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어느 대리모 이야기
30대 여성 김씨, 생활고 시달리다
대리모 세계 들어가…브로커 일 시작
지난 2월 사기죄로 징역 1년 선고
본인도 대리모로 임신…수사 중 출산
인터넷사이트, 계약서 양식 만들어
대리모와 대리모 의뢰인 연결
대리모 비용 4천만~6천만원
1천만원 정도는 브로커 수수료
임신 성공 쉽지 않아 악순환에 빠져
계약금 받은 뒤 이행 실패하면
다른 의뢰인 계약금으로 ‘돌려막기’
3년간 35건 알선…2억4천만원 사기
30대 여성 김씨, 생활고 시달리다
대리모 세계 들어가…브로커 일 시작
지난 2월 사기죄로 징역 1년 선고
본인도 대리모로 임신…수사 중 출산
인터넷사이트, 계약서 양식 만들어
대리모와 대리모 의뢰인 연결
대리모 비용 4천만~6천만원
1천만원 정도는 브로커 수수료
임신 성공 쉽지 않아 악순환에 빠져
계약금 받은 뒤 이행 실패하면
다른 의뢰인 계약금으로 ‘돌려막기’
3년간 35건 알선…2억4천만원 사기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 우리나라에는 대리모 관련 법이 없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대리모를 찾고 대리모 일을 한다. 이런 법과 현실의 괴리 탓에 대리모 브로커가 생겨나고 피해자가 양산된다.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대리모이자 브로커인 김수민(가명)씨 사건을 들여다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리모 산업’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재판 기록과 수사 관계자 이야기 등을 종합해 김씨 사건을 재구성했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대리모 의뢰인과 브로커가 작성하는 대리모 계약서 양식.
1년간 수차례 시술받았지만 다 실패
결국 300만원 받고 난자만 제공
건강 악화해 병원비로 쓴 돈 더 많아 대리모를 하려는 사람들 30대 박진영(가명)씨가 대리모를 하기 위해 브로커 김씨를 만나게 된 건 생활고와 심각한 생리통 탓이었다. 회사생활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 병원에서 ‘출산하면 호르몬 변화로 호전되는 사례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씨는 구글에서 생리통을 검색하다 브로커 김씨가 운영하는 인터넷사이트를 알게 됐다. 박씨는 김씨를 만나 대리모를 세 차례 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첫 계약 건은 2015년 10월 진행됐다. 박씨는 브로커 김씨의 지시를 받고 대전의 한 병원으로 갔다. 의뢰인 부부의 배아 이식 시술을 두 차례 했다. 시술은 10분 정도 걸렸지만 2~3시간 병원에서 안정을 취한 뒤 귀가해야 했다. 이식은 모두 실패했다. 진료비와 검사비는 의뢰인 부부가 냈다. 브로커 김씨가 차비로 50만원, 수고비로 50만원을 보내왔다. 2016년 1월 한 기업 회장의 딸 부부 의뢰 건이 연결돼 서울의 한 병원에서 배아 이식 시술을 두 차례 받았다. 시술은 이번에도 실패했다. 두 달 뒤인 2016년 3월 의사 이주현(가명)씨 부부의 배아 이식 시술을 서울의 한 병원에서 두 차례 진행했다.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브로커 김씨는 “두 번째 시술에서 대리모 박씨가 임신을 했다”고 의사 부부를 속여 병원 검진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겼다. 박씨는 이 사실을 경찰 수사 과정에서 뒤늦게 알았다. 박씨는 “브로커 김씨가 설마 의사를 상대로 사기를 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박씨는 2016년 6월 또 다른 의뢰인의 배아 이식 시술을 한 차례 더 받았으나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2016년 8월 박씨는 브로커 김씨의 요청으로 한 차례 더 대리모로 나섰다. 그런데 의뢰인 부인의 난자 채취가 어려웠다. 브로커 김씨는 박씨에게 난자 제공을 요청했다. 대리모는 처벌하는 현행법이 없지만, 난자 매매는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박씨는 이를 거절했다. 김씨는 난자를 제공하고 출산까지 해주면 미국에서 영주권을 얻어 공부하고 지낼 수 있게 해주겠다고 설득했다. 박씨는 결국 난자를 제공하기로 했다. 경기도 안산의 한 병원에서 난자를 제공했다. 이후 대리모 의뢰인 남편의 정자와 박씨의 난자로 배아가 만들어졌다. 이 배아를 박씨 자궁에 착상하려고 했으나 박씨 배에 복수가 차는 등 몸이 안 좋아 이식하지 못했다. 박씨는 난자 제공에 대해서만 김씨로부터 300만원을 받았다. 박씨가 2015년부터 1년여간 이 일을 하며 받은 돈은 모두 600여만원에 불과하다. 의뢰인 부부의 배아를 이식해 임신하고 출산까지 해야 그나마 몇천만원을 받을 수 있지만, 박씨는 배아 이식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각종 시술을 하며 인위적으로 여성호르몬 주사를 너무 많이 맞은 탓에 건강이 악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수술비와 치료비, 약값 등으로 수백만 원을 지출해,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았다. 김씨가 수사를 받게 되면서 박씨도 난자 매매 혐의로 검경 수사를 받고 기소됐다. 1심은 박씨에게 선고를 유예했다. 박씨는 남은 상급심 재판을 빨리 끝내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섣불리 대리모 세계에 뛰어든 당시의 행동을 후회한다는 것이다. 