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서어서문학과 성추행 사건 피해자 김실비아씨가 지난 5일 <한겨레>와 인터뷰 도중 지난달 서울중앙지검에 낸 고소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씨는 애초 얼굴까지 공개할 생각이었지만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사진 이정규 기자
“귀국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겠다는 마음으로 왔어요. 피해자라고 해서 숨어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성추행 사건 피해자 김실비아(29)씨가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에서 <한겨레>와 만나 그간의 심정을 쏟아냈다. 미국 유학 중인 김씨는 대학원 지도교수인 ㄱ교수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하기 위해 지난달 초 한국에 들어왔다. 김씨는 “피해자라고 해서 숨어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처럼, 지난 2월 ㄱ교수의 성추행을 폭로하는 대자보를 실명으로 썼고, 지난달 12일 기자회견 자리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가 언론과 대면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의 성추행 피해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가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검에 낸 고소장을 보면, ㄱ교수는 2015년 2월 한 차례, 2017년 6월 두 차례 등 모두 세 차례 김씨를 성추행했다. 버스에서 자고 있던 김씨의 정수리를 뒷좌석에서 손을 뻗어 30초 동안 문지르거나 기습적으로 김씨의 치마를 들쳐 올려 다리를 만지고 강제로 팔짱을 끼게 했다는 것이다. ㄱ교수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김씨에게 “나를 아빠라고 생각하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씨는 이렇게 반문했다. “아빠라면서 왜 성추행하나요?”
이 사건을 조사한 서울대 인권센터는 ㄱ교수의 신체 접촉 등이 사실로 인정된다면서도 지난해 12월 학교 쪽에 정직 3개월의 징계를 권고했다. 이에 김씨는 물론 학생들도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반발하며 학교 쪽에 ㄱ교수의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김씨는 “학교 쪽에서 문제 교수에 대해 징계를 최대한 낮게 주려고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미국 대학에서도 최근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는데 가해자는 물론 총장 역시 해고됐다”고 말했다.
ㄱ교수에 대한 징계 결정이 계속 늦어지면서 학교에 대한 김씨의 불신은 정점에 달했다. 김씨는 “더 이상 학교에 대한 신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씨는 애초 경찰에 신고하려던 걸 한 교수의 권유로 지난해 7월 서울대 인권센터에 신고했다고 한다. 김씨는 “정직 3개월이 적힌 서울대 인권센터 결정문을 이메일로 받아봤을 때 이미 학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진행된 징계위원회의 조사 과정도 불신만 낳았다. 김씨는 “지난 3월 미국에서 찍어 징계위에 보낸 20분짜리 진술 녹화 영상에서 서어서문학과 교수진과 강사진이 지속해서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아무런 조처도 없었다”고 말했다. 징계위는 “직접 진술할 기회를 달라”는 김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달 말 다시 열릴 예정이다.
김씨는 성추행 폭로 이후 나온 서어서문학과 교수진의 2차 가해 행위도 질타했다. 김씨는 “서어서문학과 교수진은 나의 폭로 자체가 ‘정치질’이라고 음해하거나 내가 사실은 ㄱ교수를 좋아한다고까지 말하고 다녔다”며 “이 사건은 근본적으로 ‘미투 운동’인데 교수진은 여기서 ‘미투’를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어서문학과 교수들은 이중적인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지난 5월21일 ‘피해자 김씨를 지지하며 ㄱ교수를 비호하지 않는다’는 사과문을 교내에 붙인 적이 있다. 하지만 김씨는 “나를 지지한다면서 왜 만나주지도 않느냐”고 비판했다. 김씨의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지난달 초 귀국한 뒤 ‘서울대학교 ㄱ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특위) 등과 함께 서어서문학과 교수진에 간담회를 열자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교수진은 마지막으로 지난달 21일 김씨가 보낸 요청 메시지에는 아예 답장조차 않았다. 지난 2일 특위와 인문대 학생회 소속 학생 10여명이 ㄱ교수의 연구실을 점거했을 때 방 안에 있던 ㄱ교수의 컴퓨터를 옮긴 사람도 서어서문학과 교수진 가운데 한명이다.
김씨에게 서울대는 어떤 의미일까. 김씨는 “내가 과거에 서울대생이었다는 사실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ㄱ교수가 내 지도교수 이름에 올라가 있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학교 쪽에 지워달라고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애초 오랜 이민 생활 끝에 한국에 온 김씨 눈에 비친 서울대는 ‘1980년대에 갇힌 공간’이기도 했다. “서어서문학과 교수들은 ‘우리 때는…’이라며 자신들이 학생이었던 시절에 했던 행동을 대학원생들에게 그대로 강요했다. 강의실은 물론 학내 식당에서 교수님을 만나면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해야 했다. 한 번은 ㄱ교수에게 술을 따라주는데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타박을 주기도 했다.”
학교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김씨는 자신과 함께 싸우고 있는 학생들이 있기에 “든든하다”고 말했다. 특위와 인문대 학생회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열린 전체학생총회에 나와 ‘ㄱ교수 파면 요구안’을 의결한 천 명이 넘는 학생들 역시 고맙기는 마찬가지다. 김씨는 “그만큼 서울대에 축적된 문제가 많다는 걸 보여준다”며 “이제 ㄱ교수 사건은 서어서문학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씨에게 ㄱ교수한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김씨는 “진심으로 반성하길 바란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씨는 오세정 총장과 면담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총장님, 언제까지 학생들이 싸우게 할 겁니까? ㄱ교수의 조속한 파면을 결단해주십시오.”
이유진 이정규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