구를 운영해갈 상근자도 두지 않았다. 조사대상 사건을 정리한 리스트도 없었다. 조사기구를 어디에, 어떤 형태로 둘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12월12일 서둘러 닻을 올렸다.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같은 거 하나만 해도 성과를 내는 거다.” 과거사위 설치에 깊이 관여한 어느 인사가 당시 했다는 말이다. 더욱 문제가 될 것은 과거사위 설치 근거인 훈령이었다. “출범 직전에 법무부에서 훈령을 가져와서 보여주는 데, 너무 엉성하게 돼 있어서 깜짝 놀랐다.” (전 과거사위원)

“위원회는 법령으로” 불구 훈령으로 설치

국가의 모든 기관과 기구는 법적 설치 근거가 있어야 한다. 과거사위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과거사위도 위원회이기 때문에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야만 한다.

●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적용범위) ① 이 법은 다음 각 호의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에 대하여 적용한다.

1. 대통령과 그 소속 기관 2. 국무총리와 그 소속 기관 3. ‘정부조직법’ 제2조 제2항에 따른 중앙행정기관과 그 소속 기관

제6조(위원회의 설치절차 등) ① 행정기관의 장은 위원회를 설치하려면 미리 행정안전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

② 행정기관의 장은 위원회를 설치할 경우 다음 각 호의 사항을 법령에 명시하여야 한다.

1. 설치목적·기능 및 성격 2. 위원의 구성 및 임기 3. 존속기한(존속기한이 있는 경우에 한한다) 4. 위원의 결격사유, 제척(除斥)·기피·회피 5. 회의의 소집 및 의결정족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이 조항은, “위원회를 만들 경우 반드시 법령에 근거를 두라는 뜻”(법관 출신 변호사)이다. 그런데 과거사위는 법령이 아니라 그보다 하위인 ‘법무부 훈령’, 즉 ‘검찰과거사위원회 규정’에 설치 근거를 두고 있다. 설치 자체가 적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과거사위만이 문제가 아니다. 과거사위가 지정한 사건을 조사할 목적으로 대검찰청에 설치한 진상조사단(조사단)도 마찬가지 ‘결함’을 안고 시작했다. 대검찰청이 문무일 총장 지시로 만든 ‘검찰 과거사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운영규정’도 훈령이다. 조사단은 과거사위와 달리 국민을 조사하는 집행 기구 성격이 있어 정부조직법 등에 의한 근거 없이는 설치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거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군의문사 진상 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군사망사고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등이 모두 법률로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 특히 조사권이 있는 기구는 국민의 인권 침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법률로 조사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과거사위와 검찰 진상조사단은 훈령으로 설치해 논란을 자초했다. 처음에 훈령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니까, ‘나중에 법적 책임을 어떻게 지려느냐’며 참여를 만류한 사람도 있었다.” (전 과거사위원)

법령이 아닌 훈령으로 위원회와 조사단이 설치되면서 ‘강제조사권’도 날아갔다. 참여정부 때 진실화해위원회가 가졌던 자료 제출 요구권, 동행명령권 등을 부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사기록 제공=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논란

과거사 조사의 기본 ‘텍스트’는 조사대상 사건의 과거 수사기록이었다. 수사와 재판이 완료된 사건의 수사·공판기록은 검찰청이 보관하는데, 이 기록을 과거사위와 조사단에 제공한 것을 두고 위법이라는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어차피 검찰청에 보관하고 있는 자료니까 그냥 꺼내다 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오산이다. 수사기록에는 관련자의 주민등록번호, 특정 개인의 범죄 경력과 건강 등에 관한 정보, 피조사자의 주소지와 진술 내용 등이 들어 있다. 그래서 평소에도 당사자를 제외한 제3자의 열람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사기록에 들어 있는 개인정보는 공개는 물론 이용이나 제공이 엄격히 제한되는 ‘민감정보’가 대부분이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무거운 벌칙 조항을 두어 이를 통제한다.