박씨 외에도 브로커 김씨가 의뢰인에게 알선한 대리모들은 대부분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이 일에 나섰다. 30대 대리모 엄수현(가명)씨도 그런 경우다. 대리모를 한번 하면 수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브로커 김씨와 연락이 닿았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김씨가 집요하게 설득해왔다. 의사 이주현씨를 만나 대리모를 하려는 시늉만 해달라는 브로커 김씨의 부탁을 받고 일당 15만원을 받고 연기를 하기도 했다. 이후 실제 대리모 의뢰인 부부의 배아 이식 시술을 한 뒤 임신했으나 유산했다. 엄씨도 김씨 수사 건과 관련해 경찰에 불려갔지만, 현행법 위반은 발견되지 않아 참고인 조사에 그쳤다. 난임인 한 의사, 김씨에게 대리모 의뢰
2천만원 먼저 주고 이식 시술 진행
임신 안 됐는데 김씨 “성공해” 거짓말
사기 의심 들었지만 믿고 싶은 마음 앞서 “지푸라기라도”…절박한 의뢰인들 브로커 김씨에게 대리모를 구해달라고 부탁한 의뢰인들은 다양한 사연을 갖고 있었다. 장애로 임신할 수 없는 딸을 대신해 대리모를 의뢰한 사업가, 농촌에 거주하는 50대 미혼 남성, 외동아들을 갑작스럽게 잃은 60대 부부, 암 수술 뒤 임신을 못 하는 여성, 시험관 아기 시술을 10여 차례 실패한 부부, 부인이 조기 폐경해 임신이 불가능해진 부부 등 아기를 간절하게 갖고 싶지만 출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30대 의사 이주현씨도 그런 의뢰인 중 한명이었다. 이씨는 자궁이 좋지 않아 임신을 못 했다. 2015년 11월 우연히 포털사이트 육아 카페를 통해 대리모 브로커 김씨와 연락이 됐다. 이들은 2016년 1월 직접 만나 대리모 계약을 맺었다. ‘한국인 대리모는 출산하면 임신 기간 중 태아와 정이 들어 아기를 돌려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이씨는 외국인 대리모를 섭외하기로 했다. 외국인 대리모는 한국인보다 1천만~2천만원 싸다고도 했다. 총비용은 6천만원으로 결정됐다. 이씨는 계약서에 서명한 다음 날 계약금 2천만원을 우선 브로커 김씨에게 보냈다. 브로커 김씨는 “영국 출신 흑인 한명과 미국 출신 백인 한명을 소개해주겠다”며 그들의 신상과 출산 경력 자료를 이씨에게 상세히 알려줬다. 하지만 이씨의 마음이 바뀌어 다시 한국인 대리모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브로커 김씨는 2016년 2월 대리모 박진영씨를 소개했다. 현재 혼자 살며 출산 경험이 한차례 있다고 했다. 사실 박씨는 출산한 적이 없었다. 이씨는 박씨에게 한 산부인과를 알려주도록 했고, 박씨는 이 산부인과에서 이씨 부부의 배아 이식 시술을 받았으나 일주일 뒤 검사 결과 임신이 안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 달 뒤인 2016년 4월 이씨 부부의 2차 배아 이식 시술이 진행됐다. 대리모 박씨는 임신테스트기 확인 결과 이번에도 임신에 실패했다고 브로커 김씨에게 알렸다. 김씨는 의뢰인 이씨에게 “임신이 확인됐다”고 거짓말을 했고, 혈액검사에서 태아가 2명 이상인 것으로 나왔다고 속여 500만원을 추가로 받았다. 이씨는 자신이 아는 병원으로 대리모 박씨를 데려와 달라고 브로커 김씨에게 수차례 요청했다. 김씨는 약속을 잡아놓고는 약속일이 되면 “대리모 박씨가 입덧이 심해 움직이기 힘들다” “박씨가 연락이 끊겼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나타나지 않았다. 같은 해 6월 브로커 김씨가 “대리모 박씨가 출혈이 발생해 본인 마음대로 임신 중절 수술을 했다. 박씨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하겠다”고 의뢰인 이씨에게 알렸다. 이씨는 김씨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이후에도 김씨의 거짓말은 이어졌다. 레베카, 도로시 등 외국인 대리모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속여 계속 돈을 요구했다. 김씨의 거듭되는 거짓말에도 이씨는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 김씨에게 다시 대리모 소개를 요청했다. 2016년 9월 김씨는 대리모 지원자라는 엄수현씨를 이씨에게 데리고 갔다. 엄씨가 쌍둥이는 힘들다고 해 계약이 성사되지는 못했다. 이후 김씨는 대리모 두 명을 더 소개해주겠다고 했으나 약속 날짜를 지키지 않았다. 엄씨는 얼마 뒤 이씨에게 전화해 “김씨가 15만원을 주며 ‘대리모 하려는 뜻이 있는 척만 하라’고 해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2016년 10월 체포된 김씨가 이씨에게 연락해왔다.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다른 대리모를 구해주겠다고 했다. 이씨는 한 가지만 꼭 사실을 말해달라며 물었다. “앞서 배아 이식 시술에 성공했다고 한 대리모 박진영씨가 임신한 거는 사실이었나요?” 김씨가 말했다. “사실이 아닙니다.” 이씨는 브로커 김씨와 일을 진행하던 중 여러 차례 사기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아기를 갖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김씨의 말이 사실이길 믿고 싶었다. 그렇게 10개월을 김씨에게 끌려다녔다. 여러 차례 진행된 난자 채취로 이씨의 몸도 상했다. 놓고 싶지 않던 작은 희망도 사라졌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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