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에게도 간절히 지키고 싶던 것이 있었다. 가진 것 없는 집에 태어났고,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없는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불편함이었으니, 내가 지키고 싶던 것이 분명 사람은 아니었다. 그때, ‘보통 사람’은 오히려 나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자신들끼리 서로 키를 맞추고 마음을 맞추어 자신들과 다른 존재를 밀쳐내고 조롱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간들. 나는 그들로부터 고립된 채, 홀로 사는 꿈을 꾸어야 했다.
억지로 가족을 가지려 했지만
그럼에도 나 역시 가족에 대한 애착은 작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마음의 근원은 연민이었던 것 같다. 목표 지향적인 지금 시대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 손가락질받지만, 그때 나에게 연민의 감정마저 없었다면 나의 생은 온통 무기력이었을 것이고, 자학뿐이었을 것이다. 남편의 폭력으로 자식들까지 버리고 도망쳐야 했던 모친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런 엄마를 버리고서 더욱 피폐해가던 부친에게 역시 또 다른 연민을 느끼면서, 나에게 연민이란 인간을 인식하는 가장 최초의 감정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어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고 있나, 그 근원을 따져 가면 내 부친에게 장애를 갖게 하고 몹쓸 병까지 얻게 했던 전쟁이 그 뿌리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조차 충분히 헤아릴 여력이 없었다. 다른 사람은 가뿐히 뛰어넘고 만 혼란의 구덩이에 홀로 빠져 있던 나였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불쌍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나는, 고맙게도 쓸모 있는 인간이었다.
서른 즈음, 내가 가족을 가질 수 없는 생을 살게 되리란 걸 직감하고서, 나는 그 가족을 억지로 가지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직장을 갖고 보육원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는 봉사 모임에 참여하게 된 즈음, 나는 그곳에서 열살 남짓한 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고, 그 아이와 만들어가는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아빠나 엄마는 될 수 없을지 몰라도 후견인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설레었고 또 신이 났다. 아이에게 옷을 사주고 용돈을 쥐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지만, 다시 또 지켜야 할 사람이 생겨서 너무도 좋았다. 경호원이 되겠다는 저 아이가 커서 나를 지켜준다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서운하거나 섭섭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아이를 지킨 기억만으로 충분히 든든하게 늙어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아이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
나 같은 인간이 도대체 무얼 지키려고 자꾸 이러나, 겨우 제 목숨 하나 부지하려고 몸부림쳐야 하는 생이 왜 자꾸 쓸데없는 오지랖인가? 회의감과 무기력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안에 흘러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다시 또 나를 고립시켜야 했고, 사람들 속에 섞여 살기 위해 거짓된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 누구도 자신의 내면까지 말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삶을 살면서, 나만 내 자신에 관해 말하지 않으면 ‘속인 사람’ 취급을 받아야 했다. ‘커밍아웃’은 너무 간단한 이름일 뿐, 나는 오히려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드러냈고, 어차피 감출 수도 없는 생이었다.
그들과 똑같은 내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들로 내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손가락질이나 비난도 신경 써야 할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삶 하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세계를 상상해야 했다.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라 믿고, 들려오는 말도 듣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흑백의 단조로운 세계에 나만의 새로운 색깔을 덧씌워야 했다. 이 세계는 나의 세계이며, 나를 위해 만들어진 세계라는 오독(誤讀)을 철석같이 믿어야 겨우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믿음은 자꾸 무너졌고, 신뢰는 너무 쉽게 꺾여나갔다. 어쩌면 나 역시 그들에게 무너진 믿음이고 꺾여버린 신뢰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최소한의 나를 지킬 수 없는 현실에 자꾸 말을 잃었다. 무수히 많은 가면을 쓰고 사는 삶이 인간이란 걸 알지만, 가면 같은 맨얼굴 앞에서 굳어버리고 만다. 가면인가 맨얼굴인가, 우리 같이 지켜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나는 다시 또 그들과 나의 기준을 재조정해야 한다.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내 간절함만으로 아무것도 지킬 수 없던 것처럼, 나는 다시 또 지키고 싶은 마음만 움켜쥔 채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누군가를 지키며 살고 싶은 그 마음을,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놓았다.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풍경을 보듯, 끝내 누구도 가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감상하듯 벽에 걸어놓고서,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혼자 웅얼거리고만 있다. 환대하는 존재로 사는 일, 단 한 사람만이라도 제대로 지키며 사는 일, 그것 하나가 어찌 그리 어려워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것이 되었는지. 저절로 살아지는 목숨이 없는 세상임을 알지만, 이 정도면 우린 이미 충분히 풍요로우며,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서로를 일으키며 지키며 살아갈 나날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깟 경계, 그깟 기준, 그 모든 걸 넘나들면 우리의 생은 더 경쾌해지고 즐거울 텐데. 또 다른 환대하는 존재 앞에, 나마저 환대하는 즐거움을 깨우치게 될 텐데.