“과거사위와 조사단이 과거 사건의 수사기록을 보려면 법령상 근거가 필요하다. 수사기록은 ‘개인정보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기록을 보관 중인 검찰청도 개인정보보호법이 정한 ‘개인정보처리자’로서 수사 목적으로 수집·보관하는 것인데, 이런 제한을 풀고 제공과 열람을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법령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겨우 장관과 총장의 지시에 불과한 훈령으로 이 문제를 대충 넘겼다. 훈령에 의한 수사기록 제공은, 그런 결정을 한 법무부와 대검 간부들이 나중에 형사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감찰 목적이라고 해도 법령상 근거가 없다. 게다가 과거사 조사대상 사건은 대부분 징계시효(3년)도 끝난 경우라 감찰 대상도 아니었다.” (법관 출신 변호사)

대법원 확정판결 난 사건까지 조사대상에

일부 조사 대상 사건은 선정 자체가 적법한 것인지를 놓고 의문이 제기됐다. 대표적인 것이 용산참사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0~2013년 농성자 26명 전원에게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이들이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를 상대로 낸 고소·고발은 검찰에서 ‘혐의없음’ 처분이 났고, 재정신청도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재정신청 재항고를 기각한 주심 대법관은 문재인 정부 들어 대법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박시환 전 대법관이었다.

모든 과거사 조사의 ‘모법’ 격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을 보면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한다”(제2조 2항)고 돼 있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다. 그럼에도 용산 사건은 과거사위의 예비조사 항목에 포함됐다.

“과거사위 내부에서도 ‘이미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건이고, 재심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조사대상에 넣는 게 무리가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그래도 예비조사 항목에 올린 건 경찰청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경찰 과거사위) 활동 결과에 기대를 걸어서다. 거기서 재심 사유에 해당하는 것이 나오면, 그걸 근거로 본조사로 넘어가기로 했던 것이다.” (전 과거사위원)

과거사위는 경찰 과거사위 쪽을 접촉해 채근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경찰 과거사위의 판단은 당시 경찰 진압이 불법 또는 위법이 아니라 “적정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재심 사유’가 될 수 없으니, 조사대상에 올리는 건 무리였다. 그럼에도 일부 조사단원, 과거사위원의 주장에 따라 결국 본조사 항목에 들어갔다. 용산참사 수사팀은 “사실관계와 법률 적용은 법원에 속한다는 헌법 조항을 위반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조사 실무를 맡을 조사단 구성도 석연치 않은 과정을 밟았다. 설치 근거가 훈령이니 검찰총장이 정하면 되는데, 법무부까지 보고가 됐고, 결국 “대검찰청이 짰던 명단에서 (사람들이) 여러 번 바뀌었다.” (검찰 관계자) 이 과정을 잘 아는 한 검찰 관계자는 “조사단 구성에 청와대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보면 된다”고 에둘러 말했다.

과거사위-조사단 ‘이원화’가 낳은 갈등

과거사 조사는 과거사위가 ‘권고’하면 조사단이 ‘실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단을 과거사위 ‘직속’으로 두지 않은 것은 사건기록 열람 때문이었다. “검찰이 보관 중인 기록을 검찰청 밖으로 들고 나가면 그 순간 위법이 된다”는 대검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법무부는 법무부와 대검에 각각 과거사위와 조사단을 따로 두는 ‘이원화’ 구조를 택했다. 법령 대신 훈령에 설치 근거를 두다 보니 단일한 기구로 설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검찰 관계자도 “예전 진실화해위원회처럼 법으로 설치하면 되는데, 왜 일을 이렇게 처리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었다.

