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3마리 구입비 34억도 뇌물
소유권 넘어가지 않았어도
최씨한테 실질 사용·처분권
말 구입비 모두 뇌물로 판단
영재센터 지원 16억은 3자 뇌물
대통령의 포괄적 권한 비춰보면
지원금과 직무의 대가관계 충분
삼성의 승계작업 없었으니
청탁 없다는 항소심 뒤집어
말 구입비 범죄수익은닉도 유죄
‘89억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심) → 36억원(이 부회장 2심) → 73억원(박근혜 전 대통령 1심) → 87억원(박 전 대통령 2심) → 87억원(이 부회장, 박 전 대통령, 최순실씨 3심)’
하급심마다 엇갈렸던 뇌물 액수를 마침내 대법원이 정리했다. 대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준 뇌물이 총 86억8081만원이라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을 권력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돈을 건넨 피해자로 보고 뇌물 공여액을 36억3484만원으로 묶어둔 뒤 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항소심의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 말 3마리 구입비는 뇌물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433억2800만원의 뇌물을 주거나 주기로 약속했다고 보고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최순실씨의 하급심 여섯번과 이번 상고심은 모두 삼성의 승마지원을 뇌물이라고 봤지만, 뇌물의 범위와 규모에 대해서는 하급심마다 엇갈렸다.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지적하며 89억2227만원의 뇌물 공여를 인정했다. 이 부회장 등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지원을 위해 최씨의 코어스포츠와 용역계약을 맺고 실제로 지급한 돈(78억원)의 일부인 72억9427만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2800만원이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는 뇌물액을 크게 낮췄다. 승마지원 중 용역대금 36억3484만원만 뇌물로 봤다. 정씨가 탄 살시도 등 말 3마리 구입비 34억1797만원 등은 말 소유권이 최씨에게 넘어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뇌물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반면 박 전 대통령 1심과 2심 재판부는 말 구입비를 모두 뇌물로 인정했다.
이날 대법원은 말 구입비를 뇌물이라고 최종적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최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이 부회장으로서는 최씨가 만족할 수 있도록 원하는 대로 뇌물을 제공하는 것이 관심사였다”며 “양측 사이에 말을 반환할 필요가 없고 실질적인 사용·처분 권한을 이전한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2015년 11월15일 이후에는 최씨가 삼성전자에 말들을 반환할 필요가 없었고, 최씨가 말들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말이 죽거나 다치더라도 삼성전자에 물어줘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도 뇌물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액이 커진 다른 이유는 대법원이 이 부회장 2심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았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여원도 뇌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돈에는 직접 뇌물죄가 적용된 말 3마리 구입비와 달리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됐다. 제3자 뇌물죄는 단순 뇌물죄와 달리 뇌물을 받은 이가 제3자이기 때문에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엄격하게 입증돼야 한다.
앞서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그룹 승계작업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합병에 따른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개별 현안들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승계작업이 없었으니 청탁도 없었다’고 못박은 뒤 사건의 성격을 ‘최고 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 경영진을 겁박하고, 최씨가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한 사건’으로 정의하며 이 부회장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런 2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삼성그룹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하며, 이와 관련해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봤다. “삼성그룹이 최소 비용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조직적 승계작업을 진행했다”는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어 “대통령의 포괄적 권한에 비춰 보면 영재센터 지원금은 대통령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청탁 대상과 내용이 구체적일 필요는 없고, 박 전 대통령의 직무와 이 부회장의 자금지원 사이에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원심이 ‘부정 청탁의 대상이 명확히 정의돼야 하고, 청탁(내용)도 명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늘어난 뇌물액만큼 횡령액도 86억8081만원으로 늘어났다.
■ 말 구입비 범죄수익은닉도 유죄 이 부회장의 범죄수익은닉 혐의에 대해서도 2심과 다른 판단이 나왔다. 2심에서는 용역대금 36억3484만원만 범죄수익은닉 혐의로 인정됐고, 말 3마리 구입비는 뇌물에서 제외되면서 횡령액과 범죄수익에서도 빠졌다. 그러나 대법원이 말 3마리 구입비용을 뇌물·횡령으로 포함시키면서 말 구입비는 범죄수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전제했던 원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 라이브 |뉴스룸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