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에 있는 서울남부지검 청사 모습. 다음 로드뷰 갈무리.
검찰이 과거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휴대전화 포렌식 자료를 다른 사건에서 다시 압수해 제출하자 법원이 ‘위법한 증거 수집’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수사 편의를 위해 과거 압수물을 위법하게 사용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재판장 신혁재)는 지난달 30일 부정채용 혐의(업무방해)로 징역 1년을 선고한 이석채 전 케이티(KT) 회장 사건 판결문에서 검찰의 포렌식 자료 재압수가 “절차 위반 및 영장주의 위반 정도가 중대하다”고 밝혔다. 판결문을 보면,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2013년 11월1일 사옥을 헐값 매각해 회사에 수백억원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이 전 회장을 압수수색해 아이패드 미니 등 전자장비를 확보한 뒤 포렌식 자료를 추출했다. 당시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증거물 수집이 완료되고 복제한 저장 매체를 보전할 필요성이 소멸된 후에는 혐의 사실과 관련 없는 전자정보를 지체 없이 삭제·폐기하여야 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위법한 증거 수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포렌식 자료는 폐기되지 않았고,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전 회장의 케이티 채용 비리 등을 수사중인 서울남부지검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지난 5월23일 이 자료를 서울중앙지검 과학기술지원단 사무실에서 다시 압수했다. 검찰은 이렇게 이 전 회장과 서유열 전 케이티 사장 등의 문자메시지 등을 확보한 뒤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1영장(2013년 압수수색 영장)이 정한 압수 방법의 제한 사항을 위반한 것이다. 보관 조치가 위법한 이상, 다시 압수됐다고 해서 하자가 치유되는 게 아니다”라며 “영장에서 정한 제한 사항을 위반해 수사기관이 마치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장기간 보관하다가, 영장 기재 혐의사실과 아무런 관련성도 찾아볼 수 없는 별개 사건에 증거로 제출하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밝혔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원이 적법하다고 인정하고 발부한 영장을 바탕으로 과거 자료를 다시 압수수색한 것인데 이를 위법한 증거 수집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포렌식 자료를 혐의사실과 관련 없는 폐기해야 할 자료로 볼 것이냐, 혐의사실과 관련한 자료로 볼 것이냐는 견해 차이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현직 판사는 “디지털 증거의 경우 영장 혐의 사실과 관련 없는 전자정보는 바로 삭제·폐기해야 한다. 2013년 사건은 횡령·배임 사건이기 때문에 현재 부정채용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재 사건에 활용 가능한 자료는 과거 혐의와 무관한 자료이기 때문에 폐기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이태한 변호사 역시 “수사 편의를 위해 관련 없는 사건의 압수물을 별건 수사에 활용하지 말라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라며 “압수수색 영장을 별도로 받았다고 하더라도 증거 자체를 불법적으로 보관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 적법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논란이 된 압수물을 보관하고 있었던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섣불리 증거능력 여부를 단정할 수 있는 사건은 아닌 것 같다. 이후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전광준 박준용 고한솔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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