이 이원화는 두고두고 문제가 됐다. 조사단 조사 결과에 대한 최종 심사와 판단, 권고 권한은 과거사위에 있는데, “조사단이 보고하기 전까지는 무엇을 얼마나 조사했는지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다.”(다른 과거사위원) 이런 상황에서 과거사위가 보고받지 않은 내용이 새어 나가 언론에 보도되는 일이 잦았다. 몇몇 조사단원은 기자회견, 텔레비전·라디오 인터뷰를 자청해 확정되지도 않은 조사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면서 의혹을 키우기도 했다. 장자연씨 사건의 경우 갑자기 나타난 배우 유진오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을 두고 조사팀 내부의 ‘견해차’를 외부에 그대로 노출한 적도 있다.

원래 조사단은 활동 결과를 알리는 자체 ‘공보’ 기능이 없다. 심사 결과 발표 등 모든 대외적 활동은 과거사위가 하게 돼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과거사위 쪽은 “과거사위 문턱을 통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일부 단원들이 주관적 생각을 언론에 일방적으로 흘리고 있다”면서도 이를 통제하지 못했다. 법무부나 대검도 손을 놓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조사단 활동을 하다 자진 사퇴한 박준영 변호사의 페이스북 글에 잘 나타나 있다.

“과거사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리고 조사를 지켜보면서 사건 속 다양한 이해관계를 봤다. 이익이 되는 사실을 부각하려 애를 쓰고, 반면에 모순을 애써 외면하거나 침묵하는 모습도 봤다. 이런 모습은 사건 관계자, 언론, 공권력, 사건 속 연대 세력, 정치권 모두에게 공통되는 문제였다. (…) 때론 세간의 의혹과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의 괴리도 확인했다. 이걸 알 거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의혹을 키우고 활용하는 ‘염치없는 자기 목적성’도 보게 된다.”

연장에 연장을 거듭한 활동 기간도 과거사위와 조사단 사이의 긴장을 높였다. 애초 과거사위가 출범할 당시 과거사위 규정에는 조사단이 활동을 시작한 때부터 기본 6개월에 3개월 연장이 가능하게 돼 있었다. 대검 조사단이 2018년 2월6일에 출범했으니 최대 11월6일까지가 시한이었지만, 조사단 일부, 특히 몇몇 변호사 출신 단원이 연장을 강력히 요구해 결국 지난 5월31일에야 끝이 났다. 이렇게 기간이 늘어난 까닭은 관련자들의 비협조 등 조사의 어려움도 있지만, ‘1주일 1회’라는 느긋한 조사 방식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 기간 연장 문제는 다른 갈등과 겹치며 김갑배 과거사위원장의 중도 사퇴(2018년 12월 중순)로 이어졌다.

‘김학의 사건’으로 불거진 ‘과잉 의욕’의 문제

아슬아슬하던 ‘의욕과잉의 둑’이 본격적으로 터진 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에서다. 과거사위는 전체적인 조사를 마무리하기도 전인 3월25일 곽상도 전 민정수석(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변호사)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곽 전 수석과 이 전 비서관이 “공모하여” 김 전 차관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을 질책하고, 부당한 인사 조처로 외압을 넣어 수사를 방해했다고 밝혔다. 또 김 전 차관이 나오는 동영상 감정을 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결과 확인을 요청한 것까지를 묶어 직권남용 혐의가 있다고 했다.

