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특허권 8건, 8억 상당 압류
미쓰비시, 3차례 교섭 요청 무응답
일 외무상 “일 기업 피해 땐 조처”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열린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기자 간담회에서 최봉태 특위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는 한-일 청구권 협정 및 강제징용 관련 소송 현황과 일제 피해자 인권 회복을 위한 한·일 변호사단체 활동 경과보고,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이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세번째 교섭 요청에 최종 불응하면서,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국내 자산의 현금화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16일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대리인단 등은 “한-일 관계의 발전을 위해 대화를 통해 합리적 방법을 찾고자 했던 노력이 거듭 무산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미쓰비시 자산의 매각명령 신청을 접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대리인단은 지난달 21일 미쓰비시 쪽에 마지막 서한을 보내 “7월15일까지 협의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압류 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화 등 후속 조처에 들어갈 것”이란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대리인단은 조속한 시일 내 현금화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대리인단이 법원에 매각명령 신청을 접수한 뒤 매각 결정이 나면 압류한 자산을 경매에 넘겨 현금화하는 환가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현재 피해자 쪽은 미쓰비시의 국내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을 압류한 상태다. 8억원 상당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양금덕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5명에게 미쓰비시가 1억~1억5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대리인단은 올해 1월, 2월과 6월 세차례 미쓰비시 쪽에 협의 요청을 하며 집행을 늦췄지만, 미쓰비시는 끝내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대리인단은 “피해자들이 90살을 넘은 고령인 만큼, 법 절차를 더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에는 대법원 배상 판결을 받았던 김중곤(95)씨가, 2월에는 심선애(89)씨가 대법원에 계류 중인 추가 소송 결과를 기다리던 중 별세했고, 지난 14일에는 광주지법에서 추가 소송을 준비하던 징용 피해자 이영숙(89)씨가 숨을 거뒀다. 미쓰비시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쓰비시는 지난달 27일 주주총회를 열어 이런 입장을 재확인했고, 지난 15일 피해자 유족 홍아무개씨 등이 제기한 추가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 패소한 뒤 서울고등법원에 상고장을 접수했다. 추가 손해배상 소송 변호인단은 추가 원고와 변호인단을 꾸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도 준비할 계획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일본 기자들을 상대로 대법원 판결 취지 등을 설명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한 일본 기자는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가 이번 매각명령 신청에 영향을 줬는지’를 물었고, 강제동원 피해자를 대리한 김세은 변호사는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따라 어떻게 할지를 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한편,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의 자산이 매각될 경우를 염두에 두고 “만에 하나 일본 기업에 피해가 미치는 일이 있으면 필요한 조처를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고노 외무상은 “그렇게 (일본 기업에 피해가 발생하게) 되지 않게 할 대응을 한국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