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즉 비단길은 독일의 한 지리학자가 고대 중국과 그리스·로마 문화권 사이의 교역이 주로 비단을 통해 이뤄졌다는 데 착안해 명명했다. 김호동 서울대 교수(동양사)는 이 용어는 ‘비단길들’로 복수형으로 써야 더 역사적 사실에 들어맞는다고 말한다. 유라시아 대륙이 초원 지역을 동서로 관통하는 ‘초원 루트’, 오아시스 도시를 경유하는 ‘사막 루트’,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통과하는 ‘해양 루트’ 등 적어도 세 루트 이상이 실재했기 때문이다.
고대 국제상인의 동서 교역로를 대신해 오늘날엔 ‘철의 실크로드’가 뚫려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의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대표적인 노선인데, 러시아의 12개 주 87곳의 크고 작은 도시를 거쳐 종착지까지 일주일이 걸린다. 중국 베이징에서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거쳐 러시아의 울란우데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는 2215㎞의 몽골종단철도(TMGR)는 가장 인기 있는 루트다. 지난 10일, 울란바토르에서 울란우데를 거쳐 이르쿠츠크까지의 23시간 노정을 이 철길을 이용했다. 드넓은 초원, 끝없는 자작나무 행렬, 그리고 바이칼 호수의 청록색 물결은 이방인을 황홀케 하기에 충분했다.
이 밖에 베이징에서 하얼빈을 거쳐 러시아의 치타 부근 카림스카야역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잇는 만주횡단철도(TMR)와, 중국 남쪽 롄윈강에서 카자흐스탄을 거쳐 모스크바와 베를린을 지나 로테르담으로 이어지는 중국횡단철도(TCR)도 있다.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동북아시아 철도공동체’를 언급했다. 남북한과 러시아 등 동북아 6개국이 참여하는 이 구상을 통해 동북아 다자협력과 다자안보,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초석을 놓겠다는 의지를 지난해에 이어 재차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이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남북 철길을 잇는 한반도종단철도(TKR)가 개통돼 대륙철도들과 연결돼야 한다. 이리되면 서울 또는 부산, 목포에서 출발해 신의주나 원산을 거쳐 파리까지 대략 12일 안에 갈 수 있다. ‘너무 늦기 전에’ 남북을 비롯한 유라시아의 공존과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21세기 ‘유라시아 철의 실크로드 시대’가 열리길 앙망한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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