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대한민국 최고 정치권력의 ‘사익’과 최고 재벌의 ‘욕망’이 얽힌 정경유착의 결과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의 도움을 기대하며 묵시적 청탁과 함께 뇌물을 줬다고 봤다. 인정된 뇌물 공여액이 크게 늘면서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은 1·2심 재판부가 공직선거법 위반 부분을 따로 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기환송됐다. 따로 선고하면 형량이 달라질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29일 오후 2시 대법원 대법정에서 뇌물 공여와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으라고 밝혔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의 대법관 중 9명이 다수 의견으로 이렇게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경영권 승계작업이 존재하지 않았고,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는 원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포괄적 권한에 비춰보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16억2800만원)은 대통령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다. 부정청탁의 대상과 내용은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공무원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이익과 대가성이 특정되는 정도면 충분하다”며 제3자 뇌물죄 성립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어 “원심이 부정청탁 대상이 뚜렷해야 한다는 근거로 삼성그룹의 승계작업을 인정하지 않고 박 전 대통령이 승계작업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고 본 것은 이런 법리에 배치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도 대부분 뇌물로 판단했다. 이 부회장 항소심은 2015년 8월 맺은 용역계약에 따라 삼성이 최씨 쪽에 보낸 용역대금 36억3484만원만 뇌물로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용역대금뿐 아니라 정유라씨가 탄 말 3마리 구입비 34억1797만원도 뇌물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뇌물수수죄에서 말하는 ‘수수’는 법률상 소유권까지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실질적 사용·처분 권한을 갖게 된 경우도 뇌물로 봐야 한다. 실질적인 (말의) 사용·처분 권한을 (최씨에게) 이전한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의 횡령액(뇌물로 건넨 회삿돈)이 86억8081만원으로 커지면서, 이 부회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규정(횡령액 50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을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하라고 판결했다. 공직선거법은 대통령이 재임 중 직무와 관련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등의 죄를 범한 경우 다른 죄와 분리해 선고하게 돼 있다. 그런데도 1·2심이 뇌물죄와 다른 죄를 함께 심리해 선고했기 때문에 이를 분리해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부회장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태평양은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금품 지원에 대해 뇌물 공여죄를 인정한 것은 다소 아쉽다”고 밝혔다. 박영수 특검은 “대법원에서 경영권 승계작업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고 말 자체를 뇌물로 인정해 바로잡아준 점은 다행”이라고 밝혔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 라이브 |뉴스룸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