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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청탁 혐의자는 무죄, 인사 담당자는 유죄…요상한 채용비리

등록 2020-03-02 18:52수정 2020-03-03 02:43

[한겨레 법률사무소]

KT·강원랜드 사건
김성태 1심 이어 권성동 2심 무죄
외부 인사→사내 임원 사이
연결고리 입증 쉽지 않은 탓

법원 “실체적 진실 알 수 없지만,
범죄 사실 증명 되지 않았다”
검찰 “청탁한 사람은 없는데
부정채용에 이르는 결론” 상고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6월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6월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이 대법원 판단을 받는다. 채용 청탁을 했다는 권성동 미래통합당 의원이 1·2심에서 잇달아 무죄를 선고받고, 검찰이 이에 상고하면서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은 채용비리가 공공기관 부정부패의 주요 이슈로 등장하게 된 ‘기폭제’였다. 일부 비리가 수사를 거쳐 법의 심판을 받고 있지만 권 의원 사례처럼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결과가 적지 않다. 청탁을 받고 이를 실행한 회사 내부 인사는 유죄 판단을 받아도, 권력을 바탕으로 바깥에서 채용을 청탁한 유력자들은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 “공채에 태우라” 법원도 인정한 부정채용

‘채용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2016년이다. <한겨레> 보도로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소문으로만 돌던 채용 비리 실체가 광범위하게 드러났다. 2018년 1월 정부의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결과, 점검 대상 1190곳 중 946곳(80%)에서 4788건의 채용비리가 적발될 정도였다. 법원으로 넘어간 채용비리 백태는 판결문 곳곳에 남았다. 현직 국회의원이 연루돼 의혹의 정점에 있던 강원랜드나 케이티(KT) 사건 또한 채용 과정 자체가 비정상적이었다는 점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김성태 미래통합당 의원은 딸의 정규직 전환을 대가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석채 케이티 전 회장 증인 채택을 무산시켜준 혐의(뇌물수수)를 받았다. 김 의원 딸은 2011년 4월 케이티 경영지원실 케이티 스포츠단에 계약직으로 채용된 뒤 2012년 하반기 대졸 공개채용 과정을 거쳐 정규직이 됐다. 서류 접수 기간을 놓쳤지만 인성 검사 기회를 부여받고, 그 검사에서도 불합격 평가(D유형: 성실성 참여의식 등이 부족해 최소한의 업무수행 예상)를 받았으나 실무면접까지 치렀다. “오늘 퇴근하셔서 꼭 아래 안내에 따라 온라인 인성검사 수검 부탁드릴게요. 상세한 내용은 합격자 발표 끝나고 차 한 잔 하며 말씀드리겠습니다.(2012년 10월 인력계획팀 소속 매니져 → 김 의원 딸 이메일)” 채용 실무자가 서류 접수 기간을 놓쳐 인·적성 검사도 받지 않은 채용 지원자에 ‘부탁하듯’ 이메일을 보내게 된 것은 “김 의원 딸을 공채에 태우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 의원 딸은 채용 프로세스를 안내해준 인사팀장에 관해 “평소 성행이 불량했다”, “‘나를 꼬드기려고 하나?’라고 생각했다”고 특혜 채용을 부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의원 딸 본인도 자신이 특혜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봤다.

강원랜드 또한 자기소개서 및 면접 점수 조작, 면접위원의 담합, 합격인원 증원 등의 꼼수를 부려 2012~2013년 1차 교육생(89%)과 2차 교육생(전원)을 청탁 대상자로 채워 넣었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응시한 사람은 합격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조작이 있었다. (권성동 의원 1심·2019년 6월24일)”

이같이 부정채용을 주도한 회사 임원과 실무자들은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석채 전 케이티(KT) 회장 등은 2012년 케이티 신입사원 공개채용에서 12명을 부정채용해 회사의 채용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흥집 전 강원랜드 대표이사는 지난해 1월 “위력자의 청탁을 받아 범행을 주도했다”며 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인사팀장은 “사장의 지시를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채용시스템상 남아있는 인사 기록, ‘관심지원자’, ‘내부임원추천자’ (케이티), ‘권시트’ (강원랜드) 등의 특혜 채용 대상자 명단 파일이나 인사 실무자의 일관된 증언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 ‘청탁자-내부자’ 간 입증 어려운 연결고리