그토록 누군가를 지키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실은 지켜지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항상 각오가 필요했던 삶, 아마도 그런 나는 오래도록 간절히 의지할 누군가를, 최소한 나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줄 존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개를 돌리면, 어디든 최소한의 동질감이라도 나눌 수 있는 삶은 얼마나 안온할까? 비슷한 생김의 누군가를 보고 마음이라도 털어놓을 수 있는 삶은 얼마나 후련할까? 나는 그들이 부러웠고, 최대한 그들의 평범함을 흉내 내며 살아왔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에게 애쓰고 애쓴 자리가 결국 누군가에겐 애쓰지 않아도 되는 자리라는 걸 알게 되면, 다시 또 마음이 먹먹해지고 만다. 역시 고독만이 평화롭다고, 가장 구석진 자리에 나를 밀어 넣고서 내가 걸었던 액자만 올려다본다. 형편없는 내가 된다.
김비(왼쪽) 작가는 일러스트 작가인 남편 박조건형씨를 만나 경남 양산에서 살고 있다. 남녘의 이웃들은 생각 많은 그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친구로 환대했다. 김비 제공
그래도 신랑을 만나고, 여기 이 남쪽에 새로운 삶을 꾸리며 나는 너무도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쓸데없이 생각 많고 고민해야 살아지는 삶인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이리 오라고 말해주고, 마을의 주민으로, 모임의 일원으로, 친구로, 이웃으로 나를 환대한 그 모든 마음을 가슴에 새기며 살고 있다.
지난주에는 마을 분들과 생일 파티도 했다. 이런 꼴로 태어난 과거는 결코 축하할 일이 아니라고 믿었고, 그래서 생일에 파티 같은 것은 꿈도 꾸어본 적 없는데, 지난해에 출간했던 책의 북쇼가 인연이 되어 마을 카페의 독서모임에 초대되었고, 알고 보니 조촐한 나의 생일 파티 자리였다. 기도를 하고 촛불을 꺼야 하는지 촛불을 끄고 기도를 해야 하는지도 몰라 어영부영 잠깐 눈을 감았고, 와르르 쏟아져 내린 축하 덕담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장식 없는 매끈한 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얼마나 또 수다를 떨었던지. 사는 이야기, 아픈 몸 이야기, 책 이야기, 쇼핑 이야기, 읽기로 했지만 읽지 못한 책을 앞에 두고, 그 자리에 모인 모두는 몇시간 동안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참으로 소소하게 주고받았던 그 시간으로 나는 그날 얼마나 행복했는지, 바로 그 마음들이 나의 온 생애를 일으켜 다시 또 그들 앞에 서게 하는 힘임을, 나는 날마다 깨친다. 서로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힘내라고 응원하고, 같이 울어주는 그 마음이 어떤 걸 지키고 있는지, 나는 안다. 내 허약한 삶뿐만 아니라, 궁지에 내몰린 이 세계를 떠받치는 거대한 ‘언덕’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알 수밖에 없다.
재난 경보가 알려주는 것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다시 또 재난 경보가 울린다. 우리의 삶이 위태롭다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야 하는 시대라고 외쳐댄다. 나를 지키는 것으로 족하지 않으며, 가족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마을을 지키는 것으로는 모자라는 시대라고, 더 넓게 더 많은 것들을 우리 지키고 살아야 한다고. 여전히 나는 지키고 싶던 많은 것을 지키지 못한 허약하고 모자란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한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나의 이 온전한 일상이 나 혼자만의 생이 아니라 모두가 같이 지켜낸 시간임을, 서로에게 기댄 삶임을.
그러니 그동안 긋고 그었던 모든 경계와 모호한 관념들을 뛰어넘어, 나란히 서서 같이 가는 삶을 소원한다. 이제 모두의 소망은 한가지이고, 그 불안은 모두 똑같으니 우리 잘 이겨내자고,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자고.
▶ 소설가. 에세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이 있으며, 배구선수 ‘김연경’처럼 모두에게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년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 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