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7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금융감독혁신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키코 사건 재조사도 여기에 포함됐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키코(KIKO) 사건과 관련한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 절차가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다. 키코 분쟁조정을 위한 재조사에 나선 지 벌써 1년3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분쟁조정위원회 상정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조차 확정하지 않고 있다. 키코 사건을 해결하려는 금감원의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금감원 관계자는 “언론에서 지난 6월부터 ‘분쟁조정 결과가 곧 나온다’고 계속 보도하고 있는데, 아직은 피해 기업과 은행 쪽 의견을 계속 듣고 있는 중”이라며 “최종 결과가 언제 나올지 지금은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금융분쟁조정이란 금감원이 금융사에 대한 소비자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두 당사자의 합의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는 제도를 가리킨다. 다만 여기서 나온 결정이 법적 강제력을 갖진 않는다.
키코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은 2013년 대법원이 은행 손을 들어주며 사실상 끝났다. 키코 피해 기업에 대한 은행의 ‘불완전판매’ 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없지 않았으나, 이는 전체의 일부에 그쳤다.
키코 사건의 불씨가 다시 살아난 것은 윤석헌 현 금감원장 취임 직후다. 금융행정혁신위원장 출신의 윤 원장은 임기 시작과 함께 재조사를 지시하는 등 키코 사태의 ‘완전한 해결’에 의지를 보였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해 6월 키코 재조사 및 분쟁조정 절차에 착수했다. 대상 기업은 재영솔루텍과 일성하이스코, 원글로벌미디어, 남화통상 등 4곳이다. 조사 결과, 금감원은 이들 기업을 상대로 키코를 판매한 은행 쪽에 ‘불완전판매’ 등 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이 가입 기업에 꼭 알려야 할 중요사항을 빠뜨렸거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금감원이 분쟁조정의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은행 쪽 반발 탓이다. 이들 기업에 대한 불완전판매 책임을 인정해 피해보상에 나서는 순간, 다른 키코 피해 기업에서도 비슷한 요구가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 키코 피해 기업은 919곳에 이른다.
키코 사건의 민사상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다는 사실도 금감원으로서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만약 금감원이 분쟁조정 결정 곧 피해보상 결정을 내렸는데도 은행이 이를 거부한다면 금감원이나 피해 기업으로서도 더는 손쓸 방법이 없다. 금감원 쪽에서는 “이번 분쟁조정이 사실상 키코 사건에 대한 ‘최종 결정’일 수밖에 없어서 두 당사자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고 토로했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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