그러나 정작 채용을 청탁했다고 지목받은 이들은 희비가 엇갈렸다. 이들은 범죄 행위에 따라 업무방해(형법 314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123조), 뇌물수수(129조제1항), 제3자뇌물수수(130조) 등의 죄목으로 법정에 섰다. 그러나 ‘국회의원 등 외부 인사 - 사내 임원 - 부정채용 수혜자’의 삼각 커넥션에서 외부 인사와 사내 임원 사이의 연결고리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김성태 의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뇌물(딸의 정규직 채용) 수수자인 김 의원이 혐의를 부인하는 상태에서, 공여자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려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신빙성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석채 회장이 특혜 채용을 지시했다”는 서유열 전 케이티 홈고객부문 사장의 진술이 무너졌다. 김 의원, 서 전 사장, 이 전 회장 간 청탁이 오갔다는 만찬 자리의 카드 사용 내역을 뽑아보니, 서 사장이 증언한 2011년이 아닌, 2009년 5월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는 김 의원 딸이 대학생이어서, 파견계약직으로 일하는 딸에 대한 채용 청탁이 오가기에 시기가 일치하지 않았다. 유일한 증거였던 서 전 사장의 진술이 무너지자 관련 법리를 따져볼 것도 없이 무죄가 선고됐다. 김광삼 변호사(법무법인 더쌤)는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직무와 관련된 청탁이 있고 이에 대한 대가로 나아가야 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청탁이 이뤄졌다는 점부터 증명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됐다”고 설명했다. 최경환 전 의원은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부정 채용을 청탁한 것은 맞지만 최 의원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한 증거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받았고 항소심도 결과는 같았다.

정민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사실관계 입증이 문제가 된다. 채용 청탁 자체가 은밀하게 이뤄지고, 명시적으로 이 사람을 뽑아달라고 청탁하지 않더라도 사내 인사팀이 알아서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회사 내부 인사는 처벌받는데, 그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외부 인사는 처벌을 피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반드시 합격시켜달라”, “잘 봐달라” 등 명시적으로 청탁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히 지원여부만 알리거나 합격여부만 알려달라는 행위 자체만으로는 청탁이라 단정짓기 어렵다. (채용비리 사건에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 적용관련 실무상 쟁점 검토, 서울북부지검 김태헌 검사, 2018년 8월)

지난 13일 1심에 이어 항소심에도 무죄가 선고된 권성동(직권남용·제3자뇌물수수·업무방해) 의원과 비슷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염동열(직권남용·업무방해) 미래통합당 의원은 관련자 진술의 신빙성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형사 재판은 결국 검찰이 입증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은 모르겠지만, 검찰이 법관의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범죄사실(채용 청탁의 존재 여부)을 증명하지 못했다.” (권 의원 2심·서울고법 형사13부). 재판부는 최흥집 전 대표이사 진술과 권 의원의 이름이 기재된 엑셀파일의 출력물을 믿지 않았다. 인사팀장의 출력물 관리방식 등을 살펴봤을 때 엑셀파일이 아무런 오류 없이 완벽히 기재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권 의원 비서관 ‘맞춤형 채용’ 의혹의 경우, 최 전 대표이사가 권 의원에게 비서관 채용 사실을 알리며 ‘감사원 감사 무마’ 같은 대가관계를 상기시킬 법한 데, 비서관의 채용을 지시하고도 그 결과에 관심을 두지 않고 권 의원에 진행상황을 알리지도 않은 점을 의아하게 봤다.

반면 염 의원에 적용된 업무방해 혐의는 유죄판단이 나왔다. 염 의원 지시를 받아 강원랜드 쪽에 채용청탁자 명단을 건넨 김아무개 보좌관과 이를 건네받은 권아무개 강원랜드 인사팀장의 진술이 믿을 만하다고 본 것이다. 검찰은 공소심의위원회 판단을 거쳐 상고를 결정했다. 검찰 관계자는 권 의원의 무죄 판결을 두고 “채용 청탁한 사람은 없는데, 부정 채용에 이르는 의아한 결론이 나왔다. 관련자들의 진술, 청탁자 명단 등 모든 증거를 다 고려해 상호간에 모순이 되지 않는 결론을 내리는 게 증거 판단의 원칙이다. 법원 판단대로라면, 불법의 결과물만 남고 사실 규명은 요원해진다”고 밝혔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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