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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외교관 동성 배우자 인정, 정부는 숨기고 싶었을까요

등록 2019-10-25 19:34수정 2019-10-26 13:55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왼쪽)와 그의 동성 배우자 이케다 히로시의 모습. 두 사람은 지난 18일 청와대 리셉션에 부부 동반으로 초청됐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왼쪽)와 그의 동성 배우자 이케다 히로시의 모습. 두 사람은 지난 18일 청와대 리셉션에 부부 동반으로 초청됐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커밍아웃한 게이이고, 뉴질랜드에서 결혼한 배우자와 함께 한국에 왔다. 그리고 어제 청와대 리셉션에서 두 사람이 부부로 동반 초청됐다. 꽤 역사적인 사건일 수도 있는데 왜 이리 조용히 지나갈까.”

지난 18일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가 외교관으로는 처음으로 동성 배우자와 함께 청와대에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기자는 이 사실을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의 페이스북을 보고 알게 됐습니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니 통신사 두 곳에서 사진으로 보도된 게 전부였습니다. ‘조용히 지나갈’ 뻔한 이 일은 이후 터너 대사가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제 남편 히로시와 함께 주한외교단 초청 리셉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을 뵙게 돼 커다란 영광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고 밝히면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뉴질랜드 대사 부부의 사연을 취재한 24시팀의 이주빈입니다. 이들의 사연을 조금 더 자세히 볼까요?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와 이케다 히로시는 결혼한 동성 부부입니다. 주한 대사가 동성 배우자와 같이 한국에 온 경우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둘은 올해로 25년째 함께 해왔는데요. 이케다는 일본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활동도 합니다. 뉴질랜드는 2005년 동성 커플에게 ‘시민결합’을 허용했고, 2013년에는 동성 결혼을 법제화해 이들은 법적 부부가 됐습니다. 터너 대사는 지난해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이 법제화 과정에 대해 “단지 관용을 베푼 게 아니라 다양성을 강화하고 소중하게 여긴 역사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성적 다양성 인정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동성 결혼 법제화는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최근 대만, 에콰도르까지 전지구적으로 퍼졌습니다. 여기에 ‘시민결합’이 가능한 나라까지 합치면, 동성 커플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나라는 40개국이 넘습니다.

이런 흐름에서 한국은 비켜서 있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대통령이 대사 신임장을 받아 부임을 공식화하는 ‘주한 대사 신임장 제정식’ 때 터너 대사는 이케다와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외교부는 “당시에는 가족이 제정식에 동반할 수 없었는데 이후 지침이 개정됐다. 개정 시기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하지만, 납득은 힘듭니다.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신임장 제정식에 동반 가능한 수행원 범위를 가족으로 확대하는 의전 지침이 바뀐 건 2017년, 터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은 2018년이었습니다. 당시 이케다는 배우자로 인정되지 않아 동행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후 ‘파견국 법령에 따라 법적 혼인관계에 있는 경우 동반 가족 지위를 인정하도록’ 법무부가 지난해 12월 지침을 개정했습니다. 이번 행사에 이케다가 동행할 근거가 됐는데요. 외교부가 지침 개정 시기를 확인해주지 않듯, 법무부도 개정 사실을 먼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8일 열린 주한 외교단 리셉션 행사에도 정부의 소극적 태도는 이어졌습니다. 한 활동가는 “터너 대사가 문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는데, 청와대가 의미를 알리기보다는 감추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문 대통령은 종교계 인사들을 만나 “동성혼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대사 배우자의 권리만 인정하면 될까요? 캔디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이미 많은 성소수자가 동성 결혼이 가능한 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증명서를 받아온다. 그렇다면 적어도 동성 결혼을 한 국제커플은 인정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합니다. 홍콩은 동성혼 법제화는 안 되어 있지만, 외국인과 결혼한 홍콩인 동성 배우자의 권리를 홍콩에서도 인정합니다.

한국인 커플들의 소망도 절박합니다. 캔디 집행위원은 “저에겐 10년을 함께한 파트너가 있고 저도 다른 이성 부부와 동등한 권리를 얻기를 강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세금 혜택을 받고, 신혼부부 주택 지원을 받고, 배우자 유고 시 유족으로 인정받는 권리를 원한다”고 호소했습니다. 한채윤 활동가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습니다. “(터너 대사가 쓴) ‘대통령 덕분’이라는 말, 대통령선거 전에는 자국민인 동성애자들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말이었다.”

이주빈 24시팀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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