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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부·법원 ‘은행편’ 드는 사이…고위험 파생상품, 현재진행형

등록 2019-09-23 04:59수정 2019-09-23 09:25

키코사태 11년, 금융의 존재이유를 묻다
(상)삼각카르텔이 감춘 진실

검찰 은행 임직원 30여명 전원 무혐의
공정위는 “키코, 불공정 계약 아니다”
금감원도 “피해 기업의 ‘오버헤지’ 탓”
지난 정부 ‘재판거래 의혹’까지 불거져
DLS사태는 대상만 바꾼 ‘키코 복사판’
키코피해기업 대표들이 지난 2010년 9월3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청와대 들머리에서 수출중소기업 훈포장을 반납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키코피해기업 대표들이 지난 2010년 9월3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청와대 들머리에서 수출중소기업 훈포장을 반납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키코(KIKO) 사태가 터진 지 올해로 11년이 흘렀다. 많은 수출 중소기업이 부도와 파산, 자산 매각 등의 피해를 보았다.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나, 여전히 키코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업도 많다. 반면 여러 중소기업을 상대로 키코라는 ‘괴물’을 판매한 은행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사이 금융은 시기와 대상을 조금씩 바꿔가며 ‘제2의 키코’ 사태를 여럿 만들어냈다. 1조원대 피해가 예상되는 국외 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S·DLF) 논란이 대표적이다. 키코의 피해집단이 중소기업이었다면, 이번에는 개인 투자자의 대규모 손실이 예고된다는 점이 거의 유일한 차이다.

은행들이 ‘첨단 금융기법’의 이름으로 중소 제조업을 망가뜨린 과정을 찬찬히 돌아보며 금융의 존재 이유를 묻는 탐사기획 ‘키코 사태, 11년’을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2008년 이후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 피해로 아예 문을 닫거나 워크아웃, 법정관리의 길을 밟은 중소기업은 적어도 235개에 이른다. 살아남은 기업의 상당수는 키코 계약에 따른 부채와 신용도 하락 등으로 여전히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키코 사태를 만든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은행은 거의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정부와 사법부도 철저히 은행 편에 섰다. 키코 피해 기업을 대표하는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산하 키코공동대책위원회(키코공대위) 등이 지금까지도 ‘키코 사태’ 재수사를 요구하는 이유다.

키코공대위와 149개 피해기업은 2010년 2월과 5월 한국씨티은행 등 키코 판매 은행과 그 임직원을 사기(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30여명에 이르는 피고소·고발인은 이듬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이 압수수색도 없이 은행이 임의로 제출한 자료만 갖고 수사를 벌인 결과다.

당시 50여 피해기업을 대리한 김성묵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는 “키코 사건 초기에 의욕적으로 수사를 진행하던 담당 검사가 검찰 수뇌부에 의해 교체되는 등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사기 혐의로 고소된 은행 임직원 모두에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미국과 독일 등 국외 사례에 비춰 보더라도 사기가 명백한데 검찰과 법원, 금융감독원 등이 모두 은행 편에 서서 기업의 피해를 외면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년 7월 약관심사자문위원회를 열어 “키코 계약은 약관법상 불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은행 쪽 손을 들어줬다. 금감원은 한술 더 떴다. 키코 논란이 커지기 시작한 2008년 8월 금감원은 “키코로 피해 입은 중소기업은 매출액을 초과해 헤지(위험분산투자)한 기업”이라고 발표했다. 일부 수출 중소기업이 ‘환차익’을 노리고 무분별하게 키코 계약서에 서명한 탓에 큰 피해를 보았다는 취지다. 여러 피해기업 대표는 지금까지도 “정부가 우리를 ‘환투기꾼’으로 취급했다”며 가슴을 치고 있다.

아울러 금감원은 2010년 키코 판매와 관련해 은행과 그 임직원에 대한 검사와 제재도 마쳤는데, 어김없이 ‘은행 봐주기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금감원 검사에서 키코 판매 은행 10곳이 경징계에 해당하는 ‘기관주의’를 받는 데 그쳤다. 개인 제재 대상에 오른 72명의 은행 임직원 중에서는 단 4명만 ‘감봉’ 처분을 받았다. 나머지는 견책과 주의 조처로 끝났다.

키코 사태 전개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를 드러낸 곳은 사법부다. 특히 피해기업이 은행을 상대로 낸 민사상 손해배상 및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에서 사법부는 번번이 은행 손을 들어줬다.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던 몇몇 중소기업만 ‘일부 승소’의 결과를 얻었다.

키코 사건에 대한 재판이 불공정했다는 지적은 지난해 5월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이 실체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다시 불거졌다. 법원행정처가 2015년 11월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의 협상 추진 전략’ 문건을 보면, “그동안 사법부가 BH와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협조해온 사례를 설명”해야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키코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꼽은 ‘협조 사례’ 가운데 하나다. 문건은 ‘국가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염두에 둔 판결’로 키코 사건을 통상임금 판결 등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사법농단의 핵심 가운데 한명인 박병대 전 대법관은 키코 사건 소송에 직접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2009년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 재직 시절에 맡은 키코 관련 가처분 소송에서는 기업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으나, 2013년 대법관이 되어 맡은 다른 키코 사건의 상고심 판결에서는 똑같은 쟁점(약관성 인정 여부)을 두고 은행 쪽 손을 들어주는 정반대의 의견을 냈다. 박 전 대법관의 태도 변화는 공대위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이 키코 사건에 대해서도 재판거래 의혹을 제기하는 근거다.

민변의 송기호 변호사는 “철저하게 증거와 법률을 기초로 독립적인 판결을 내려야 할 법관들이 키코 사건에 대해서는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경제발전’이라는 재판 외적 논리에 치우쳐 판결했다”며 “과거 부실했던 검찰 수사의 한계를 넘는 철저한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키코 사태 이후 많은 수출 중소기업이 ‘금융’의 쓴맛을 경험했다. 그때 면죄부를 얻은 은행은 지금도 여전히 ‘첨단 금융공학’으로 포장된 파생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 대규모 원금손실 사태를 빚고 있는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DLS)이 대표적이다. 조붕구 키코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2008년 키코와 2019년 디엘에스는 대상이 중소기업에서 개인으로 바뀌었을 뿐, 고객에게 불리한 내용을 숨긴 ‘불완전 판매’라는 점에서 거의 비슷하다. 은행의 이런 행태를 바로잡지 않으면 또 다른 파생상품 피해가 빚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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