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생기면 특별감찰관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수석비서관과의 오찬에서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을 감찰하는 제도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주도로 법안이 제정돼 2014년 6월 도입됐다. 박근혜 정부는 특별감찰관을 임명해 운영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특별감찰관을 공석으로 두고 있다. 특별감찰관 공백이 문재인 정부에 끼친 손익을 따져봤다.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 한 특별감찰반원이 정권 실세 ㅊ씨가 3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담긴 첩보를 입수했다. 이 특별감찰반원이 조용히 ㅊ씨 감찰에 들어가자, 이를 알게 된 ㅊ씨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민정수석비서관실에 따졌다. 그러자 민정수석비서관실 한 관계자가 “이것이 정상적인 청와대의 감찰 기능 작동이다. 그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원칙을 고수했다고 한다. 그 관계자가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다.
대통령 주변을 감찰하는 업무는 악역으로 통한다. 잘하면 내부에서 욕을 먹고, 못하면 외부에서 욕을 먹는다. 민정수석비서관실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친족 비위행위를 보고하러 가면 당장 대통령 낯빛이 달라진다. 권력자는 가까운 사람의 안 좋은 얘기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현재 법령에 근거해 대통령 주변을 감찰할 수 있는 주체는 크게 두 곳이다.
첫째, 청와대 내 특별감찰반이다. 이는 대통령령인 ‘대통령비서실 직제’(제7조)에 규정돼 있다. 감찰 대상은 ‘행정부 소속 고위공직자, 공공기관·단체 등의 장과 임원, 대통령 친족 및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한 관계자는 “대통령 친인척 감찰은 민정비서관실이, 공직 감찰은 반부패비서관실이, 청와대 내부 직원 감찰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업무를 나눠 맡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 독립된 특별감찰관이다. 특별감찰관법은 대통령 친인척 등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행위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임기 3년)을 두도록 하고 있다. 감찰 대상은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이다.
오는 9일로 임기 반환점을 도는 문재인 정부는 아직도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고 있다. 특별감찰관 직무대행을 수행하던 차정현 특별감찰과장 임기가 지난해 4월 끝났지만 후임 특별감찰관 임명 절차가 진행되지 않은 탓이다. 특별감찰관법(제8조 2항)은 특별감찰관이 결원된 때에는 결원된 날부터 30일 이내에 후임자를 임명하도록 했다. 법이 정한 임명 기한을 문재인 정부에서 2년6개월째 어기고 있는 셈이다. 김정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특별감찰관 결원 시 후임자를 바로 임명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특별감찰관법 일부개정안을 지난달에 발의하기도 했다.
텅 빈 사무실에 3명만 남아
한때 30명에 이르던 서울 종로구 청진동의 특별감찰관실에는 현재 행정업무에 필요한 직원 3명만 남아 있다. 특별감찰관실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후임 특별감찰관이 임명되지 않아 기존 직원들은 전부 퇴사했다. 해산했다고 보면 된다. 2명 이상이 상주해야 예산 배정을 받을 수 있어 최소 인력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감찰 업무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상 휴업 중인 특별감찰관 예산은 지난해 22억원 중 8억원이 집행됐다. 올해 예산은 16억원이다. 사무실 임차료, 전기세 등이 매달 빠져나간다. 지난 8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문위원이 작성한 ‘2018회계연도 부처별 결산 검토보고서’는 ‘특별감찰관 제도의 기능이 마비된 건 적절치 못하다. 이 제도가 조속히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부가 특별감찰관 임명 절차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별감찰관법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법안들이 통합·조정돼 2014년 6월 시행됐다. 2015년 3월27일 임명된 이석수(현재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초대 특별감찰관이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등을 감찰하다 2016년 9월23일 물러난 후 지금까지 공석이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17년 5월24일 국회에 특별감찰관 후보자 추천을 요청했다. 특별감찰관은 국회가 3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한 명을 지명한 뒤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 임명된다. 여야는 그동안 추천 방식에서 마찰을 빚어 후보자 추천을 하지 않았다. 정부도 더는 후보자 추천을 요청하지 않았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특별감찰관 제도 정상화에 합의해 각 당에서 1명씩 특별감찰관 후보를 추천하기로 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29일 검사 출신의 구자헌 변호사를 후보자로 추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계속 후보자 추천을 미루고 있다. 정부·여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로 특별감찰관 임명에 소극적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시절인 지난 3월 유튜브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조국을 지켜라’ 편에 출연해 “특별감찰관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대상이 청와대 내 실장, 수석비서관 등으로 좁혀져 있다. 둘째, 수사권이 없다. 감찰에서 뭐가 나오면 다시 검찰로 넘겨야 한다.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특별감찰관은 자연스럽게 흡수·통합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수처와 특별감찰관은 기능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공수처는 수사를, 특별감찰관은 감찰을 한다. 수사기관은 수사 대상을 항상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감찰은 상시로 감찰 대상을 살펴본다. 감찰이 사건화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기능이라면, 수사는 사건화된 뒤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이다. 수사 단계로 진입하면 감찰은 실패한 셈이다.
