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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긴급조치는 정치행위’ 판결에 반기 들자 “판사 징계해라”

등록 2019-07-06 10:28수정 2019-08-19 14:46

[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⑦ 긴급조치 배상 관련 판결

양승태 부임 뒤 과거사 ‘역주행’ 시작
“긴급조치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개개인이 손배 청구할 수 없어” 판결
피해자 수백명 국가배상 못 받아

하급심 반기 들어 배상 인정하자
“법적 안정성 무너져…적절한 방책 검토”
판사 징계 검토 및 신속 처리 트랙 개발
“긴급조치 위법 인정 새 판결 나와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이 2018년 8월30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긴급조치 등 과거사 관련 헌재의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이 2018년 8월30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긴급조치 등 과거사 관련 헌재의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 법관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법정에 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진실을 밝히고 유무죄를 따지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법정 르포의 방식으로 ‘사법농단 재판’을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청와대를 (상고법원 도입) 입법 추진의 주체로 끌어들이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검토했죠?” (검찰)

“상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2015년 6월 법원행정처는 1회 법원의 날 기념식과 주요 판례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관련해, (법원) 행정처가 사법부 주요 판례를 선정하면서 (박정희 정권 시절) 대통령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이라 판시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하지 않을 거로 보인다는 이유로 제외했죠.”

“아는 바 없습니다.”

지난달 12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의 재판에서 공개된 박 전 처장의 ‘제3회 피의자 신문조서’ 일부다. 법원행정처 문건(‘사법부 주요판례’)에는 ‘긴급조치 위헌 결정’을 두고 “브이아이피(VIP·박근혜 대통령 지칭)가 좋아하지 않을 것으로 보임”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심기를 경호하기 위해 당시 법원행정처가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무효 판결을 기념식 전시회에서 제외한 정황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을 도입하려 애썼던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의 협조를 끌어내는 데 ‘긴급조치’ 관련 판결은 주요한 협상 카드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판결은 숨겼고, 어떤 판결은 내세웠다. 긴급조치 위헌·무효 판결은 드러내길 꺼렸다면, 2015년 3월26일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가 내린 판결은 적극 홍보했다. 이 판결의 핵심 내용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제9호)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로서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긴급조치는 대통령의 ‘정치 행위’이기 때문에 개인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취지다. 법원행정처는 이 판결을 ‘국정운영 협력 사례’로 들어 “긴급조치가 내려진 당시 상황과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고려했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이후 이 판결은 1100여명의 긴급조치 위반 피해자들이 넘어야 할 높은 벽이 됐다.

‘튀는’ 과거사 판결 문제라 본 양승태

2011년 양 전 대법원장 부임과 함께 대법원은 본격적으로 과거사 ‘역주행’의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긴급조치는 정치행위’라는 대법원 판결은 그 결정판이었다.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대법원이 국가 재정 부담까지 앞장서서 걱정한 덕에 손해배상 청구 자체가 무력화됐다고, 긴급조치 1·4·9호를 위헌·무효라고 한 전원합의체 판결과도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환영한 쪽은 박근혜 청와대일 터였다. 그해 8월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양 전 대법원장의 면담 자리를 위해 마련한 대통령 말씀 자료에는 “긴급조치 배상판결을 통해 국가배상 책임을 제한해 5500억원가량의 국가 예산을 절감했다. 앞으로도 국정운영에 협조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상황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에 반기를 든 하급심의 반란을 가만두고 보고 있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해 9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재판장 김기영), 2016년 2월 광주지법 민사13부(재판장 마은혁)는 “긴급조치 발령 자체가 위법·불법행위”라며 국가배상을 인정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나오자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들이받는 판결이 선고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면서, 김 부장판사(현 헌법재판관)에 대한 징계 조치를 검토해보라 지시했다. 이런 정황은 법원행정처 문건(‘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에 남아있다.

지난 1월11일 양 전 대법원장의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내용이다.

“‘들이받는 판결 선고되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 사실이 있습니까.” (검찰)

“당시 이런 사안에 관해 하급심 판결의 결론이 엇갈려 혼선이 있었고 이를 한쪽으로 통일하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됐습니다. 그런데도 하급심에서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대법원 판결 취지에 반하는 판결을 선고한다면 혼란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었습니다. 법적 안정성이 위협받고 법령 해석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헌법적 기능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양 전 대법원장은 ‘들이받는 판결이 선고되면 문제’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은 부인하면서도, 해당 하급심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한 점은 인정했다. 그는 대법원 판단을 ‘무시’한 해당 판결에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조처를 하려 했다.

“(법원)행정처에서 만든 문건에 나오듯, 해당 재판장에 대한 징계를 검토해보라 지시했습니까.” (검찰)

“법적 안정성이 무너지는 측면도 있고, 또 한편 법관의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방책이 뭐가 있겠나, 검토해보라 지시한 것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를 대상으로 한 ‘검토해볼 만한 지시’는 무엇이었을까. 검찰은 해당 재판장의 징계 및 직무감독권 행사 여부를 검토하는 한편 사회적 논쟁이 퍼질 우려를 줄이기 위해 ‘사건 신속 처리 트랙’도 개발해 시행했다고 본다.

과거사 역주행 판결, 제자리 찾을까

사법농단 의혹은 수면 위로 드러났고,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후퇴한 과거사 판결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5년여 만에 대법원이 일본 전범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자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강제집행 절차에 착수했고, 일본은 경제적 보복 조치로 맞불을 놓은 상태다. 대검찰청은 2017년 8월부터 긴급조치 위반 사건 피해자 217명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해 193명은 무죄 판결을 받았고 24명은 재판 중이라 지난달 30일 밝혔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손해배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예측하면서도, 끊임없이 법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피해자들이 배상받을 길은 고문·폭행 등 가혹 행위로 인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40여년 전 수사기관에서 비밀스럽게 행해진 가혹 행위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당시 가혹 행위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당사자들의 일관된 진술을 증거로 받아들여 주는 재판부가 간혹가다 있지만 매우 드물다”고 했다. 이들이 합당한 배상을 받기 위해선 과거 대법원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 이정일 변호사(법무법인 동화)는 “위법행위로 인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긴급조치 피해자 열 명 중 한 명도 안될 것이다. 모든 일의 출발점은 긴급조치 발동이었고 강압수사와 유죄 판단은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긴급조치 발동 자체의 위법성을 살피는 새로운 대법원 판례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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