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설대목 양평 ‘희망방앗간’ 풍경

등록 2005-02-06 17:45수정 2005-02-06 17:45

지난 5일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방앗간에서 도와주러 온 친척들이 초벌로 나온 가래떡을 연신 뽑아내고 있다. 양평/강창광 기자 <a href=mailto:chang@hani.co.kr>chang@hani.co.kr</a>
지난 5일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방앗간에서 도와주러 온 친척들이 초벌로 나온 가래떡을 연신 뽑아내고 있다. 양평/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떡이요∼”

설을 나흘 앞둔 지난 5일 경기 양평군 옥천면 옥천리 ‘희망방앗간’. 설을 앞둔 시골 방앗간은 마감이 닥친 신문사 편집국만큼이나 분주해 보였다. 양옥건물 1층의 떡방앗간, 방아는 아침 7시30분부터 돌아가기 시작했다.

방앗간 안주인 김양희(38)씨는 “가래떡은 뽑은 지 나흘 정도 지나야 썰기 좋게 굳으니까 오늘이 대목”이라고 했다. 때가 때인만큼 김씨의 언니, 형부들도 일손을 보태러 왔다.

두 번 방아를 거쳐 나온 쌀가루는 보드랍고 포근하기가 꼭 함박눈 같다. 이를 시루에 수북이 담아 30~40분 정도 잘 찌면, 쌀가루는 요술처럼 백설기 같은 찰기 있는 떡으로 둔갑한다. 남편 고영환(44)씨는 떡을 뽑는 마법사다. 구불구불 초벌로 뽑힌 가래떡은 더 차진 떡이 되기 위해 다시 기계로 들어간다. 두번째 뽑힌 떡을 찬물에 식히면 가래떡 완성. 한말에 1만3천원이다.

아침 7시반부터 방아간 윙윙
할머니·할아버지들로 북새통
“다 자식들 오면 나눠줄 거…”

“젊은 사람들은 힘들어서 방앗간 일 못해요.” 선한 눈매의 고씨가 말했다. 부부가 방앗간을 한 지는 9년이 됐다. “그런데 이 일만큼 정직한 일이 없어요. 정확히 땀흘린 만큼, 방아 찧고 떡 뽑은 만큼만 돈을 벌잖아요.”

오전 10시, 뒷짐을 지고 떡을 기다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열댓명으로 늘어났다. 북새통이 된 방앗간, 적게는 한말, 많게는 너더댓말씩 이고 온 쌀로 발디딜 틈이 없다. 이 많은 쌀로 만든 떡을 누가 다 먹을까?

“다 자식들 오면 나눠주는 거지, 손주들 떡볶이 떡도 해가고. 파는 떡은 오래된 쌀로 만들어서 맛도 없는데, 귀찮으니까 젊은 사람들은 다 사먹잖아.”


오후가 되자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남아 있는 이들은 콩비지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면서도 행여 우리 집 쌀이 다른 집 쌀하고 섞이지는 않을까, 방아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덜 불린 쌀이니 물을 더 넣어달라” “절편을 조금만 만들어달라” 깐깐한 할머니들의 주문은 끝이 없다.

“떡먹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
갓뽑은 가래떡만큼
찰지게 이루어졌으면…”

떡을 기다리는 할머니들은 시끄러운 방앗소리 너머로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의 ‘영원한 주제’는 자식들 혹은 자식들의 자식들. 하지만 이 할머니들 중 자식 한명이라도 같이 사는 사람은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시골의 하루는 해가 지면 끝난다. 오후 6시, 주인 부부는 하루 일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며 늦게 온 손님들을 돌려보낸다. 떡을 만드는 이도 푹 쉬어야 다음날 정성스레 맛난 떡을 뽑을 마음이 난다.

이날 김씨 부부가 뽑은 떡은 200말이 넘는다. 오는 설날에도 희망방앗간의 떡은 어김없이 수백명, 수천명을 ‘한살 더 먹게’ 해 줄 것이다. “떡을 먹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 갓 뽑은 가래떡만큼이나 차지게 이뤄졌으면….” 방앗간 부부의 새해 소망이다.

양평/글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