“수사기관은 사건이 발생한 뒤 개입하는 곳이다. 수사기관인 공수처가 사전적으로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은 난센스다. 흔히 그걸 사찰이라고 하지 않나. 반면 특별감찰관은 상시 감찰을 한다. 감찰 기능은 돈을 받는 등 불법행위만 보는 게 아니다. 돈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 먹고 다니는 등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문제가 될 행위를 전부 모니터한다.”(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검사)
대통령 주변 리스크를 관리하는 특별감찰관법이 존재하는데도 공수처 도입을 마냥 기다리느라 장기간 공석으로 방치하는 조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12월3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될 예정인 공수처 법안이 당장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공방이 이어지는데다, 이 법안에 맞물려 논의 중인 선거법 개정안을 놓고도 각 당의 셈법이 달라 공수처 법안 통과를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 공수처 법안이 통과돼도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이 정치쟁점화돼 임명 절차가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예산과 사무실 확보, 인력 구성 등의 절차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해 가까운 시일 안에 공수처 설치는 더욱 어렵다.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 임명 때 여야 후보자 추천과 인사청문회에만 6개월, 임명 뒤 본격 업무에 들어가기 전 준비기간만 6개월이 걸렸다.
사정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일의 순서를 보면 현재 존재하는 법에 따라 일단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고, 공수처 법안이 통과돼 운영하다가 특별감찰관과 업무가 중복될 경우 특별감찰관법을 폐지하거나 흡수·통합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와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 16일 국회 본청 의원식당에서 만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공수처 법안을 놓고 여야 협상이 진통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감찰 기능 강화…자기검열 높여야”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한 닷새 뒤인 지난해 6월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조국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에 대해 민정수석실에서 열심히 감시해달라. 둘째, 민정수석이 중심이 돼 청와대와 정부 감찰에서도 악역을 맡아달라. 셋째, 지방권력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해달라.” 그 이후 대통령 주변과 청와대 내부 및 공직 감찰의 주체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한 곳으로 무게중심이 잡혔다. 청와대 내부 강력한 감찰은 필수적 기능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가까운 정치인 등이 맡는 민정수석비서관실의 온정주의적 감찰, 감찰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기도 한 민정수석비서관실의 셀프 감찰은 단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근무 경험이 있는 다른 검사는 “대통령 친인척만 관리(감찰)하는 팀이 있는데 대체로 대통령 측근인 정치인이 담당한다. 대통령 가족들과 서로 친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자꾸 덮고 지나가려는 유혹에 빠진다. (독립된) 특별감찰관이 있다면 그런 점을 보완할 수 있다. 이중 삼중으로 감찰하고 공수처 만들어 수사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다르다는 자만이 드는 순간이 가장 위험할 때”라고 말했다.
특별감찰관실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특별감찰반원은 민정수석비서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민정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다. 엄격하게 하면 걸러낼 수 있긴 하겠는데, 자신의 상사를 감찰한다는 게 말처럼 안 된다. 본인이 본인을 감찰하는 것과 중립적으로 남이 감찰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상반기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당시만 해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미르·케이스포츠재단 관련 내사에 착수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재단 설립 과정에 무리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었다. 이후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비서관 아들의 의무경찰 보직 특혜 의혹 감찰에도 나섰다. 그러자 우 민정수석 쪽에서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잘 관리하고 있으니 특별감찰관실이 너무 나서서 흔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러다가 특별감찰관실이 우 민정수석 가족회사인 정강의 횡령·탈세 의혹에도 감찰에 나서자 민정수석비서관실 쪽이 특별감찰관실 쪽과의 소통을 아예 끊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특별감찰관실 한 관계자는 “특별감찰관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외부에서 감찰 사각지대에 있는 부분들을 독립적 지위를 갖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감찰을 당부하기에 앞서, 조국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이 문재인 정부 2기를 맞아 과거 정부를 타산지석 삼아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내용을 보고했다. 조 민정수석은 첫 대목에서 과거 정부 국정 상황이 주는 교훈을 언급했다. “첫번째는 집권세력 내부 분열 및 독선이었다. (중략) 긴장감 해이로 측근 비리 및 친인척 비리가 발생한 경우 (중략)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잃게 됐다.” 대응 방안으로는 “오만과 아집, 자신만이 옳다는 걸 거둬야 한다”고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임기가 중반을 지나면 정부로서는 공격보다는 수비할 일이 많아진다. 대통령 임기 말 권력형 비리 사건이 발생해 집권세력의 힘이 떨어진 사례는 과거 정부에서 예외가 없었다. 사정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친인척, 측근 비리 관련 리스크를 제거하는 작업은 불편함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서로 불편해할 감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도 지금부터는 자기검열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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