활동 종료를 앞둔 5월29일에는 “검찰의 (김학의) 봐주기 수사 정황, 수사팀의 중대한 과오 및 검찰권 남용 정황을 확인”했다며 추가로 수사를 의뢰했다. 또 “(윤중천씨의) 원주별장을 둘러싼 성접대의 진상”(보도자료)이라며 한상대 전 검찰총장,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박충근 전 춘천지검 차장이 마치 원주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은 것처럼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접대를 받은 뒤 사건에 개입한 정황이 있으니 “수뢰죄 또는 수뢰후 부정처사죄 등을 범한 것이 아닌지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수사단 수사 결과 김 전 차관과 스폰서 윤씨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과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6월4일)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거나(곽상도·이중희), “수사에 착수할 단서를 발견하지 못해”(한상대 등 3인)서였다. 여환섭 검찰 수사단장은 기자들과 질문 답변에서 “법리적으로 가능한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결론에 동의할 수 없으면 법리적으로 반박해 보라는 취지다. 과거사위에서 이 사건 주무위원으로 일한 김용민 변호사는 라디오에 출연해 “여전히 (검찰이) 덮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를 반박할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법적으로는 과거사위와 조사단이 ‘관련인지’를 할 수 있느냐는 권한 문제가 있다. 과거사 조사를 하다가 뇌물이나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한 진술이 나와도 조사단은 그 부분을 계속 조사할 권한이 없다. 조사단은 이름 그대로 ‘과거사’ 조사기구이지 수사기관이 아니다. 과거사위 규정에도 ‘유사 사례의 재발방지, 피해 회복을 위한 후속조치’가 설치목적이라고 돼 있다. 그러니 그런 진술이 나오면 얼른 떼어내서 검찰에 통보하고 손을 떼야 맞다. 그런데 일부 조사단원이 윤중천에게 뇌물공여를 진술하라고 회유까지 했다니….” (전 과거사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2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며 공수처 설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2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며 공수처 설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과거사위는 ‘기승전-공수처’의 사전 포석?

법조계에선 애초 설치목적을 벗어난 과거사위와 조사단 일부의 ‘무리한’(?) 활동을 공수처와 연관 짓는 시각이 많다. ‘자 봐라, 검찰이 얼마나 문제가 많냐. 그러니 공수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이들은 과거사위 설치를 훈령에 의존한 점에 주목한다. 법률로 만들려면 여야 합의를 거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언제 된다는 보장도 없다. 청와대가 서두르던 공수처 추진 일정과 어긋날 수 있다. 반면 훈령은 청와대가 결심만 하면 언제든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과거사 조사가 공수처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준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는 3월18일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을 콕 집어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2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는 공수처 얘기를 꺼냈다. “최근 특권층의 불법 행위와 외압에 의한 부실수사, 권력의 비호·은폐 의혹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매우 높다. 공수처 설치의 시급성이 다시 확인됐다.”

같은 날, 과거사위는 마치 일정을 미리 맞추기라도 한 듯 곽상도·이중희 두 사람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검찰에 수사하라고 권고했다.(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두 사람은 ‘불기소’(증거불충분)로 결론 났다) 그로부터 한달 뒤인 4월30일 공수처 법안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김학의 전 차관은 애초 문제가 됐던 성범죄가 아니라 ‘별건’에 가까운 뇌물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 혐의조차 과거사위 권고와는 결이 다르다. 윤지오의 느닷없는 출현으로 곧 진상이 밝혀질 것만 같던 장자연 사건은 장씨의 전 기획사 대표 김아무개씨에 대한 수사권고로 마무리됐다. 윤지오의 돌출 행동에 휩쓸린 여론을 생각하면 ‘태산명동 서일필’이 따로 없다. 두 사건의 결론은 대통령이 한껏 강조했던 것과도 차이가 컸다.

과거사위의 결말 역시 ‘유종의 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기자 없는 기자회견’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는 어떤 질문이 두려워 회견 1시간 전에 부랴부랴 질문 없는 기자회견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일까. 공식 해단식은 열리지 않았고, 법무부가 만들기로 한 ‘과거사위 백서’에 자기 이름은 빼달라고 요청한 과거사위원이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일부 사건의 당사자들은 박 장관을 비롯한 과거사위 책임자들에 대한 고소 등을 벼르고 있다. 한 인사는 “지금 검찰은 믿을 수가 없어서, 문재인 정부 말기쯤 박 장관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려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곽 의원 등의 ‘번외 소송’은 시작일 뿐이다.

서초동에선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새 과거사위가 지금 과거사위를 조사하게 될 것”이라는 ‘웃픈’ 얘기까지 돌아다니고 있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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